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정치권은 추석 민심 새겨 내우외환 초당적으로 맞서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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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문재인 대통령이 “추석 내내 온 집안이 보름달처럼 반가운 얼굴들로 환하기를 기원한다”는 메시지를 어제 보냈지만, 국민의 마음은 과거 어떤 명절 때보다 무겁고 착잡하기만 하다. 전직 대통령은 구치소에서 보름달을 볼 것이다. 전전직 대통령은 적폐청산의 이름으로 자신을 포위해 들어오는 사법처리 움직임에 “퇴행적이고 국익을 해치며 성공하지도 못할 것”이라며 항전 태세를 갖추고 있다. 엊그제 클린턴(민주당)·부시(공화당)·오바마(민주당) 3명의 미국 전직 대통령이 프로골프 대회 참관에 앞서 어깨동무하고 찍은 사진을 보고 부러웠다. 국가 위기 앞에선 초당적으로 하나가 돼 세계 최강국을 유지해 온 정치문화의 힘이 느껴졌다.

우리 정치의 현실은 적폐청산과 정치보복 진영으로 갈라져 나라와 정의가 흔들리는 모습이다. 문 대통령과 집권세력은 ‘나라다운 나라’ ‘정의로운 국가’를 외치지만 의도한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절대적·무조건적 평화를 명분 삼아 집권층 내부에서부터 퍼져 가는 ‘북핵 인정’ ‘남핵 불가’ ‘미국 견제’ 같은 이상한 풍조는 국론을 분열시키고 국민을 갈라놓고 있다.

김정은의 눈에 한국은 참 편하고 다루기 쉬운 먹잇감으로 보일지 모른다. 임진왜란·병자호란이 코앞에 닥쳤는데 ‘외적 침략론’과 ‘외침 불가능론’ 두 패로 나뉘어 공허한 말싸움으로 세월만 보낸 조선의 정치·공론(公論) 문화는 작금의 우리나라 정치 현실과 겹친다. 국내 정쟁엔 능하면서, 외적과의 싸움에선 무능하기 짝이 없던 조선조 역사가 재현될까 두렵다.

이번 추석 음식상엔 북핵과 경제·일자리 문제, 두 얼굴의 적폐청산 등 다양한 화제가 오를 것이다. 사상 최장 연휴 기간 전국 곳곳에서 형성될 추석 여론을 정치인들은 경청하길 바란다. 특히 60%대로 떨어진 문 대통령 국정 지지도의 향방을 좌우하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국민도 정치도 바람 앞 등불 같은 나라의 운명을 먼저 생각하는 추석이 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