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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취재일기

마녀사냥터 된 240번 버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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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이현 기자 중앙일보 기자
이 현 사회 2부 기자

이 현 사회 2부 기자

평범한 목요일 아침, 버스 앞문으로 올라타 교통카드를 찍고 빈자리를 ‘탐색’한다. 빈 의자까지 세 걸음쯤 남았을 때 버스 기사는 “손잡이 꽉 잡으세요” 채근하며 문을 닫고 액셀을 밟는다. 서울의 익숙한 출근 풍경이다. 내릴 때도 마음이 급하다. 양손에 짐을 든 할머니가 뒤뚱거리며 내리는 순간에는 승객들 시선이 뒷문에 꽂힌다. ‘왜 빨리 안 내리나’ 버스 기사보다 승객들 눈치가 더 무서울 때도 있다.

이번 주에 ‘240번 버스’ 이야기로 인터넷 세상이 시끄러웠다. 지난 11일 밤 한 인터넷 카페에 “5살도 안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버스에서 내리고 뒷문이 닫혔고, 엄마는 못 내렸다”고 올라온 목격담은 “아주머니가 울부짖었다” “다음 역에서 엄마가 울며 뛰어나가는데 (버스 기사가) 큰소리로 욕을 하더라”는 상황 설명으로 이어졌다.

논란이 커지자 서울시가 진상 조사에 나섰다. 욕설이나 비명은 없었다. 시는 버스회사와 운전기사의 규정 위반은 아니라며 “버스 안이 혼잡해 운전기사의 상황 파악이 늦었고, 이미 차선을 변경한 상태라 사고 위험 때문에 다음 정류소에서 문을 여는 게 낫다고 판단한 것 같다”고 잠정 결론을 내렸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버스 기사를 향했던 공분은 이틀 만에 아이 엄마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관련 기사에 글을 올린 적도 없는 아이 엄마를 “무고 혐의로 수사하라”는 댓글도 달렸다. 사건을 알린 첫 글이 여성 회원이 많은 커뮤니티에 올라왔다는 이유로 “‘맘충’이 문제”라는 비난도 쏟아졌다.

화풀이 대상을 겨누듯 쏟아지는 ‘말의 화살’은 정작 진실도, ‘진짜 문제’도 맞히지 못했다. 세 살배기 딸을 키우는 이모(31)씨는 “아이 엄마나 버스 기사가 욕을 먹을 게 아니라 승·하차를 여유 있게 할 수 있는 버스운행 문화가 중요한 게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아이 둘을 키우는 류모(36)씨는 “버스 기사뿐 아니라 승객들, 나아가 사회 전체가 ‘교통 약자’에 대한 배려가 부족하다. 아이를 데리고 버스 타는 엄마들이 왜 불안감을 느껴야 하느냐”고 말했다.

연수 중인 선배가 전하는 영국 브라이튼의 버스 풍경은 서울과 달랐다. 이층 버스는 승객들이 일어나 계단을 다 내려올 때까지 정류장에 조용히 멈춰 기다린다. 어린이나 노인이 타고 내릴 때는 이동식 경사로를 이용해 시간이 더 걸리지만, 재촉의 눈길을 보내는 사람은 없다. 240번 버스가 갈등으로 내달린 건 누구 한 사람 탓이 아니다.

이 현 사회2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