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첫 '니코틴 독성 이용 남편 살해' 혐의 아내 유죄 인정될까, 오늘 법원 선고 주목

중앙일보

입력

의정부지방법원전경. [중앙포토]

의정부지방법원전경. [중앙포토]

담배를 피우지 않는 50대 남자가 ‘니코틴 과다’로 숨진 국내 첫 ‘니코틴 살해사건’의 선고 공판이 7일 의정부지법에서 열린다. 법원이 유죄를 인정하면 국내 첫 인정 사례가 되기 때문에 법원의 판단이 주목된다.
 이 사건의 피고인인 송모(48·여)씨와 내연남 황모(47)씨 2명이다. 송씨는 황씨와 짜고 지난해 4월 22일 경기도 남양주시 자신의 집 방에서 잠이 든 남편에게 니코틴 원액을 주입해 살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 사건에 대해 검찰은 지난달 28일 의정부지법 형사합의11부 심리로 열린 결심공판에서 송씨와 황씨에게 각각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직권으로 이 사건 피고인의 최후 변론을 4차례나 연기해 고심을 엿보이게 했다. 살해 동기와 정황은 충분하지만, 니코틴 원액을 어떻게 주입했는지 등 구체적인 살해 방법이 입증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약물 이미지. [중앙포토]

약물 이미지. [중앙포토]

 경찰은 시신 부검 결과 담배를 피우지 않는 오씨의 몸에서 니코틴이 치사량인 리터 당 1.95㎎ 나오고, 수면제 성분인 졸피뎀이 다량 검출되자 니코틴 중독에 의한 사망 사건으로 보고 수사를 벌여 이들을 구속했다.

지난해 4월 비흡연 50대 ‘니코틴 과다’로 숨져 #부인과 내연남이 니코틴 이용해 죽인 혐의로 구속 #검찰, 결심공판서 아내와 내연남에게 무기징역 구형 #담배 안 피는 숨진 남편 몸에서 치사량 니코틴 검출 #검찰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방법으로 피해자 살해” #변호인 “직접적인 증거는 하나도 없다” 무죄 주장

검찰과 경찰은 오씨 사망 일주일 전에 황씨가 인터넷으로 니코틴 원액 20㎎을 구입한 사실, 송씨가 내연남 황씨에게 1억원을 송금한 사실 등을 확인했다. 검찰은 국내에서는 그동안 니코틴 연구가 거의 이뤄지지 않은 상태라고 밝혔다. 검찰 관계자는 “다만 과거 기록상 니코틴 치사농도(혈중 니코틴 함량)의 경우 이번 보다 작은 리터 당 1.4㎎에서 사망한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과 경찰은 또 오씨가 숨지기 두 달 전 혼인신고됐고, 황씨가 니코틴 원액을 해외 구매한 점, 니코틴 살해 방법을 인터넷에서 검색한 정황 등도 확인했다. 특히 오씨 사망 직후 집 두 채 등 10억원 상당의 재산을 빼돌리고 서둘러 장례를 치른 점 등으로 송씨와 황씨를 범인으로 지목했다. 두 사람은 8000만원 상당의 남편 보험금을 가로채려 한 혐의(사기)도 받고 있다.

검찰은 “보통 사람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방법으로 피해자를 살해하는 반인륜적인 범행으로 사회가 충격받았다”며 “피고인들은 몇 달씩 범행을 준비하고 증거인멸을 시도하고도 반성 없이 파렴치한 변명으로 일관해 동정의 여지가 없다”고 구형 이유를 밝혔다.

변호인은 “불리한 정황 증거가 다수 있고 피고인들의 진술 번복도 인정하지만 직접적인 증거는 하나도 없다”며 “비록 피고인들의 주장이나 변명이 유죄를 의심하게 하더라도 대법원 판례에 따라 확신을 갖게 하는 증거가 없다면 무죄로 봐야 한다”고 반박했다.

약물 이미지. [중앙포토]

약물 이미지. [중앙포토]

송씨는 법정에서 “남편이 왜 죽었는지 모르고 황씨는 내연남이 아닌 환전업 파트너로 송금한 1억원은 투자금”이라며 혐의를 부인했다. 황씨 역시 “금연하고자 전자담배를 피우려고 액상 니코틴을 구매했고 사업 파트너여서 송씨의 집을 드나들었을뿐”이라고 주장했다. 둘은 최종 변론에서도 혐의를 부인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

송씨와 황씨의 변호인은 “검찰의 공소 사실은 ‘망인 몰래 혼인신고하고 살해 후 상속 재산을 가로챘다’와 ‘니코틴을 주입해 살해했다’로 요약할 수 있다”며 “그러나 검찰 역시 알 수 없는 방법으로 주입했다고 하는 등 살해 방법을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며 무죄를 주장했다.

검찰은 11개월간 재판이 진행되는 동안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 법의학자·대검 심리분석관 등 전문가들을 증인으로 출석시켰고, 증인들도 송씨와 황씨가 범인이라는 취지로 진술했다.

실제 수십년 전 유럽과 미국 등지에서 니코틴이 간혹 독극물로 사용된 사례가 있었다고 한다. 니코틴을 주입해 살해하면 당시 과학기술로는 니코틴 독극물로 인한 사망 여부를 정확히 가려내기 어려웠던 점을 노려 사용됐다. 2006년엔 헐리우드 영화에서도 니코틴을 독극물로 사용해 살해하는 장면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요즘은 혈중 니코틴 농도가 측정되기 때문에 니코틴이 독극물 범죄에 거의 사용되지 않는 실정이다.

의정부=전익진 기자 ijjeon@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