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이트] 전기차 시대엔 리튬 수요 2900% 늘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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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 말 마차의 시대가 저물고 자동차가 등장했을 때 세계 경제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 도로망이 연결되면서 경제개발의 발판이 됐다. 이동이 편리해지면서 큰 도시 외곽으로 소도시가 형성됐다. 자가운전을 하는 중산층이 생겼고, 차를 몰고 찾아가는 대형 쇼핑몰은 소비 지형을 바꿔놓았다.

배터리 핵심 소재 … 가격도 치솟아 #카셰어링 늘어 주차장 남아돌고 #자동차 AS 시장은 쪼그라들 듯

전기차가 대세로 자리 잡으면 미래는 어떻게 달라질까. 영국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자동차 시장을 넘어 사회 전체 모습이 바뀔 수 있다”고 전망했다. 전기차 개발은 자율주행 기능, 카셰어링 등 새로운 서비스와 맞물려 속도를 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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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컨대 전기차 카셰어링을 이용하는 사람이 늘고 개인의 차량 소유가 줄면 주차장이 공급과잉 상태가 될 수 있다. 빈 주차장을 주택이나 공원으로 개발하면 도시 모습이 확 바뀌게 된다.

자율주행 기능을 갖춘 전기차가 나오면 장거리 출퇴근에 대한 부담이 줄게 된다. 시내 집값이 내려가고 교외가 오르는 등 부동산 수요 지형에도 변화가 올 수 있다. 석유 수요가 줄어 유가는 하락하겠지만 전기 수요는 확 늘어날 것이다. 정부는 전기 소비량을 주시하면서 발전 용량 확보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이코노미스트는 지적했다.

자동차 관련 산업은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전기차 제조는 내연기관차보다 진입 장벽이 낮다. 전기차는 ‘바퀴 달린 컴퓨터’로도 불린다. 내연기관차보다 생산 과정이 단순하고 인원도 적게 든다.

이코노미스트는 “지금의 자동차 공장은 과도한 인력 등 고비용 구조와 싸우지만 새로 진입하는 전기차 업체는 부담이 적다”고 설명했다. 전기차는 부품 개수도 적은 데다 각종 오일·필터 등 정기적으로 교체해야 할 품목도 적기 때문에 차량 애프터서비스(AS) 시장은 쪼그라들 전망이다.

권력 교체기에는 새로운 기업이 부상할 기회가 생긴다. 글로벌 투자은행 UBS는 “쉐보레 볼트 전기차의 파워트레인(동력전달장치)을 분해해 보니 전통적인 1차 협력업체가 공급한 부품은 하나도 없었다”며 “구성품의 56%를 기존 자동차 부품업체가 아닌 LG가 공급했다”고 밝혔다.

전기차 생산 증가로 가장 영향이 큰 자원은 배터리의 핵심 소재인 리튬·코발트·흑연 등이다. 리튬은 수요가 급격히 늘면서 가격이 치솟고 있다. 탄산 리튬 가격은 2011년 t당 4000달러에서 최근 1만4000달러로 올랐다. UBS는 전기차가 내연기관 차를 완전히 대체하는 경우 리튬 수요가 지금보다 2898% 증가할 것으로 내다봤다. 컨설팅업체인 벤치마크 미네랄 인텔리전스에 따르면 세계 리튬 매장량은 최소 2억1000만t으로 추정된다. 현재 연간 생산량은 18만t에 불과하다. 석유와 달리 리튬은 재활용이 가능하다. 세계 리튬 매장량의 3분의 1을 차지하는 칠레가 ‘전기차 시대의 사우디아라비아’가 될 수 없는 이유다.

내연기관 배출가스 처리 장치에 쓰이는 핵심 소재인 백금족 원소(platinum group metals)는 전기차 시대에 설 자리를 잃을 것으로 보인다. 53% 수요 감소가 예상된다. 산업의 쌀로 불리는 철강 수요는 1% 줄어들 전망이다.

박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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