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그러고 나서 아는 사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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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세기의 대결이 끝났다. 무패 복서 플로이드 메이웨더 주니어가 격투기 강자 코너 맥그리거를 꺾었다. 심리전의 달인 맥그리거는 “싸움에서 반드시 이길 수 있는 3단계 방법이 있다. 먼저 말싸움에서 이기고 심리전에서 이겨라. 그리고 나서 쓰러뜨리면 된다”며 도발했지만 결국 무릎을 꿇고 말았다.

맥그리거의 3단계 승리 방법을 설명하는 과정에서 사용된 ‘그리고 나서’는 잘못된 표현이다. “그러고 나서 쓰러뜨리면 된다”로 고쳐야 올바르다.

‘나서’는 앞말이 뜻하는 행동이 끝났음을 나타내는 보조동사 ‘나다’의 활용형이다. 본동사 뒤에 오는 것이 보조동사이므로 ‘나서’ 앞엔 동사가 와야 한다. “깨고 나서” “뛰고 나서”와 같이 ‘-고 나다’ 구성으로 쓰이는 ‘나서’ 앞에는 깨다·뛰다 등의 동사가 온다.

‘그리고’는 단어·구·절·문장 따위를 병렬적으로 연결할 때 사용하는 접속부사이므로 ‘나서’ 앞에 올 수 없다. ‘그리고 나서’라고 해선 안 되는 이유다. 말싸움과 심리전에서 이긴 뒤 쓰러뜨리면 된다는 것이므로 ‘그러고 나서’로 쓰면 된다. 그렇게 하다는 뜻의 동사 ‘그러다’에 어미 ‘-고’와 동작의 완료를 나타내는 ‘나서’가 연결된 구조다.

‘그리고는’도 바른 표현이 아니다. 접속부사 ‘그리고’ 다음엔 보조사가 붙지 않으므로 “그는 패했다. 그러고도 돈방석에 앉았다”처럼 사용해야 한다.

이은희 기자 eunh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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