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심리전단 몰랐다는 원세훈, 녹취록엔 “심리전단은 좌파 차단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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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고법이 30일 원세훈(66) 전 국가정보원장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인정한 데는 그가 부서장회의 등에서 한 발언이 영향을 미쳤다. 재판부는 "전(全) 부서장회의에서 선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야당이 승리하면 국정원이 없어진다는 취지로 말하는 등 사실상 (선거 관여) 활동을 전체에 지시했다"고 설명했다.

원세훈 5년째 심리전단 모르쇠 #"구체적 업무 몰라 어리둥절하다" #녹취록에는 심리전단 활약 칭찬 #

검찰이 증거로 제출해 재판부 판단의 근거가 된 국정원 내부 보고서와 관련 녹취록을 중앙일보가 입수했다. "심리전단의 활동 사항을 몰랐다"는 원 전 원장의 주장을 재판부가 외면한 이유가 된 자료들이다. 심리전단은 이른바 ‘댓글부대’를 운영한 국정원 조직이다.

 ‘국정원 전 부서장회의’ 녹취록에는 원 전 원장이 직접 심리전단을 국정 홍보와 진보 세력 압박의 도구로 사용하고, 그 결과를 칭찬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검찰은 지난달 24일 원 전 원장의 파기환송심 결심 공판에서 증거로 제출된 이 녹취록의 일부를 공개했다.

2009년 12월 18일자 부서장회의 ‘모두 말씀’ 녹취록에 따르면, 원 전 원장은 전 부서장들에게 이명박 정부의 4대강 사업 홍보 방안을 설명하며 “그런 자료를 다 잘 만들어가지고 지부라든가 각 우리 직원들한테도 자료를 주고 또 심리전단 같은 데서도 심리전도 하고 그렇게 해서 지금 좌파들이 국정이 앞으로 잘 가는 것을 발목 잡으려는 것을 여러분들이 차단시키는 것에 더욱 앞장을 서주기 바래요”라고 말했다.

2009년 12월 8일자 국정원 전 부서장회의 회의록.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이 심리전단에게 심리전을 주문하고 4대강 정책 찬성 여론이 높아진 데 대해 "적극적으로 움직여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2009년 12월 8일자 국정원 전 부서장회의 회의록.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이 심리전단에게 심리전을 주문하고 4대강 정책 찬성 여론이 높아진 데 대해 "적극적으로 움직여 주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같은 녹취록에는 “대통령께서 국민과의 대화 이후에 4대강도 찬성이 더 많아졌어요. 이런 것 자체가 대통령께서 말씀하시는 것보다도 우리 각 지부에서도 적극적으로 움직여 주고 있기 때문에 바뀌고 있다고 본다”는 원 전 원장의 발언도 담겨 있다.

이 회의가 있기 4일 전인 2009년 12월 4일자 「‘대통령과의 대화’ 계기 국정지지도 제고 전략 홍보 결과」 문건에도 원 전 원장의 발언 내용이 있다.

2009년 12월 4일 작성된 국정원 보고서. 여론추이 및 향후 전망에서 현안 정책에 대한 찬성 측 주장이 점차 세를 형성 중이라고 쓰여 있다.

2009년 12월 4일 작성된 국정원 보고서. 여론추이 및 향후 전망에서 현안 정책에 대한 찬성 측 주장이 점차 세를 형성 중이라고 쓰여 있다.

이 문건에 따르면 심리전단은 “VIP의 진정성ㆍ소통리더십 부각, 좌파의 폄훼 기도 차단을 위한 전방위 전략 홍보활동을 전개”한 결과 “세종시 등 현안관련 찬성측 주장이 점차 세를 형성 중”이라고 분석했다. 이 문서는 같은 해 11월 27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이 세종시 문제 등을 설명하는 TV 특별생방송에 출연한 것을 전후해 심리전단의 활동 내역과 결과를 보고하기 위해 작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원 전 원장은 그동안 심리전단 활동을 지시한 사실을 부인해 왔다. 검찰이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뒤 법정에서 “심리전단 직원들의 업무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지 못해 어리둥절하다”(2014년 7월 14일, 서울중앙지법)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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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4월 20일 부서장회의 발언록에는 원 전 원장이 북한 도발에 대응하는 심리전을 언급하며 “우리 원에서도 하지만 지부에서도 심리전 12국하고 다 연결돼서 하고 있지요. 심리전이라는 게 대북심리전도 중요하지만 중요한 것은 우리 국민에 대한 심리전이 꽤 중요해요”라고 말한 내용이 적혀 있다. ‘심리전 12국’은 심리전단을 부르는 국정원 내부 용어다. 국정원 본부 뿐 아니라 각 지역에 있는 지부들도 심리전단과 연계해 일을 하고 있음이 드러난다.

2012년 4월 20일자 국정원 전 부서장회의 회의록.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이 "우리 원에서도 하지만 지부에서도 심리전 12국하고 다 연결돼서 하고 있지요?"라고 질문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심리전 12국은 심리전단을 뜻하는 국정원 내부 용어다.

2012년 4월 20일자 국정원 전 부서장회의 회의록. 원세훈 당시 국정원장이 "우리 원에서도 하지만 지부에서도 심리전 12국하고 다 연결돼서 하고 있지요?"라고 질문한 것으로 기록돼 있다. 심리전 12국은 심리전단을 뜻하는 국정원 내부 용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취임 초기 작성된 심리전단 주요 업무 보고 문건. 심리전단은 활동 내역을 세세히 보고하며 "원장님의 지휘방침을 받들어 업무역량을 배가"하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 취임 초기 작성된 심리전단 주요 업무 보고 문건. 심리전단은 활동 내역을 세세히 보고하며 "원장님의 지휘방침을 받들어 업무역량을 배가"하겠다는 다짐을 밝혔다.

2009년 8월 6일 작성된 국정원 문건. 같은해 7월 9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홍보 만화 제작을 지시하고, 이를 이행한 내역을 다시 원 전 원장에게 보고한다고 돼 있다.

2009년 8월 6일 작성된 국정원 문건. 같은해 7월 9일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홍보 만화 제작을 지시하고, 이를 이행한 내역을 다시 원 전 원장에게 보고한다고 돼 있다.

2009년 8월 6일에 작성된 「정부 ‘현안정책 홍보만화’ 제작ㆍ활용계획」에는 復命(복명)이라는 한자가 붙어있다. 복명은 명령에 따른다는 의미다. 문서 상단엔 ‘7.9 원장님 지시사항’이라는 표시가 있다. 이 문건에는 만화 제작 주체의 명의를 “정부정책 홍보물임을 고려”해 문화체육관광부로 가장해 배포하겠다는 계획도 담겨있다.

김준영 기자 kim.junyo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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