“오느라 수고했다. 우리 같이 명절 잘 보내자꾸나.”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안점순(89) 할머니가 2일 ‘소녀’의 얼굴을 하염없이 어루만지며 말했다. 소녀는 말이 없었다. 올 여름부터 버스를 타고 위안부 문제를 널리 알렸던 ‘151번 버스 평화의 소녀상’의 귀향 모습이다.
안 할머니는 2일 오후 경기도 수원에 도착한 맨발의 소녀상에 하얀색 신발을 신겼다. 그는 “소녀상이 둘이 됐으니 이번 추석은 외롭지 않게 보낼 수 있겠다”고 말했다.
지난 여름 버스를 타고 서울 시내를 누볐던 평화의 소녀상이 추석 연휴를 맞아 특별한 귀향길에 올랐다. 동아운수와 소녀상 작가인 김운성·김서경 부부가 이날 오전 서울 중학동 옛 일본대사관 앞에서 ‘평화의 소녀상 귀향 프로젝트’ 행사를 열었다.
동아운수는 지난 8월 14일부터 지난달 30일까지 소녀상을 태운 151번 버스 5대를 운행해왔다. 이날 우이동 차고지에서 151번 버스 1대에 함께 탑승한 다섯 개의 소녀상은 일본대사관 앞에 도착해 시민들의 배웅을 받았다. 이 자리에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를 소재로 다룬 영화 ‘귀향, 끝나지 않은 이야기’의 조정래 감독과 출연 배우들도 참석했다.
소녀상들은 미리 신청한 다섯 가족의 차량에 옮겨 탔다. 각각 수원·대전·전주·대구·원주 등 5개 ‘고향’으로 떠났다. 5개 지역은 각 도에서 평화의 소녀상이 설치된 곳이다.
수원에서는 현지에 사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인 안 할머니가 직접 나와 소녀상을 맞이했다. 소녀상은 추석 연휴가 끝나는 9일까지 각 지역에서 홀로 자리를 지키던 소녀상 옆 빈자리에 설치된다.
이번 행사를 기획한 임진욱 동아운수 대표는 “151번 버스 탑승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부터 추석 연휴에 귀향하는 것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과거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을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생각하며 준비했다”고 말했다. 임 대표와 김운성·김서경 부부는 중앙대학교 84학번 동기다.
일부 소녀상은 현지 시민단체와 함께 일본군 위안부 피해의 실상을 알리는 별도의 프로젝트에도 참여한다. 소녀상과 함께 원주행 귀향길에 오른 김운성 작가는 “지역 행사에 따라 소녀상의 귀경 날짜는 조금씩 달라질 예정이다. 전주로 향한 소녀상은 또 다른 소녀상 건립을 추진 중인 전북 진안으로 가서 그곳의 활동가들과 홍보 활동을 벌인다”고 설명했다.
임 대표는 “처음 ‘소녀상 버스’를 기획할 때의 목표는 아이들에게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오늘 소녀상의 귀향으로 우리 버스의 역할은 끝났지만, 소녀상이 서울로 돌아오면 아이들 역사 교육을 위해 원하는 학교에 제공할 계획이다”고 말했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