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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오디세이] 홍대선 한의사, 기타 치는 서양 약초 전도사

미주중앙

입력

대학밴드의 전설 `블랙 테트라`를 창단하고 도미, 한의사가 돼 미국 약초를 알리는데 힘쓰고 있는 홍대선 한의사가 그가 아끼는 일렉기타로 연주하고 있다. 김상진 기자

대학밴드의 전설 `블랙 테트라`를 창단하고 도미, 한의사가 돼 미국 약초를 알리는데 힘쓰고 있는 홍대선 한의사가 그가 아끼는 일렉기타로 연주하고 있다. 김상진 기자

일렉기타를 연주하는 이순(耳順) 한의사라니. 만나서 한참을 이야기 하는 동안도 무대에서 록을 연주하는 그를 상상하긴 힘들었다. 그러나 사진촬영을 위해 기타를 잡는 순간 지금껏 서양 약초를 설명하던 한의사는 사라지고 60~70년대 영국 록밴드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전설의 기타리스트 제프 벡의 그림자가 스친다. 홍대선(60) 한의사다. 한국 대학밴드의 전설인 홍익대 '블랙 테트라'를 창단하고 도미해 20년 넘게 한의사로 살아왔지만 여전히 기타리스트로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를 만나봤다.

홍대 '블랙 테르라' 창단
도미 후 한의대 졸업

약초 100여종 키우며
무료강의로 큰 호응

가족과 밴드 만들어
7년간 연주활동 '눈길'

"연주활동 꾸준히 하며
서양약초 알리고파"

#블랙 테트라, 전설의 탄생 

서울에서 나고 자란 그는 까까머리 중학생 시절 AFKN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던 팝송에 매료됐는데 특히 지미 페이지, 에릭 클랩튼 등 당대 세계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던 천재 기타리스트의 선율에 빠져 들었다. 그러다 고교 1학년 때 누나에게 선물 받은 기타 한 대가 그의 인생을 바꿔 놓았다. 독학으로 배운 기타연주에 푹 빠진 것이다. 당연히 공부는 뒷전이 됐고 그런 장남을 부모가 마뜩잖게 여겼음은 불 보듯 뻔한 일. 급기야 부친은 그의 보물 1호인 기타를 박살냈다.

"기타를 못 치니 고3 1년간은 바짝 공부만 했어요.(웃음) 결국 부모님 뜻대로 공대에 진학했지만 대학에 간 것도 결국 부모님 눈치 안보고 음악을 하기 위해서였죠.(웃음)"

1974년 배재고 졸업 후 홍익대 전자공학과에 입학한 그는 종로에 있는 유명 음악학원에 등록해 본격적으로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얼마안가 음악을 듣기만 해도 바로 악보를 그리는 수준에 이르렀다. 그리고 고교선배이며 대학동문인 이후 '송골매' 리드보컬이 된 구창모와 의기투합, 홍대 고교 동문들과 밴드를 결성했다. 바로 대학밴드의 전설 '블랙 테트라'가 탄생하는 순간이다. 밴드명은 그가 직접 지은 것인데 집에서 기르던 열대어 이름이었다고. '블랙 테트라'는 70년대 후반부터 각종 가요제를 휩쓸며 7080 세대에겐 대학밴드의 상징적 존재가 됐다. 이후 구창모가 이끌던 '블랙 테트라'와 배철수가 이끌던 항공대 밴드 '활주로'가 의기투합해 탄생한 밴드가 바로 한국 록 밴드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송골매'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뿌려놓은 씨가 아름다운 꽃으로 피어나는 그 찬란한 시간들과 함께 하지 못했다. 그 무렵 그는 군복무를 마치고 졸업 후 LA에서 유학 중이었다.

#기타리스트에서 한의사로 

그러나 LA에 거주하던 고모의 권유로 1982년 LA에 와 시작한 경영학 공부는 적성에 맞지 않아 2년 만에 작파했다. 그리고 시작한 것이 기타 레슨. 처음엔 누가 올까 싶었는데 웬걸, 한인신문에 조그맣게 광고를 내니 적잖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그러면서 한 한인교회에서 그룹레슨 요청이 들어왔고 그렇게 가르치던 학생들과 교회 찬양밴드까지 결성하게 됐다. 일요일 저녁 예배시간마다 무대에 섰는데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덕분에 입소문을 타고 가주는 물론 타주에서까지 초청을 받아 공연을 했다. 그리고 1986년 기타레슨을 하다 만난 아내 홍영란(55)씨와 결혼하고 가정도 꾸렸다. 결혼 후엔 잠시 햄버거 가게를 운영하다 1991년 삼라한의과대학에 입학했다.

