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北 개탄(deplorable)"에 반색 트럼프, 뼈있는 농담?클린턴 디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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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1일 오전(현지시간) 미국 뉴욕 롯데팰리스호텔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모두발언을 시작했다. 문 대통령은 “이번 북한의 도발이 대단히 개탄스럽고, 우리를 격분시켰다”고 말했다. 통역은 ‘개탄스럽다’는 단어를 영어로 ‘deplorable’이라고 표현했다. 문 대통령의 발언이 끝난 뒤 트럼프 대통령은 “문 대통령이 ‘deplorable’이라는 단어를 써서 기쁘다”고 말했다. 이어 “내가 그 단어를 써달라고 부탁한 것이 아니다. 이는 나와 수백만명에게 행운의 단어였다”며 웃었다.

정상회담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정상회담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이 ‘deplorable’이라는 단어에 반색한 이유를 지난해 미국 대선 과정에서 찾았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과 맞붙었던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대선 후보는 트럼프 지지자들을 개탄스러운 집단(basket of deplorable)이라고 비난했다. 이에 적절치 않다는 비난 여론이 일었고, 클린턴은 발언에 대해 유감을 표하며 사실상 사과했다. 이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더욱 결집하는 효과로도 이어졌다. 클린턴은 최근 펴낸 대선 회고록에서 이 발언에 대해 “트럼프에게 정치적 선물을 건네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후회했다.

정상회담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정상회담 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이런 사연이 있는 단어를 문 대통령에게서 듣자 트럼프 대통령이 크게 반가워했다는 것이다. WP는 “트럼프 대통령이 문 대통령과의 회담에서 클린턴을 소재로 농담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대선 경쟁자를 아직 떨쳐내지 못한 듯 하다”고 해석했다. 그가 언급한 수백만명은 그의 지지자들을 뜻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외교가에선 다른 해석도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이 북한과의 대화에 방점을 찍어온 문 대통령과의 이견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는 것이다. 그는 북한의 6차 핵실험 직후인 지난 4일 트위터에 “내가 한국에 말했듯이, 그들은 북한에 대한 유화적 발언(talk of appeasement)이 효과가 없을 것이란 점을 알아가고 있다”고 올려 논란이 일었다.

외교 소식통은 “트럼프 대통령이 대북 유화주의자처럼 표현했던 문 대통령이 북한의 도발에 대해 강한 비판을 쏟아내자 의외라는 뜻으로 농담을 던진 것으로 보일 수도 있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실제 현장에 있는 외신 기자들 사이에서는 부정적 뉘앙스의 발언인 것 같다는 반응도 나왔다고 한다. 공교롭게도 트럼프 대통령이 해당 발언을 하는 순간 강경화 외교부 장관의 표정은 다소 굳어 있었다.

그러나 농담은 농담일 뿐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도 나온다. 김지윤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우연히 트럼프 대통령에게 의미 있는 단어가 나온 것이고, 말 그대로 재미 있자고 농담을 한 것 같은데 지나치게 큰 의미를 둘 필요는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유지혜·박유미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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