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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문 대통령과 호남' 질긴 인연의 실타래 하나씩 풀어보니

중앙일보

입력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인 지난 4월 18일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에서 열린 유세에서 지지자들과 손을 잡으며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인 지난 4월 18일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에서 열린 유세에서 지지자들과 손을 잡으며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5·18 당시 공군 비행기 출격 대기나 헬기 기총소사를 조사하다 보면 발포명령 규명까지 갈 수 있을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8일 28일 국방부 업무보고에서 한 발언이다. 문 대통령은 이날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발포명령자를 규명하라”고 전격 지시했다.

文대통령 취임 이후 유달리 호남에 애정 넘쳐 #5·18헬기발포 조사 이어 발포명령자 규명 지시 #1978년 해남 대흥사서 사시 준비한 게 첫 인연 #"80년 5·18 전날 구속돼 광주에 부채의식 생겨" #"5·18기념식이 취임 100일간 제일 좋았던 순간" #호남지지 얻어 당선되자 "오월정신 헌법에"

문 대통령은 또 “지금까지 군(軍) 발표 내용을 믿지 못했는데 이번에는 확실히 가부간 종결을 지어 국민의 신뢰를 받는 계기로 만들라”고 강조했다. 닷새 전인 지난 23일 5·18 당시 헬기 사격과 전투기 출격 대기에 대한 특별조사를 송영무 국방부 장관에게 지시한 것에서 한 걸음 더 나간 것이다.

5·18민주화운동 당시 옛 전남도청 인근인 광주광역시 전일빌딩을 향한 헬기 사격 의혹을 보도한 중앙일보 2017년 1월 13일자 1면. 중앙포토

5·18민주화운동 당시 옛 전남도청 인근인 광주광역시 전일빌딩을 향한 헬기 사격 의혹을 보도한 중앙일보 2017년 1월 13일자 1면. 중앙포토

문 대통령이 취임 이후 호남과 광주에 보여준 각별한 관심을 단적으로 보여준 사례로 꼽힌다.
김수아 광주광역시 인권평화협력관은 "문대통령이 5·18 진상규명에 대해 강력한 의지를 밝힌 데는 호남과 5·18에 대한 각별한 부채의식과 애정이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문대통령의 인사에서도 호남에 대한 적극적 배려가 엿보인다. 이낙연 국무총리(전남 영광)를 시작으로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광주), 박상기 법무부 장관(전남 무안) 등 총 19명인 국무위원 중 5명을 호남 출신으로 임명했다. 문무일 검찰총장(광주)도 12년 만에 호남 출신을 발탁할 정도로 취임 직후부터 호남 지역에 대해 많은 관심을 쏟았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6년 4월 전남 신안군 하의도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모습.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016년 4월 전남 신안군 하의도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를 방문한 모습. [연합뉴스]

경남 거제 출신인 문 대통령이 호남과 첫 인연을 맺은 것은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이던 1978년으로 올라간다. 전남 해남의 대흥사에 들어가 사법시험을 준비한 게 시작이다.

당시 특전사에서 병역을 마친 문 대통령은 예비군 훈련에 빠지지 않기 위해 주소까지 대흥사로 옮겨 전입신고를 했다. 농담처럼 “나도 한때 전남도민이었다”고 주장하는 배경이다. 그는 대선 과정에서도 “본관이 남평(나주) 문씨라는 점에서 절반은 전남도민”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국과수 감식 결과로 본 5·18 헬기 총격 개념도. 중앙포토

국과수 감식 결과로 본 5·18 헬기 총격 개념도. 중앙포토

1979년 1차 사법시험에 합격한 문 대통령은 이듬해인 1980년 '서울의 봄' 때 경희대에 복학했으나 계엄확대 조치로 구속됐다. 5·18 하루 전날인 80년 5월 17일 반독재 민주화 시위에 참여했다가 검거된 것이다. 문 대통령이 당시 20여 일간 경찰서 유치장에 구금된 상태에서 사법시험 2차 합격 통지를 받은 것은 유명한 일화다.

이 때문에 문 대통령 지지자들은 “신청만 한다면 문 대통령도 5·18 유공자로 인정받을 것"이라고 주장해왔다. 하지만 정작 문 대통령은 “5·18 전날 군대 출동소식에 대학생들이 다 철수했다. 그 때문에 광주에 대한 부채의식이 생겼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유족의 사연을 들으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광주광역시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유족의 사연을 들으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중앙포토

문 대통령의 광주에 대한 부채의식은 대통령 취임후 치른 첫 5·18기념식에서도 잘 나타났다. 문 대통령 스스로가 취임 후 100일 동안 ‘좋았던 순간’으로 제37주기 5·18 기념식을 꼽을 정도로 이 행사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5·18기념사에서 문 대통령은 “광주의 진실은 저에게 외면할 수 없는 분노였고, 아픔을 함께 나누지 못했다는 크나큰 부채감이었다”고 말했다. 또 “그 부채감이 민주화운동에 나설 용기를 줬고 그것이 저를 오늘 이 자리에 서기까지 성장시켜 준 힘이 됐다”고 강조했다.