"어려서 난치 피부병을 한방으로 고친 적이 있었어요. 그때부터 한의학에 대한 관심은 있었는데 결혼 후 더 늦기 전 한의학을 공부 해보자 마음먹었죠."

입학 후 중국어 원서를 읽기위해 중국어반 청강까지 하면서 공부에 매달린 덕분에 성적은 늘 최상위권이었고 2년 뒤 석사학위를 받고 졸업한 그는 모교에서 강의를 시작했다.

"한의학은 하면할수록 기타연주보다 더 재밌더라고요.(웃음) 공부 시작하고는 꽤 오랫동안 기타 잡을 생각이 들질 않았으니까요."

이후 그는 1995년 원광대 한의대에 객원연구원으로 가 한의학 연구와 한문공부를 하고 돌아왔다. LA에 돌아 온 뒤에는 모교와 LA인근 한의과 대학에 출강하면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약초 전도사로 동분서주 

이후 1996년 터스틴에 한의원을 오픈하면서 본격적으로 그는 서양약초에 대해 공부하고 이를 알리는데 주력했다.

"한의대 재학시절 제 만성 앨러지를 에키네시아라는 약초로 고친 후부터 서양약초에 관심을 갖게 됐죠. 이후 꾸준히 약초 공부를 했고 한의원 개원 후 본격적으로 집 뒤뜰에 약초 100여종을 심고 키우면서 한인들에게 약초를 알리는데 주력했습니다."

당시 그는 한의원에서 정기적으로 서양약초 강의를 했는데 입소문이 나면서 외부강의가 쇄도했고 본격적으로 서양약초 전도사로 활동하게 됐다. 그러면서 본지에 서양약초 연재를 시작했고 2008년엔 이를 묶어 '한의사가 알아야할 서양약초'를 출간하기도 했다, 이처럼 바쁜 와중에도 그가 다시 기타를 잡게 된 건 1997년 '홍 패밀리 밴드'를 결성하면서부터.

"제가 워낙 바쁘다보니 아이들과 관계가 소원해지는 걸 우려한 아내가 가족 밴드를 제안했죠. 처음엔 함께 연주하는 데 의미를 뒀는데 1년도 채 안 돼 주변에서 공연요청으로 한 두 번씩 공연하다보니 전문밴드가 돼버렸어요.(웃음)"

그가 리드 기타를 맡았고 아내는 베이스 기타를, 당시 아홉 살이던 아들 시드니 군이 드럼을, 일곱 살이던 딸 소피아 양이 보컬과 키보드를 연주했다. 패밀리 밴드라는 콘셉트도 독특한데다 실력까지 출중하다보니 밴드는 금세 입소문을 타고 유명해졌다. 한인교회와 양로병원 등 한 달에 4차례 이상씩 공연을 다니며 7년간 왕성하게 활동했다. 이후 시드니 군의 대학진학으로 밴드는 해체 됐지만 부부는 6년 전부터 클라리넷과 색소폰 연주자인 나민주 목사와 함께 '어쿠스틱 트리오'를 결성해 다시 무대에 오르고 있다. 이처럼 그는 무대를 그리워하는 천생 기타리스트이기도 하지만 본업은 역시 한의사. 현재 그는 풀러턴에서 가주한의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샌타애나 소재 정형외과 그룹에서 통증치료 담당 한의사로 근무 중이다.

"주류사회에서는 서양약초에 대한 정보도 많고 실생활에서 손쉽게 이용하는데 아직 한인사회엔 그렇지 않아 이를 알리는데 주력하고 싶어요, 어차피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니까요."

그러고 보면 그는 지금껏 사람들에게 무언가를 건네는 것에 행복을 느끼며 살아 온 듯하다. 무대에선 관객들에게 위로와 행복을, 한의사로선 건강을 돌보고 유익한 정보를 전달하며. 일견 전혀 다른 영역처럼 보이나 그에겐 하나의 영역일지도 모를 음악과 한의학 사이를 오가며 그는 오늘도 분주히 행복을 배달 중이다.

이주현 객원기자 joohyunyi3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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