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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려면 왜 워싱턴까지 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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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정효식 기자 중앙일보 사회부장
정효식 워싱턴 특파원

정효식 워싱턴 특파원

한국 국제교류재단과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공동 주최로 5일(현지시각) 미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동맹의 현재와 미래’ 포럼. 지난주 북한의 6차 핵실험 이후 한·미 동맹의 현주소가 여전히 매끄럽지 않음을 보여주는 자리였다. 이날 양국 고위 관리로는 유일하게 참석한 조현 외교부 제2차관의 발언이 비슷한 시각 다른 자리에서 나온 미 정부 고위 관리의 발언과 엇박자를 냈기 때문이다.

조 차관은 “북한의 핵무장과 한반도 전쟁을 막기 위해 제재·압박을 통해 결국 북한을 대화로 끌어내야 한다”고 예의 대화를 강조했다.

이어 “지금 북한과의 대화를 얘기하기엔 어울리지 않는 때”라고 전제하면서도 대화의 두 가지 종류를 언급했다. 하나는 비핵화를 위한 대화이고, 또 하나는 인도적 대화 또는 비무장지대(DMZ)의 군사적 긴장 완화를 위한 군사회담이라고 했다. 전자는 북한의 도발·위협 중단 등 적절한 조건이 갖춰지면 재개할 수 있고, 후자를 위한 대화는 대북제재·압박을 상쇄하지도 않으며 전략적 실수도 아니라고 설명했다.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그는 이어 “(미국 정부가) 모든 옵션을 테이블 위에 올려놨다고 강조하는 필요성은 이해하지만, 이것이 전쟁 비화로 해석되거나 북한의 오판을 야기하지 않도록 신중해야 한다”는 조언도 했다.

이런 입장은 비슷한 시각 새라 샌더스 미 백악관 대변인의 브리핑 방향과 사뭇 달랐다. 샌더스 대변인은 “우리의 우선순위는 분명하다. 지금은 북한과 대화하는 데 집중해 많은 시간을 쓸 때가 아니다”며 "할 수 있는 모든 압박수단을 동원할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대통령과 국방장관이 말했듯이 모든 옵션은 테이블 위에 있고 우리가 추구하는 결과를 얻을 때까지 계속 테이블 위에 놔둘 것”이라고도 했다.

이날 워싱턴 포럼에선 어느 때보다 한·미 동맹의 분열(divergence)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컸다. “미·중이 한국을 빼고 북핵 위협을 제거하기 위한 빅딜을 추진할지 모른다” “트럼프 대통령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폐기할 수 있다”는 우려들이었다. 이런 민감한 시점에 한국 정부를 대표한다는 고위 외교관의 발언은 결과적으로 양국의 이견과 한·미 동맹의 분열을 부각한 셈이 됐다.

한마디 한마디에 신중해야 할, 돌다리도 두드리고 건너야 할 절체절명의 국면인데 그가 왜 굳이 워싱턴까지 왔는지 이해하기 어려웠다.

정효식 워싱턴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