이어 문 대통령은 “문재인 정부는 광주 민주화운동의 연장선 위에 서 있다"면서 5·18 정신의 헌법전문 수록과 철저한 진상 규명 등을 약속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 18일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린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유족의 편지를 낭독한 김소형씨을 위로하고 있다.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이 5월 18일 제37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이 열린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 5·18민주묘지에서 유족의 편지를 낭독한 김소형씨을 위로하고 있다. 중앙포토

문 대통령은 이날 기념식에서 5·18 당시 아버지를 잃은 김소형(37·여)씨를 직접 위로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김씨의 부친인 김재평(당시 29세)씨는 1980년 5월 21일 전남 완도수협에서 일하던 중 김씨가 태어났다는 전화를 받고 광주로 들어갔다가 계엄군의 총탄에 사망했다. 문 대통령은 이날 김씨가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를 낭독하며 울음을 터뜨리자 직접 다가가 안아주는 모습을 보였다.

그는 5·18기념식때 1만 여명의 참석자들과 함께 9년 만에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한 것을 놓고도 만족감을 나타냈다. 문 대통령은 취임 100일 인터뷰에서 “임을 위한 행진곡을 제창할 수 있게 된 게 기뻤다. 당시 돌아가신 아버님에게 드리는 편지를 낭독한 여성분의 서러움이 없어질 수 있다면 내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5월 18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시민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이 5월 18일 광주 북구 국립5·18민주묘지에서 열린 '제37주년 5·18민주화운동 기념식'에서 시민들을 향해 인사하고 있다. 중앙포토

문 대통령이 기념식날 광주광역시 북구 운정동 국립5·18민주묘지에 있는 ‘민주의 문’ 앞에서부터 300m를 걸어가면서 시민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기념식장 바로 앞까지 차를 타고 이동했던 역대 대통령들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이었다. 이날 문 대통령은 방명록에 ‘가슴에 새겨 온 역사, 헌법에 새겨 계승하겠습니다’라고 썼다.

그는 ‘임을 위한 행진곡’이나 영화 ‘택시운전사’처럼 5·18과 관련된 음악이나 영화에도 큰 관심을 보여왔다. 지난 13일에는 고(故) 위르겐 힌츠페터(2016년 작고)의 부인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79) 여사와 영화 ‘택시운전사’를 관람한 뒤 힌츠페터와의 인연을 회상하기도 했다. 힌츠페터는 1980년 5월 독일 제1공영방송(ARD-NDR)의 일본 특파원으로 근무하던 중 광주로 들어가 5·18의 참상을 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알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용산 CGV에서 5·18민주화운동 참상을 전 세계에 보도한 고(故)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의 부인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와 영화 '택시운전사'를 관람한 후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3일 용산 CGV에서 5·18민주화운동 참상을 전 세계에 보도한 고(故) 위르겐 힌츠페터 기자의 부인 에델트라우트 브람슈테트와 영화 '택시운전사'를 관람한 후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 청와대]

영화 ‘택시운전사’의 실제 모델인 고인은 1995년 은퇴 후에도 5·18을 알리는 데 헌신했으며, 2016년 1월 독일 북부의 라체부르크에서 지병으로 숨졌다. 평소 “광주에 묻히고 싶다”는 고인의 유언에 따라 그의 손톱과 머리카락 등 유품이 5·18 옛 묘역에 안장돼 있다.

고인이 80년 5월에 광주에서 목숨을 걸고 촬영한 영상들은 5·18의 실상을 전 세계에 알린 자료가 됐다. 그가 찍은 영상에는 도청 앞에 즐비한 희생자들의 관, 탱크로 무장한 계엄군 모습 등이 생생하게 담겨있다.

8월 21일 광주광역시청에서 개막한 고(故) 위르겐 힌츠페터 추모전 중 영화‘택시운전사’의 촬영 현장을 재촬영한 사진. 극중 택시운전사인 송강호가 독일 기자인 힌츠페터 역을 맡은 토마스 크레취만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8월 21일 광주광역시청에서 개막한 고(故) 위르겐 힌츠페터 추모전 중 영화‘택시운전사’의 촬영 현장을 재촬영한 사진. 극중 택시운전사인 송강호가 독일 기자인 힌츠페터 역을 맡은 토마스 크레취만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프리랜서 장정필

문 대통령은 고인이 찍은 영상을 1987년 부산에서 인권변호사로 활동하던 중 접했다고 한다. 당시 부산 가톨릭센터에서 공개된 ‘기로에 선 한국’이란 다큐멘터리를 통해서다. 당시 부산시민들은 힌츠페터가 직접 제작한 이 영상을 통해 5·18의 참상을 알게 됐다.

