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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 경험한 男, 스트레스 심한 女 자살 시도할 확률 크다

중앙일보

입력

서울 마포대교에자살 예방 목적으로 설치된‘한번만 더’동상. 김경록 기자

서울 마포대교에자살 예방 목적으로 설치된‘한번만 더’동상. 김경록 기자

2년 전 갑작스러운 복통으로 응급실에 실려 온 70대 박모씨는 담도암 말기 진단을 받았다. 수술을 결정하고 병원에 입원했지만, 정리할 업무가 있다며 잠깐 퇴원한 뒤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남긴 유서에는 값비싼 병원비와 자신을 돌볼 가족의 고통이 부담스럽다는 내용이 적혔다.

연세대 김덕원 교수·이완형 박사 #"자살 생각 있다" 5000여명 분석 #男 6.8%, 女 5% 실제 자살 시도 #저학력자·우울증 환자 위험 커 #남성은 급성, 여성 만성 이벤트 영향 #연구 결과 국제 학술지 6월호 개제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수십 년 간 자살률 1위란 불명예를 안고 있다. 매년 50여만명이 자살을 시도할 것으로 추정된다. 이들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데는여러 원인이 작용한다. 이런 가운데, 국내에서 처음으로 자살을 생각한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자살 시도의 원인을 심층 분석한 연구결과가 나왔다.

연세대 의대 김덕원 교수(의학공학)와 연세대 보건대학원 이완형 박사(직업환경의학) 연구팀은 2007~2012년 국민건강영양조사에서 "지난 1년간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한 6358명을 대상으로 연구를 진행해 30일 결과를 발표했다.

연구팀은 대상자 중 응답 신뢰도가 높은 5293명을 대상으로 성별·만성질환·흡연·스트레스 등 기존에 자살에 영향을 미친다고 알려진 원인을 파악하고, 각각의 요인이 실제 자살 시도에 얼마나 영향을 미치는지를 분석했다.

연구 결과 자살을 생각한 적이 있다고 답한 남성 1567명 중 106명(6.8%)이, 여성은 3726명 중 188명(5%)이 실제 자살을 시도했다.

남녀 모두 저학력일 때와 우울증을 앓을 때 자살 시도율이 높았다. 초등학교만 졸업한 경우 대학을 졸업한 남녀보다 자살 시도율이 남성 5.8배, 여성 3.8배 높았다. 우울증을 앓는 경우 그렇지 않은 쪽에 비해 자살 시도율이 남녀 각각 3.3배, 3.1배 높았다.

그 외 원인은 남녀 간에 차이가 있었다. 남성은 암 경험자의 자살 시도가 그렇지 않은 경우의 2.4배였다. 그 외 원인은 그 자체가 자살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

반면 여성은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을 때(3.6배), 흡연자(2.3배), 기초생활 수급자(1.8배), 거동이 불편할 때(1.6배) 등 상대적으로 다양한 원인이 자살 시도율을 높이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완형 박사는 "남성은 갑작스러운 사건·사고가, 여성은 지속적인 경험이 실제 자살을 시도하는 데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덕원 교수는 "일반인이 아닌, 자살을 생각한 고위험군을 대상으로 위험요소를 심층 분석한 데 의의가 있다"며 "자살 시도가 반복적으로 이뤄지는 만큼, 자살 위험이 큰 환자를 중점적으로 관리하면 자살 사망률을 낮출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이 연구는 국제 학술지인 'BMC 공중보건(BMC Public Health)’ 6월호에 실렸다. 박정렬 기자 park.jungryu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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