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SNS 문건 청와대 보고” … MB 향하는 검찰 칼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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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일 사법적 판단이 일단락된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의 대선 개입 의혹 사건의 발단은 제18대 대통령 선거 직전 벌어진 ‘국정원 여직원 감금 사건’이었다. 우여곡절 끝에 당사자들의 사법처리가 이뤄졌고 이제 검찰의 칼끝은 이명박 정부를 향할 분위기다.

국정원 댓글 재판 4년 … 향후 전망은 #검찰, 민간인 댓글 부대 추가 수사 #원세훈 다른 혐의도 입증 나서 #불법 정치개입 전반으로 확대 #국정원 적폐청산 TF와도 공조

대선을 일주일여 앞둔 2012년 12월 11일 이종걸 민주당 의원 등이 국정원 직원들이 인터넷에 선거 관련 불법 댓글을 올린다는 제보를 받고 국정원 직원 김모씨의 서울 역삼동 오피스텔을 찾아가 문 앞에서 35시간 동안 대치한 게 시작이었다. 경찰은 5일 만에 “대선후보 지지·비방 댓글은 발견이 안 됐다”(12월 16일)는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했지만 권은희(현 국민의당 의원) 당시 수서경찰서 수사과장이 ‘수사 축소 및 은폐 외압’을 폭로하면서 정국은 다시 소용돌이쳤다.

이어 같은 해 3월 진선미 민주당 의원이 국정원 내부 문건(원장님 지시·강조 말씀 등)을 공개하고 원 전 원장을 국정원법·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고발해 이 사건은 박근혜 정부 출범 이후 검찰의 첫 수사 대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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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검찰 수사 내내 ‘수사 외압’ 주장이 제기됐고 급기야 윤석열(현 서울중앙지검장) 특별수사팀장이 수사 선상에 오른 국정원 직원을 상부 보고 없이 체포했다는 이유 등으로 ‘항명 논란’이 불거지면서 직무에서 배제되는 등 적잖은 후유증을 남겼다.

특히 2013년 10월 서울중앙지검 등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법무부가) 수사팀을 힘들게 하고 도가 지나쳤다고 한다면 수사팀은 외압이라고 느낀다. (황교안 장관과도) 무관하진 않다고 생각한다”고 한 윤 팀장의 발언은 거센 후폭풍을 불렀다. 당시 법무부 장관이던 황교안 전 총리의 수사 개입 의혹을 공개적으로 제기한 발언이었다.

국정원 심리전단국 직원들을 동원해 여론 형성에 개입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원 전 원장은 1심에서 국정원법 위반 혐의만 유죄로 인정돼 집행유예를 선고받았지만 2심이 선거법 위반까지 모두 유죄로 판단하면서 징역 3년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하지만 대법원은 2015년 7월 항소심이 선거법 위반 혐의 인정의 근거로 받아들인 핵심 증거들의 증거능력을 인정할 수 없다며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서울고법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면서도 대법원은 핵심 쟁점이던 선거법 위반 혐의에 대한 유·무죄의 향방을 가리지 않아 “아무런 오류도 지적하지 않은 채 막연히 증거능력을 부정했다”(민변)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법조계에선 4년여에 걸친 수사와 재판에도 불구하고 원 전 원장의 ‘고난’이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검찰이 원 전 원장의 다른 혐의(직권남용 및 횡령 등) 입증을 목표로 추가 수사를 벌이는 한편 국정원의 기타 불법 정치개입 의혹 전반으로 수사의 폭을 넓히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검찰은 지난 23일 사이버 외곽팀장의 주거지 등을 대상으로 한 압수수색 당시 영장에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었다. 이들과 원 전 원장의 공모 관계 입증을 염두에 둔 포석으로 해석된다.

검찰 주변에선 수사가 이명박 전 대통령의 관여 여부로 확대될 것이라는 관측도 제기된다. 국정원 적폐청산 TF는 지난 3일 국정원이 2011년 10월 ‘SNS를 국정홍보에 활용하라’는 청와대 회의 내용을 전달받고 ‘SNS 선거 영향력 진단 및 고려사항’이라는 제목의 문건을 보고했다고 발표했다.

검찰 수사가 이 전 대통령 시절 청와대로 향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최근 청와대가 전 정부 캐비닛 등에서 발견해 검찰에 넘기고 있는 자료에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지도 향후 수사 방향에 영향을 미칠 주요 변수다.

국정원 개혁위원회는 이날 “이미 검찰에 수사 의뢰한 ‘민간인 댓글부대’ 외곽팀 팀장 30명 외에 18명이 중간에 교체된 사실을 확인해 이들에 대해서도 수사 의뢰할 것을 권고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현일훈·박사라 기자 hyun.il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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