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괴짜’가 대접받는 창업 생태계 꿈꾼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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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전태연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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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창업의 시대이다. 지난해 전세계적으로 약 1000억 달러(약 115조원)의 자금이 스타트업 투자에 들어갔다. 한국도 지난해 약 2조1000억원의 신규 투자가 발생했다. 6년 만에 2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다. 과거에 비해 창업하기 좋은 나라가 된 것이다. 많은 창업팀들이 창조경제혁신센터·코워킹 스페이스·엑셀러레이터 등이 제공하는 보육공간에서 일한다.

그러나 양적인 성장이 질 좋은 창업으로 이어지진 않는다.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전체 등록 사업자 중 벤처기업, 이노비즈 기업, 경영혁신형 기업 등 혁신형 창업 비중은 0.3%에 불과하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생계형 창업 비중은 62%로, 미국·영국·일본 등 선진국의 생계형 창업 비율(20~30%)보다 배 이상 높다.

필자는 투자자로서 다양한 창업팀들을 만난다. 하지만, 합리적이면서도 상상력이 듬뿍 담긴 사업계획을 만나기가 어렵다. 또 스타트업은 빠른 성장을 위해 기술력으로 서비스를 고도화 해야 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에 걸맞는 엔지니어가 없는 경우가 정말 많다. 이공계 출신 엔지니어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을 창업자 탓으로만 돌리는 건 적절치 않다. 우리는 실질적인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기보다 성적을 올리는 데 집중하는 교육환경을 갖고 있다. 상상력은 애초에 발휘될 여지가 없다. 넘쳐나는 지적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 사소해 보이는 문제에 골몰하는 괴짜를 이상한 시선으로 바라본다. 순수과학에서부터 공학에 이르기까지 사소한 문제를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엄청난 성과를 일궈낼 사람들을 인정하지 않는다.

크고 멋진 회사를 세우는 창의적인 인재를 필요로 한다면 교육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과 제도부터 개선해야 한다. 타인의 삶을 이해하는 교육도 필요하다. 상상하고 토론하며, 자신을 알리고, 남을 이해하려는 사람이 많은 공감을 이끌어낸다. 창업자로써 가장 중요한 자질은 공감을 통해 타인의 상상력까지 발휘하게 만드는 것이다.

엔지니어들에게도 더 많은 기회가 주어졌으면 한다. 괴짜 이공계 출신들이 사소한 문제에 집중할 수 있게 하고, 그런 집중력이 회사의 성과에 연결되도록 해야 한다. 이전과는 다른 새로운 세대에 맞는 경영방식을 혁신해 나감으로써 이공계 인재들이 직업적 가치를 기업 안에서도 찾을 수 있게 도와주는 노력이 필요하다. 기업이 바뀌면, 자연스럽게 더 좋은 인재들이 이공계에 지원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창업의 시대’는 이미 시작된 지 오래다. 그러나 ‘스타트업의 시대’를 맞이하려면 사회의 성장이 뒷받침돼야 한다. 보다 성숙한 창업생태계를 갖추기 위해 대한민국 사회의 전반적인 체질개선이 필요하다.

전태연 본엔젤스벤처파트너스 파트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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