문 대통령은 이날 브람슈테트에게 “힌츠페터의 영상으로 진실이 알려졌고 그 진실은 6월 항쟁의 힘이 됐다”며 “진실을 알려 준 데 대해 온 국민과 함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또 “당시 광주의 비극을 아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고 진실을 알리려 하면 처벌받았으며 사람들도 믿어 주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고(故) 위르겐 힌츠페터가 5·18 당시 촬영한 사진. [사진 5·18기념재단]

고(故) 위르겐 힌츠페터가 5·18 당시 촬영한 사진. [사진 5·18기념재단]

그는 “그때는 광주에 대한 유인물만 돌려도 처벌받던 시절이었는데 힌츠페터의 영상은 광주 가톨릭 신부님의 도움으로 부산 가톨릭센터에서 1987년 5·18 주간에 그 영상 전체를 일주일 내내 상영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부산 시민이 광주의 실상을 본 첫 순간이었다. 많은 사람이 광주에 대한 부채감을 가지고 있었다”고 회고했다.

문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 대표 시절이던 2016년 4월 광주 망월묘역을 참배하면서 이른바 ‘전두환 비석’을 밟고 지나가는 모습을 보였다. ‘전두환 비석’은 전 전 대통령이 1982년 망월묘역 인근인 전남 담양을 방문할 당시 묵었던 민박집에 세워진 것을 참배객들이 밟고 지나가도록 시민들이 옮겨놓은 것이다. 전 전 대통령에 대한 거부감을 표현하기 위해서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6년 4월 8일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묘역을 찾아 전두환 기념비석을 지르밟고 지나가는 모습. [연합뉴스]

문재인 대통령이 2016년 4월 8일 광주광역시 북구 망월묘역을 찾아 전두환 기념비석을 지르밟고 지나가는 모습. [연합뉴스]

문 대통령은 취임 후 5·18에 대한 진상규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취임 직후 찾은 5·18기념식장에서 “새 정부는 5·18 헬기사격까지 포함하여 발포의 진상과 책임을 반드시 밝혀내겠다”며 “5·18 관련 자료의 폐기와 역사왜곡을 막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그는 “5·18정신을 헌법 전문에 담아 개헌을 완료할 수 있도록 국회의 협력과 국민 여러분의 동의를 정중히 요청 드린다”고 덧붙였다.

이에 5월 단체와 광주 지역의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일제히 환영의 뜻을 밝혔다.
김양래 5·18기념재단 상임이사는 “대통령이 5·18 당시 전일빌딩에 대한 헬기사격과 전투기 출격 대기에 대한 특별조사를 지시한 것이 진상규명의 시작이 될 것”이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 3월 20일 광주광역시 동구 옛 전남도청 별관에서 5·18 항쟁지 보존을 주장하며 농성 중인 5월 단체 회원들을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 후보 시절인 지난 3월 20일 광주광역시 동구 옛 전남도청 별관에서 5·18 항쟁지 보존을 주장하며 농성 중인 5월 단체 회원들을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뉴시스]

하지만 호남과 광주 민심이 항상 문 대통령에게 우호적이었던 것만은 아니다. 노무현 정권과 두 번의 대선을 치르는 동안 호남 지역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는 가운데서도 ‘호남 홀대론’에 시달려온 게 대표적이다.

그는 노무현 정부 시절 ‘호남인사가 공직인선에서 불이익을 받았다’는 주장과 2003년 대북송금 특검 결정, 2006년 지방선거 당시 ‘부산정권’ 발언 등으로 인해 호남 민심의 질책을 받았다. 2012년 18대 대선 이후로는 “광주 91.9%, 전남 89.2%, 전북 86.2%의 압도적인 지지 속에서 낙선했는데도 진심어린 사과가 없다”는 비판도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도 문 대통령은 호남과 5·18에 대해 다양한 관심과 애정을 쏟으면서 다시 호남 민심을 얻었다는 평가다. 지난 대선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4월 17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공개한 동영상에서 5·18을 강조한 출사표를 던질 정도로 호남 민심을 끌어안으려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인 지난 4월 18일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에서 진행된 집중유세에서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를 이끌었던 김응용 전 감독과 김성한 전 감독이 선물한 해태 유니폼을 입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문재인 대통령이 대선후보 시절인 지난 4월 18일 광주광역시 동구 충장로에서 진행된 집중유세에서 프로야구 해태 타이거즈를 이끌었던 김응용 전 감독과 김성한 전 감독이 선물한 해태 유니폼을 입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뉴시스]

당시 “20년 전 오늘 4월 17일, 대법원은 역사적 판결을 내렸다. 12·12를 쿠데타로 규정하고 전직 대통령을 반란수괴로 단죄했다. 5·18이 명예를 찾았고 헌법의 역사가 바로 선 날”이라며 대선에 돌입했다.
결국 지난해 총선에서 국민의당을 적극 지지했던 호남 민심은 약 1년뒤 치은 이번 대선에서 문 대통령에게 압도적 표를 몰아줬다. 일종의 정치적 화해가 이뤄진 셈이었다.
이처럼 호남과 광주에 대한 문 대통령의 질긴 인연의 끈이 남은 임기 동안 어떻게 진화·발전할 지 주목된다.

광주광역시=최경호 기자 ckha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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