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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프 트렌드] 한국 근대사 흔적 고스란히 남아 있는 예향으로 가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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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면

올해의 관광도시 광주 남구 

곳곳에 100년 넘은 건축물 #항일 독립운동가들 발자취 #유명 예술가 산실 양림동

광주광역시 남구 양림동은 호남 근대 역사·문화의 발상지로 유명하다. 주민 9000여 명이 거주하는 이 작은 동네에서 한국을 대표하는 독립·사회운동가와 문화·예술인이 많이 탄생했다. 근대역사 문화 공간도 잘 보존돼 있다. 올해의 관광도시로 선정된 광주시 남구가 양림동 출신의 역사적 인물을 조명하는 인문학 축제를 개최한다. 역사적 인물의 숨결이 서려 있는 양림동의 모습과 문학, 음악, 미술, 관광자원 등 다양한 문화 콘텐트를 소개한다.

지난해 ‘굿모닝! 양림’이 열린 광주 양림동 사직공원 야외 무대에서 지역 음악가들이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사진·광주시 남구]

지난해 ‘굿모닝! 양림’이 열린 광주 양림동 사직공원 야외 무대에서 지역 음악가들이 클래식 음악을 연주하고 있다. [사진·광주시 남구]

1904년 유진 벨과 오웬 선교사가 첫발을 디딘 양림동은 근대 문물과 기독교 문화가 뿌리내린 곳이다. 우일선 선교사 사택, 오웬기념각, 커티스 메모리얼홀, 윈스브로우홀, 기독병원, 양림교회 등 11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근대 역사·문화 공간들이 동네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1919년 3·1 만세운동의 호남 시발점이 양림동이다. 3월 5일 양림동 남궁혁 목사의 집에서 거사를 도모했고, 3월 10일에는 수피아여학교와 숭일학교 학생들이 만세운동을 주도했다. 독립을 향한 선조들의 민족정신은 5·18 광주 민주화항쟁으로 이어지며 자유와 민주를 향한 시민 혁명의 초석이 됐다. 수피아여학교에 다니던 윤형숙(예명 윤혈녀) 열사는 일본 경찰에 의해 태극기를 들던 왼손이 잘려 나가자 오른손에 태극기를 들고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고문으로 한쪽 눈마저 실명하고 광주에서 추방된 그는 손양원 목사와 함께 여수에서 북한군에게 순교 당했다. 독립운동가의 은신처를 만들기 위해 한옥에 다락방을 얹은 최승효 가옥, 항일투쟁 장소로 이용된 양파정, 일제 강점기 한옥인 이장우 가옥과 적산 가옥이 현재까지 보존돼 있다.

일제에 맞서 싸운 사회운동가

광주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오방 최흥종 목사와 소심당 조아라 여사다. 광주 시민들은 최흥종 목사를 가리켜 광주 정신의 지주라고 말한다. 최 목사는 나환자 근절을 위한 연구회 조직, 봉선나병원 건립, 여수 애양원 및 소록도 나환자 병원 건립, 빈민 구제활동 등 사회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가난하고 굶주린 자와 나환자들의 친구이자 아버지였다.

독립·여성·사회운동가인 조아라 여사는 광주의 어머니로 칭송 받는다. 그는 1929년 수피아여학교 학생으로 5·18 광주 학생운동 선봉에 섰다가 옥고를 치렀다. 고난과 역경 속에서 정의와 진실을 위해 싸웠다. 호남여숙(야간중학), 성빈여사(육아사업), 계명여사(윤락여성 선도, 직업보도사업), 별빛학원(야학반) 등을 운영하면서 억압받는 자와 소외 당한 자와 아픔을 함께했다.  양림동은 많은 문화인이 작품 활동을 펼친 곳으로 유명하다. 전국 최초로 소년운동을 시작한 독립운동가이자 광주·전남 최초의 현대시인인 김태오 선생, 다섯 살 무렵 독립유공자인 아버지 김창국 목사를 따라 광주에 온 김현승 선생이 대표적이다. 김현승 선생은 호남시단의 스승이자 우리나라 시단에서 가장 빼어난 지성시인으로 꼽힌다. 미당 서정주가 한국 최고의 서정시라고 극찬한 ‘봄비’와 ‘동백꽃’ ‘낮달’을 쓴 이수복 시인도 양림동 출신이다.

김현승·문순태·황석영씨 고향

‘징소리’ ‘타오르는 강’을 발표한 문순태 선생, ‘장길산’을 집필한 소설가 황석영, ‘첫사랑’ ‘젊은이의 양지’를 쓴 드라마 작가 조소혜도 이곳이 고향이다. 이곳에서 태어났거나 살면서 작품 활동을 한 시인이 20여 명에 달한다.

양림동이 배출한 음악가도 있다. 중국의 3대 혁명 음악가 정율성이 이곳에서 났다. 그는 ‘중국 인민해방군가’ ‘팔로군 행진곡’ ‘연안송’ 등 400여 곡을 작곡했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간 삼형제도 있다. 큰형 정준채는 북한 최초의 컬러 영화 ‘무용가 최승희’를 연출한 북한 초대 서기장 출신 영화감독이다. 동생 정추는 차이콥스키 음대에서 대학 최초로 졸업논문 만점을 받은 천재 음악가다. 형을 따라 월북해 평양음대 교수를 지낸 그는 김일성 우상화에 염증을 느끼며 소련에 망명했다. 이후 북한의 암살을 피해 카자흐스탄으로 가 음악 활동을 하다 이국에서 비운의 생을 마감했다. 막내인 정근은 광주 최초로 새로나합창단을 창단하고 ‘텔레비전에 내가 나왔으면’ ‘둥글게 둥글게’ 등 주옥 같은 동요 300여 곡을 작곡했다.

양림동 출신 화가도 많다. 한국보다 일본에서 더 유명한 배동신 작가는 무등산을 배경으로 수많은 작품을 남기며 양림동에서 미술혼을 불태웠다. 조선대 미대 교수와 시립미술관 관장을 역임한 서양화가 황영성, 빛의 화가로 유명한 우제길, 불 같은 미술혼을 불태우다 요절한 화가 이강하가 있다. 풍부한 문학적 감성으로 시를 쓰고 활발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는 화가 한희원을 비롯해 지금도 많은 예술가가 활동하고 있다.

풍성한 문화 축제 '굿모닝! 양림'

광주시 남구가 10월 11~30일까지 양림동과 사직공원 일대에서 ‘제7회 굿모닝! 양림’을 개최한다. 축제 기간 양림동의 문화인물전, 황영성 작가 아카이브전 등 다양한 전시회가 마련된다. 10월 13일에는 가수 박강성과 일렉바이올리니스트 유진박의 숲속음악회, 14일에는 전국 가을 시낭송 대회와 전영록·추가열·유익종 등이 출연하는 추억 찾기 음악회, 15일에는 안도현 시인의 인문학 강좌가 열린다.

‘2017 양림 국제 재즈페스티벌’도 열린다. 10월 27~29일 양림동의 이야기 스테이지(양림동 관광안내소), 양림 스테이지(오웬기념각), 버들 스테이지(양림 오거리)에서 국내외 재즈뮤직 공연이 펼쳐진다. 해외 아티스트의 ‘마스터 클래스’를 비롯해 ‘찾아가는 공연’ ‘양림 마켓(플리마켓)’ ‘아마추어 밴드 공연’이 진행된다. 

강태우 기자 kang.tae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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