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쓸데없는 입시논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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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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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학과 법학, 대략 보수와 진보. 이렇게 많이 다르면서도 명문대 교수라는 공통점을 지닌 김대식·두식 형제가 몇 년 전 쓴 『공부논쟁』을 다시 꺼내 봤다. 특목고·자사고 폐지논쟁을 비롯해 수능 절대평가 전환 등 대입을 둘러싼 혼선으로 시끌시끌한 요즘, 생각 다른 두 교수가 교육문제를 어떻게 다른 시각으로 바라봤는지 문득 궁금해져서다.

‘이공계 위기는 허구’라며 ‘창의성 떨어지는 전교 1등의 의대행을 오히려 좋아해야 한다’는 등 출간 당시 화제가 됐던 김대식 서울대 교수의 발언 외에 장인DNA와 장원급제DNA라는 표현이 눈에 들어왔다. 장인DNA란 말 그대로 좋아하는 일을 스스로 깊게 파고드는 사람이고, 장원급제DNA는 꽂히는 건 없지만 늘 100점을 받는 호기심 제로의 인간형이다. 지금까지는 장원급제DNA의 시대였다. ‘공부 잘하면 뭐든지 잘한다’는 전제 아래 장원급제DNA가 과학자 같은 장인DNA의 일자리까지도 다 차지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다. 굳이 4차 산업혁명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인공지능이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하는 지금 필요한 건 장원급제DNA가 아니라 장인DNA다. 시키는 대로 성적 잘 받고 스펙 잘 만들어 그럴듯한 대학 간판을 딴 사람보다 창의성이나 공감 능력, 자발적 동기 부여 같은 로봇과 차별화하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 바뀐 세상에서 더 경쟁력이 있다는 얘기다.

미래를 고민하는 전문가들은 너나 할 것 없이 대학에서 배운 것(혹은 대학 간판)으로 평생 먹고사는 ‘평균의 시대는 끝났다’며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MIT 미디어랩 조이 이토 소장은 『더 빨라진 미래의 생존원칙 9(나인)』에서 오래된 트럭을 고치는 동안 세상은 신형 랜드스피더(영화 ‘스타워즈’의 공중부양차량)가 돌아다니는 공간으로 바뀌었다는 비유를 든다. 세상은 급변하는데 시대에 뒤떨어진 엉뚱한 문제에 매달리느라 시간을 낭비하는 걸 꼬집는 말이다.

딱 우리 얘기 같지 않은가. 입으로는 다들 창의적 인재 양성을 운운하지만 교육과 관련한 모든 논의가 결국 명문대 관문 뚫기를 위한 입시 방법의 변화에만 맞춰져 있으니. 장인DNA를 어떻게 키울까 고민해도 부족한 시간에 장원급제DNA만 붙잡고 있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안혜리 라이프스타일 데스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