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앞서가는 여당 대표, 설거지 바쁜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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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진석경제부 기자

박진석경제부 기자

정치인의 말은 때에 따라 선정적이고 경박하다. 면책특권을 등에 업은 무책임함과 선출직 특유의 ‘인기 영합주의’ 때문일 것이다. 정치인 발언에 혀를 차면서도 어느 정도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발언이 사회적 논란으로 이어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대표적인 게 사회에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사안에 대해 혼선을 초래할 경우다. 특히 여당의 힘 있는 정치인이 정부의 정책에 반대되는 발언을 내놓을 때는 파장이 커진다. 지난 4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의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 발언은 분명히 이 범주에 속한다. 그는 “초(超)과다 부동산 보유자에 대한 보유세 도입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새로운 종류의 보유세 도입이나 기존 보유세 인상을 시사한 발언으로 풀이됐다.

재산세나 종합부동산세 등의 부동산 보유세 인상은 내년 세법개정안이나 ‘8·2부동산 대책’ 결정 과정에서도 논의됐다. 그러나 여당과 정부는 협의 끝에 단행하지 않기로 결론 내렸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이달 초 언론 인터뷰에서 “일부 부유층뿐 아니라 부동산 보유자 전체에게 적용되는 것인 데다가 미실현 이익에 대한 과세라 추가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그 이유를 밝혔다.

그런데 정부와 함께 이런 결정을 내렸던 여당의 대표가 그 결정에 반대되는 발언을 내놓은 것이다. 시장은 술렁거렸다. 특히 추 대표는 소득세, 법인세의 명목세율을 인상하지 않기로 했던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결정을 하루아침에 뒤집는 데 앞장선 전례가 있다. 그때와 달리 이번에는 김 부총리가 “보유세 인상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발 빠르게 나섰지만,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

부동산 보유세 인상은 분명히 언젠가는 제대로 따져봐야할 주제다. 하지만 인상 유보 결정이 내려졌다면 일단은 존중해줘야 하지 않을까. 이미 떠나버린 배를 되돌리겠다는 식의 발언은 승선자들을 불안하게 만들 뿐이다. 다음 배를 기다리면서 그 배에 무엇을, 얼마나 실을지 논의하는 것이 더욱 생산적인 행보일 것이다. 조금 기다렸다가 다음 부동산 대책이나 그 다음 세법개정안 등의 공식 논의 과정에서 더욱 적극적으로 의견을 개진하는 것이 온당한 처사라는 얘기다. 정치인들이 소신의 피력이나 선명성 경쟁에 앞서 ‘시장 안정’이나 ‘정책 방향의 준수’라는 가치를 한 번만 더 생각해주길 기대해본다.

박진석 경제부 기자 kaila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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