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년 만에 편히 눈 감는 'JSA' 김훈 중위…'군 의문사는 적폐'라는 문재인 정부의 국방개혁 본격 추진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고 김훈 중위(당시 25세)의 생전 모습. 그는 1998년 2월 2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지하벙커에서 오른쪽 관자놀이에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중앙포토]

고 김훈 중위(당시 25세)의 생전 모습. 그는 1998년 2월 24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지하벙커에서 오른쪽 관자놀이에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됐다. [중앙포토]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경비부대 소대장으로서 근무하다 벙커에서 사망한 고(故) 김훈(당시 25ㆍ육사 52기) 중위에 대해 국방부가 '순직' 결정을 내렸다. 1998년 2월 24일 JSA 최전방 소초(GP) 안에서 총상을 입고 숨진 채 발견된 지 19년 만이다.

 국방부는 지난달 31일 중앙전공사상심사위원회를 열고 김훈 중위 등 진상규명 불능 판정을 받은 5명에 대해 전원 순직으로 결정했다고 1일 밝혔다. 현재 경기도 고양시 벽제의 군 봉안소에 있는 김 중위의 유해는 곧 국립 대전 현충원에 안장될 예정이다.

 98년 당시 군 수사당국은 김 중위가 권총으로 자살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유족과 언론을 중심으로 타살 가능성을 제기했다. 진실 공방 속에서 JSA 경비부대 소속 일부 장병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군과 교류했고, 김 중위가 이를 제지하다 살해됐다는 의혹이 나왔다. 이는 2000년 개봉한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에 모티브를 제공했다.

1999년 국회 국방위 '김훈중위 사망사건 진상소위'에서 당시 하경근 의원이 유엔군 사령부 경비대대 소속 미군 정보하사관이 촬영한 8장의 사진을 공개하며 타살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1999년 국회 국방위 '김훈중위 사망사건 진상소위'에서 당시 하경근 의원이 유엔군 사령부 경비대대 소속 미군 정보하사관이 촬영한 8장의 사진을 공개하며 타살의혹을 제기하고 있다. 신인섭 기자

 국방부 관계자는 “대법원과 군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에서도 김 중위 사건 사망의 진상을 밝히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그가 임무 수행 중 ‘사망 형태 불명의 사망’인 점을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앞서 국민권익위원회는 2012년 김 중위의 순직을 인정하라고 국방부에 권고했다. 5년 만에 뒤늦게 받아들인데 대해 국방부 측은 “그동안 순직 기준을 단계적으로 완화했고, 유족 측이 자살을 전제로 한 순직 심사에 동의할 수 없다고 해 늦어졌다”고 해명했다.

고 김훈 중위 유해를 비롯해 군 복무 중 숨진 장병들의 유해가 봉안되어 있는 경기도 벽제의 군 제7지구 봉안소 내 안치실 모습. 봉안소는 군 복무 중 숨진 장병이 심사를 거쳐 국립묘지 안장여부가 확정되기 전까지 임시로 유해가 안치되는 곳이다.  신인섭 기자

고 김훈 중위 유해를 비롯해 군 복무 중 숨진 장병들의 유해가 봉안되어 있는 경기도 벽제의 군 제7지구 봉안소 내 안치실 모습. 봉안소는 군 복무 중 숨진 장병이 심사를 거쳐 국립묘지 안장여부가 확정되기 전까지 임시로 유해가 안치되는 곳이다. 신인섭 기자

 김 중위의 아버지인 김척(75ㆍ예비역 육군 중장)씨는 “지난 19년간 아이를 제대로 묻지 못해 아비로서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면서 “기쁘기보다는 착잡하다. 정부가 부실 수사한 점에 대해 정식으로 사과해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정부 관계자는 “기존의 군 의문사 처리과정을 적폐로 보는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에 따라 군은 앞으로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며 “군 의문사를 비롯한 군 인권 개선과 병영 문화 혁신이야말로 문 대통령이 생각하는 국방개혁 2.0의 핵심”이라고 말했다.

김훈 중위 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만들어진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포스터.

김훈 중위 사건을 모티브로 해서 만들어진 영화 '공동경비구역 JSA' 포스터.

 문 대통령은 지난달 28일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군 의문사 의혹은 여전하다”며 “군의 태도를 보면 고루한 뭔가를 지켜야 한다는데 집착하며 늘 방어적으로 대응한다. 주요 사건에 대해 군 발표를 믿지 못하고, 불신이 계속 되는 상황을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군 의문사 사건을 신속히 처리하고 군 의문사 문제의 근원적 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군 의문사 조사ㆍ제도개선 추진단’을 발족했다. 김 중위와 같은 진상규명 불능 사건을 순직으로 분류하는 내용으로 군인사법 시행령도 고칠 방침이다. 또 의무 복무 과정에서 사망한 병사는 순직으로 인정한다는 군 인사법ㆍ병역법 개정안(일명 ‘이등병의 엄마법’)을 적극 수용하는 방안을 검토하기로 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아래에 군 인권보호관(옴부즈만)을 둬 군 인권 침해 사건을 조사하고 군 인권 개선 방안을 마련하는 권한을 주는 계획도 추진하고 있다.

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