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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공학 실험실이 칩 속으로 쏙~'랩온어칩' 각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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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6면

머리카락의 10분의1~20분의1 정도의 가는 실을 무 자르듯 토막으로 자른 것이 보통 세포의 크기다. 눈으로는 보이지 않고 현미경을 통해서만 볼 수 있다.

살아 있는 이런 세포의 반토막에만 약물을 넣어 독성 유무를 알아낼 수 있을까.

또 살아있는 세포 속에 암 발생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p53이라는 단백질의 움직임이나 그 유무를 파악할 수 있을까.

'이동 실험실'이라는 랩온어칩(Lab-on-a chip)이 이런 일까지 가능하게 하면서 생명공학의 새로운 차원을 열고 있다. 랩온어칩은 손바닥 만한 크기의 칩으로 초미세회로의 반도체 기술과 나노기술.생명공학이 어우러져 하나의 칩에서 모든 실험을 가능하게 한 데서 붙여진 이름.

이는 21세기의 생명공학의 실험 양상과 생산성 등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데 주도적인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세계 각국이 새로운 기술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도 하다.

일본 JST와 미국 NIST는 대학과 연합해 살아 있는 하나의 세포 속을 유리병을 들여다보듯 할 수 있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유전자 이동에서부터 위치까지 파악하고, 조절까지 가능하게 하자는 것이 연구 목표다.

여기에는 수백가지의 색을 내는 나노(10억분의1m)입자로 유전자를 염색하는 기술이 사용된다. p53단백질에 파란색을 내는 나노입자를 염색했다면 그 입자의 움직임만 관찰하면 어느 위치로 옮겨 어떤 기능을 하는지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는 책상용 컴퓨터만큼 큰 기기가 최소한 서너대가 있어야 이런 실험이 가능했다. 앞으로 단일생체분자 검출용 랩온어칩이 개발되면 5분 안에 한 사람의 생체 정보를 모두 알아낼 수 있게 된다.

이렇게 되면 DNA를 많은 양으로 늘리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오차를 크게 줄일 수 있는 장점도 있다. 랩온어칩은 대량 증폭 과정(PCR)을 거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미 셀로믹스사는 세포 모양과 세포의 신호전달 과정을 관찰할 수 있는 랩온어칩을 최근 개발했다. 기존 기술은 세포 몇개가 죽었는지, 살았는지 정도밖에 알 수 없었다.

즉 항암제 실험의 경우 암세포를 키우고 있는 시험관에 항암제를 넣은 뒤 암세포가 얼마나 죽었는지 살았는지로 그 효과를 판단한다. 랩온어칩은 모양이 바뀌거나 형질전환된 세포를 파악하는 것까지도 가능해진다.

한국의 디지털 바이오 테크놀러지사도 세포만 넣으면 발암유전자 등을 몇십분만에 알아내는 랩온어칩을 개발 중이다. 이 회사는 적혈구와 백혈구를 한줄로 세워 그 숫자를 셀 수 있는 세포 계수기를 개발하기도 했다.

디지털 바이오테크놀러지 장준근(서울대 교수)대표는 "랩온어칩은 수년 안에 살아 있는 세포 하나에서 일어나는 변화를 손금보듯 할 수 있게 발전할 것"이라며 "박사급 연구자가 아닌 단순 기능인력으로도 그같은 실험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방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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