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층 아파트에 둘러싸인 102살 문화재는 어디로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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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7호 29면

누구든지 기차를 타고 부산에 도착하면 이 동네를 지나게 된다. 동구 초량동이다. 부산역을 포함해 맞은 편 산복도로 동네까지 초량동에 속한다. 이곳에는 차이나타운과 일본 영사관, 텍사스 거리가 있다. 과거 한국전쟁 이후에는 산 경사지를 따라 피난촌이 형성됐던 동네기도 하다. 피난촌을 잇는 교통망이었던 산복도로는 부산 서구ㆍ동구ㆍ진구의 3개 구를 관통한다. 길이가 3.2㎞에 달한다.

등록문화재 제349호 부산 초량동 일식가옥의 운명

산꼭대기에 굽이굽이 난 길은 곡절 많던 한국 근대사와 닮았다. 초량은 개항 이후 중국ㆍ일본ㆍ미국 세력들의 관할권 다툼이라는 변혁기를 온몸으로 겪어낸 동네다. 동네 곳곳에서 나이테처럼 켜켜이 쌓인 기억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 덕에 관광 명소가 됐다. 산복도로에서 내려다보는 바다와 야경도 주요 관광 포인트다.

그런 초량이 요즘 또 한 번 변혁기를 맞고 있다. 재개발 때문이다. 부산 북항 재개발 이슈가 동네로 번졌다. 낙후한 집은 철거되고 그 자리에 초고층 아파트가 지어지고 있다. 지금껏 우리 사회 속에서 ‘창조적 파괴’라 불리며 이어져 온 재개발의 모습이다. 싹 밀고 새로 짓는 게 익숙하다지만, 초량3동 81-1번지의 모습은 참말로 기이하다. 102살 적산가옥이 초고층 아파트 재개발 현장에 둘러싸여 있다. 정확히 ‘ㄷ자’로 40여 층 아파트 세 동과 16층 오피스텔 한 동이 2020년께 들어설 예정이다. 지난달 26일 현장에 가보니 가옥 담벼락 바로 옆에 공사 가림막이 세워져 있었고 그 너머로는 땅파기가 한창이었다.

그 난리통에 버티고 선 가옥의 이름은 다양하다. 등록문화재 제349호, 부산 초량동 일본식 가옥, 다나카(田中) 주택 등이다. 1925년 지어진 집은 당시 한반도 철도부설 사업을 위해 토목회사를 운영하던 일본인 다나카가 지었다. 이후 두 차례 증축 과정을 거쳐 가옥은 2층 및 단층 목조주택, 2층 양옥 등 세 동으로 이뤄졌다. 현재 소유주는 일맥문화재단이다. 부산 섬유산업의 토대를 이룬 태창기업의 창업주 고 일맥 황래성 선생이 75년 설립한 재단이다.

“초등학교 4학년부터 고3까지 그 집에서 살았어요. 유년기의 삶과 기억이 몽땅 깃든 곳이죠. 무척 넓었지만 또 그만큼 불편한 집이었어요. 겨울에는 춥고, 여름에는 덥고….”

일맥문화재단 최성우 이사장의 회고다. 그는 황 선생의 외손자다. 외조부가 장만한 집은 2007년 등록문화재가 되면서 재개발지로 강제수용되지 않고 살아남았다. 하지만 문제는 지금부터일지도 모른다. 공사 영향으로 옛 집의 지반침하가 일어나고 있다. 집 안의 모든 방문ㆍ창문이 제대로 닫히지 않고, 보란듯이 아우성치고 있다. 게다가 아파트가 다 지어진다면…? 그리고 산복도로에서 동네를 내려다본다면 어떤 모습일까.

집이 등록문화재로 지정됐을 당시 작성된 문화재청의 기록화조사보고서의 맺음말이 이렇다.

“인근 주변의 경우 초량동 일식가옥과 비슷한 유형의 건축물이 다수 남아 있는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개발계획에 의해 철거될 위치에 처해 있다. 이 같은 주변의 재개발로 인해 고층 아파트가 들어섬에 따라 고립된 문화재로서 방치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종합적이고 세부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할 것이다.”

그로부터 10년 뒤, 집은 고립됐다. 아파트를 위해 208개 필지에 담긴 기억이 쓸려나갔고, 하나만 남았다. 이를 어떻게 살려가야 할까. 기억을 쌓는 대신 허물기만 했던 우리 모두의 과제다.

부산 글ㆍ사진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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