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취재일기

탈북인들 “별난 호칭 사절합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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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하준호 기자 중앙일보 기자
하준호 사회2부 기자

하준호 사회2부 기자

‘새꿈주민’. 서울시가 4월 20일부터 4주간 실시한 ‘북한이탈주민 대체명 공모’에서 최우수작으로 뽑힌 용어다. ‘새로운 꿈을 키우기 위해 탈북한 이들을 잘 상징한다’는 게 선정 이유였다.

그런데 서울시는 선정 결과를 온라인을 통해 조용히 공개했다. 공모 시작 때와 달리 언론에 알리지 않았다. 최우수작으로 선정되는 용어를 통일부에 새 명칭으로 삼아 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라고 했는데 그렇게 하지도 않았다. 서울시 관계자는 “용어 변경은 법을 개정해야 하는 일이라서 소관 부처인 통일부와의 협의가 필요하다. 업무 혼선을 초래하지 않기 위해 내부적으로 종결했다”고 말했다.

이런 일을 전해 들은 북한이탈주민들은 “차라리 발표하지 않은 게 다행”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함북 무산 출신인 박영철(35)씨는 “최우수작 용어가 발표됐다면 반발이 꽤 있었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용어라도 당사자가 듣기 편해야 한다”고 말했다. “왜 굳이 새로운 용어가 필요한 것이냐”는 지적도 있었다. 양강도 혜산에서 온 대학생 송모(23)씨는 “나처럼 조용히 살아가는 대부분의 북한이탈주민들은 대한민국 국민으로 떳떳하게 살고 싶어한다. 따로 구분되고 싶지 않다. 우리를 지칭하는 용어가 늘어날수록 차별과 부담만 는다”고 토로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북한을 탈출해 한국으로 온 이들을 부르는 법적 용어가 처음 등장한 것은 1962년이다. ‘월남귀순자’라고 불렀다. 78년에는 ‘귀순용사’가 됐다. 90년대 초부터는 ‘귀순북한동포’라고 했고, 97년에 ‘북한이탈주민’이 됐다. 2005년에는 통일부가 ‘새터민’이란 새 용어를 만들었다. 새로운 터전을 필요로 한다는 뜻이다. 그런데 일부 북한이탈주민의 반대 때문에 2008년부터 정부가 사용을 자제하고 있다. 이런 탓에 실생활에선 탈북자·탈북민·탈북인·새터민·북한이탈주민이 혼용된다.

평북 영천 출신인 최모(51)씨는 “우리를 ‘먼저 온 통일’이라고 치켜세우면서 한편으론 특정 용어로 지칭하는 건 서운하다”고 말했다. ‘탈북인 박사 1호’인 안찬일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은 “위로하고 동정하는 마음에서 나온 단어가 오히려 북한이탈주민들에게 ‘3등 국민’ 낙인이 될 수 있다”고 걱정했다.

행정 편의로 뭔가 용어가 필요하다면 북한이탈주민이나 탈북인 정도로 표현하면 된다. 당사자들이 반기지도 않는, 유별난 이름을 하나 추가하려고 호들갑 떨 이유는 없다. 새 꿈은 출신 지역과 상관없이 누구나 품을 수 있다.

하준호 사회2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