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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계, 연이은 대내외 리스크에 ‘패닉’…경영 시계(視界) 제로

중앙일보

입력

산업계가 연이어 터지고 있는 대내외 리스크로 위기를 겪고 있다. 밖에서는 중국의 사드 보복 등으로 실적에 직접적인 타격을 받고, 안으로는 통상임금 소송 후폭풍 등에 시달리고 있다. 말 그대로 ‘내우외환’이다.

밖으로는 사드보복, 무역장벽, 북한 리스크 #안으로는 통상임금 소송, 최저임금 인상, 국정감사까지 #BSI는 외환위기 이후 최장기간 기준선 밑돌아

1일 산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가 중국 현지 공장 4곳을 지난주 가동 중단하고, 롯데마트가 중국에 긴급 자금 3400억원을 투입하는 등 주요 한국 기업들이 중국에서의 판매 부진에 직격탄을 맞고 있다.

양평섭 대외경제정책연구원 북경사무소장은 “무역보다는 투자, 투자보다는 관광과 문화 콘텐트 분야에서 피해가 크다”며 “과거 조어도 문제로 갈등이 일었던 중·일 경제협력이 원상 회복하는 데 2년이 걸린 점을 감안하면 한·중 경제협력이 회복되기까지 앞으로 시간이 더 걸릴 것으로 본다”라고 말했다.

여기에 미국 트럼프 행정부가 보호무역 장벽을 펼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미사일 도발로 '북한 리스크'까지 커지며 주요 기업의 대외 경제 환경은 안개 속이다.

종합경기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추이 [자료:한국경제연구원]

종합경기 기업경기실사지수(BS)I 추이 [자료:한국경제연구원]

윤원석 KOTRA 정보통상협력본부장은 “이런 위기에도 반도체ㆍ평판 디스플레이 등 기술력이 앞서는 중간재는 제 몫을 해주고 있다”며 “결국 기업 체질 개선을 통해 제품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며, 동남아ㆍ인도 등으로 수출 노선을 변경하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라고 조언했다.

국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전날 법원이 기아차의 통상임금 소송에서 노조의 손을 들어주면서 주요 기업은 파장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현재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인 115개 기업에 영향을 미칠 뿐 아니라, 향후 유사한 소송이 잇따를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이 최근 통상임금 소송을 진행 중인 35개사(종업원 450명 이상)를 대상으로 설문 조사한 결과, 기업이 패소할 경우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지연이자ㆍ소급분 등을 포함해 최대 8조 3673억원(응답기업 25개사)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환익 한국경제연구원 정책본부장은 “통상임금 판결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신의성실의 원칙’ 과 ‘경영상 어려움’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기 때문에 산업 현장에서 계속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며 “통상임금의 정의 규정을 입법화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정부가 밀어붙이고 있는 최저임금 및 법인세율 인상, 비정규직의 정규직화 등도 기업의 경쟁력을 저하시키는 요인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일자리 창출, 수출 증대 등과는 양립하기 힘든 과제라 ‘정책 상충(相衝) 스트레스’가 크다.

황용식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기업에 대한 각종 규제로 우리 기업의 비용 구조와 경영환경이 악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수익구조가 계속 악화되면 국내 기업입장에선 해외 이전 등 극단적 선택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실제 기업들의 경제 심리는 꽁꽁 얼어붙고 있다. 한경연이 매출액 기준 600대 기업을 대상으로 실시한 기업경기실사지수(BSIㆍBusiness Survey Index) 조사 결과, 9월 기업경기 전망치가 94.4를 기록했다. 기준선(100)을 밑돈 것은 지난해 5월 이후 16개월째로, 지난 90년대 말 외환위기 이후 최장 기간에 해당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반도체 등 일부 업종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산업 분야가 외환위기 직후와 비교할 수 있을 만큼 심각한 위기 상황에 처한 것으로 볼 수 있다”며 “통상압력이 커지는 글로벌 여건에서 생존해야하는 기업들은 국내적인 여건까지 불확실해지면 부담이 커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임금ㆍ생산 비용 문제 등에 있어 불확실성을 줄여줄 수 있도록 정부가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앞으로도 만만치 않다는 점이다. 밖으로는 미국-중국 이른바 ‘G2’의 무역전쟁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대외 변동성이 확대되고 있다. 안으로는 공정위의 ‘기업집단국’, 국세청의 ‘대기업ㆍ대자산가 변칙 상속ㆍ증여 태스크포스’ 등이 이달부터 활동을 시작한다. 다음달에는 국감도 예정돼 있다.

한 재계 단체 임원은 “지난해 20대 국회 첫 국정감사에서는 당시로선 사상 최대인 150여명의 기업인들이 출석을 요구받았는데, 이번에는 이를 훨씬 웃도는 기업인이 출석 요구를 받을 것 같다”며  “국정감사가 정책감사라는 본질 대신 ‘기업 때리기’ 장으로 변질될 것 같다”고 우려했다.

손해용ㆍ윤정민 기자 sohn.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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