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자·자식까지 '신상털기'…가해자 가족의 트라우마는 어느 정도일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초6 제자와 성관계한 여교사 신상(수정본)', '만두로 꼬셔서 성관계한 초딩 여교사 프로필' ….
네티즌들이 남자 초등학생 제자와 성관계를 맺은 혐의로 구속된 여교사 '신상 털기'를 벌였다. 온라인에는 가해 교사의 이름·출신 학교 등의 신상 정보가 떠돌고 있다. 누군가가 해당 교사와 가족의 모습이라고 주장하며 유포한 가족 사진도 있다. 경남경찰청은 이에 대한 수사를 시작했다. 경찰 관계자는 "29일 한 여성이 '내가 피의자인 것처럼 사진이 돈다. 유포자를 찾아달라'는 내용의 고소장을 접수했다. 피의자 가족과 해당 학교에서도 인터넷 게시판 신상자료 등의 삭제를 요청해 유포 경위에 대한 조사에 착수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분별하게 사진을 게재하면 정보통신망법 등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족까지 터는 무분별한 온라인 '신상털기' #가해자 자녀 중 상당수는 정신건강 '이상' #가족들 "우리에게 복수할 것 같아 무서워" #일본도 가해자 가족 80%가 인권침해 경험

[중앙포토]

[중앙포토]

최근 자극적인 사건이 있을 때마다 온라인에서는 가해자 '신상 털기'가 진행됐다. 문제는 가해자의 배우자·자녀의 정보까지 공개되며 '2차 피해'가 생긴다는 점이다. 지난 2010년 서울의 한 중학교 교사가 제자와 성관계를 맺은 사건이 알려지자 온라인 상에서는 해당 교사의 남편 신상 정보가 유포됐다. 2013년에는 신상이 공개된 아동성범죄자의 미성년 아들이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이 있었다.

이 과정에서 가해자 가족들에게 주어지는 트라우마는 상당하다. 자신의 가족이 하루 아침에 언론에 등장하는 '범죄자'가 된 것만으로도 가족들은 감당하기 어려운 스트레스를 경험한다. 지난해 2월 국립중앙의료원이 수감자 아동 지원단체인 아동복지실천회 '세움'과 수감된 가해자 자녀 20명을 대상으로 건강검진을 실시한 결과 정신건강 검사에서 '이상'으로 나타난 아동이 40%였다. 또 대부분은 외상 후 스트레스나 분노조절 장애 등에 시달리고 있었다.

세움은 지난해 5월부터 8월 말까지 약 4개월 간 수감자 가족 7명을 심층 인터뷰하기도 했다. 수감자 가족들은 매우 복합적인 감정들을 느끼고 있었다. 이들에게 가족의 범죄는 '평생 굴레를 쓰고 살아가야 하는' 족쇄이자 '숨겨야 하는 고통'이었다.

수감자 남편을 두고 있는 한 여성은 인터뷰에서 "이웃들 시선을 피해 자정에 짐을 싣고 동네를 벗어났다. 누군가 나를 따라다니는 것 같고 우리 애한테 복수할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무서웠다. 지하철을 타고도 아는 사람과 마주칠까, 누가 우리 애기 쳐다볼까 마음 놓고 다닐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이밖에도 인터뷰 참가자들은 범죄를 저지른 '내 가족'에 대한 원망과 연민이 뒤섞인 양가감정, 억울함 등을 호소했다.

세움은 지난해 5월부터 약 4개월 간 수감자 가족 7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들이 주로 호소한 감정들이다. [자료 아동복지실천회 세움]

세움은 지난해 5월부터 약 4개월 간 수감자 가족 7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들이 주로 호소한 감정들이다. [자료 아동복지실천회 세움]

이경림 세움 대표는 "가해자 가족 역시 가해자의 짐을 짊어지고 살아가야 할 피해자임에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범죄 가해자와 그의 가족들을 동일시하는 경향이 짙다"며 "특히 어린 자녀들의 인권은 이들의 신상이 무분별하게 공개되는 과정에서 너무나도 쉽게 무시 당한다"고 지적했다.

다른 나라들의 사정도 크게 다르지 않다. 일본의 수감자·가해자 가족 지원 비영리단체 '월드오픈하트(WOH)'는 지난해 "가해자 가족의 80%가 인터넷 비방, 왕따 등 괴롭힘, 성희롱 등 인권 침해를 겪는다"고 발표했다. 또 "가족들 중 상당수는 개인기피증과 자살충동, 반강제적인 주거 이전 등을 경험한다"고 설명했다. 유럽 19개국의 수감자 자녀 네트워크인 'COPE'(Children of Prisoner Europe)는 2013년부터 '내 죄가 아닌데, 아직도 벌을 받고 있어요'(Not my crime, Still my sentence)를 캐치 프레이즈로 한 수감자 자녀 권리옹호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