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정부, 끝내 800만 달러 대북 지원 결정 … 시기는 나중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8면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에 참석해 개회를 선언하고있다. 정부는 이날 800만 달러 대북 인도 지원을 결정했다. 오른쪽은 임성남 외교부 제1차관. [김춘식 기자]

조명균 통일부 장관이 21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에 참석해 개회를 선언하고있다. 정부는 이날 800만 달러 대북 인도 지원을 결정했다. 오른쪽은 임성남 외교부 제1차관. [김춘식 기자]

문재인 정부 들어 첫 대북 지원을 결정했다. 정부는 21일 286차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교추협)를 열고 아동과 임산부 등 북한의 취약계층을 위한 도움이 시급하다며 유니세프와 세계식량계획(WFP)에 각각 350만 달러(약 39억6620만원), 450만 달러(약 50억9940만원) 등 800만 달러(약 90억6560만원)를 공여키로 의결했다. 통일부 장관(조명균)이 위원장인 교추협은 10여 개 부처의 차관급 인사와 외부 전문가들이 참여해 남북 교류와 협력에 관한 정책을 협의·조정하고, 대북 지원 등 중요 사항을 심의·의결하는 기구다.

조명균 “북한 영유아·임산부 열악 #남북상황 엄중하지만 인도적 지원” #북한의 추가도발 우려되는 상황 #국내외 “부적절한 결정” 지적 나와

조명균 통일부 장관은 이날 “북한의 연이은 도발로 한반도 정세와 남북 관계 상황이 매우 엄중하다”며 “정부는 북한의 도발에 대해서는 국제사회와 함께 제재와 압박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정부는 북한 주민, 특히 영유아·임산부 등 취약계층의 열악한 상황을 고려해 인도적 지원은 정치적 상황과 분리해 추진한다는 방침을 일관되게 밝혀 왔다”며 “국제사회도 북한 정권의 도발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재로 대응하면서도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 필요성은 계속 강조하고 있다”고 말했다. 6차 핵실험과 중장거리 탄도미사일 화성-12형 발사 등 잇따른 군사적 위협을 고조시키는 북한 정권과 지도부에 제재와 압박을 강화하면서도 도움의 손길이 필요한 북한 주민들에 대한 지원은 별개로 순수한 입장에서 접근해 나가겠다는 취지다.

문재인 정부 들어 처음 열린 교추협도 이런 정부의 기조에 따라 통일부가 마련한 국제사회를 통한 대북 지원 방침을 의결하고 30여 분 만에 끝냈다. 교추협을 앞두고 대북 지원 문제에 대해 미국과 긴밀한 협의도 진행해 왔다고 한다.

관련기사

지난 14일 정부가 대북 지원 방침을 밝힌 뒤 논란이 일자 카린 훌쇼프 유니세프 동아시아 및 태평양 지역 사무소장도 20일 성명을 통해 “북한 어린이들이 직면한 어려움은 지극히 현실적이며 이들에 대한 지원은 매우 시급하다”며 “어린이는 어린이일 뿐 정치와는 무관하다”고 거들었다.

그러나 북한의 추가 도발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이날 교추협을 열어 대북 지원을 결정한 건 시기적으로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국내외에서 나온다.

진희관 인제대 통일학부 교수는 “국제사회를 통한 지원은 거의 매년 해왔고, 인도적 입장을 견지하는 것도 큰 방향에서 맞는 것”이라며 “하지만 북한의 핵실험에 대해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대북제재 결의 2375호를 채택(한국시간 12일)한 지 이틀 만에 정부가 교추협을 열겠다고 결정(14일)하고, 그 다음 날 북한이 화성-12형 미사일을 쏘는 상황에선 조금 더 신중한 접근이 필요했다”고 말했다. 미·일 정부에서도 부정적 반응을 보였다.

이런 여론을 의식해 교추협은 이날 지원 시기를 못 박지는 않았다. 정부 당국자는 “그동안 열린 교추협에서 지원 시기를 확정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오늘(21일) 회의에서는 지원 방침은 의결했지만 시기와 (지원) 규모를 조절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들이 있어 즉각 지원하기보다는 향후 상황을 고려해 지원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고 전했다. 결국 정부가 향후 남북 관계 등 제반 상황을 고려해 지원키로 결정한 것인데, 이는 정치·군사 상황과 인도적 지원을 결부시키지 않겠다는 입장을 정부 스스로 뒤집은 셈이다. 또 북한 취약계층이 당장 지원을 받아야 할 상황이라던 기존의 설명도 설득력을 잃게 됐다.

다른 당국자는 “지원 시기는 통일부 차원에서 검토될 것”이라며 “지난 5월과 7월 국제기구에서 대북 지원에 정부가 참여해 달라는 요청이 있었고, 국제기구들도 연간 지원 계획이 있는 만큼 (공여가) 내년으로 넘어가진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연내에 대북 지원이 이뤄질 수 있다는 뜻이다.

정용수 기자 nkys@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