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야모야병 40대'가 산재 인정받은 이유 '택시영수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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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치성 희귀질환인 모야모야병을 앓는 40대 회사원이 해외파견 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진지 4년만에 산재 인정을 받았다. 그의 산재 인정을 도운 건 뜻밖에도 택시·샌드위치 영수증이었다.

24일 경향신문에 따르면 서울행정법원 2단독 임수연 판사는 싱가포르 파견근무 중 뇌출혈로 쓰러진 김모씨(45)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요양불승인처분 취소소송에서 17일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

김씨는 2013년 12월 30일 퇴근 후 호텔에서 휴식을 취하던 중 방문 앞에 쓰러진 채 호텔 직원에게 발견됐다. 구급차로 긴급후송돼 혈종 제거술을 받고, 한국 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던 중 모야모야병으로 인한 우측편마비와 실어증 진단을 받았다.

김씨는 밀린 업무 탓에 공식 출근시간보다 1시간 일찍 나왔고 점심 시간도 아끼려 샌드위치를 사먹으며 일을 했다. 동료들은 과로로 인한 산재를 의심했지만 2015년 8월 근로복지공단 부산지사는 김씨의 뇌출혈의 원인이 선천성 뇌혈관 질환으로 알려진 모야모야병인 만큼 업무관련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며 김씨의 요양급여신청을 불승인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씨가 산재 인정을 받을 수 있게 된 건 김씨의 출근 시간을 입증할 수 있는 택시영수증과 점심 시간 근무를 짐작케 하는 샌드위치 영수증이 김씨의 주당 근무 시간이 64시간을 넘겼음을 입증하는데 도움이 됐기 때문이다.

산재보험법 시행령상 뇌·심혈관 질환이 과로로 인정되는 업무시간은 발병전 한달동안 주당 64시간 이상 근무를 했을 때다. 당초 근로복지공단은 김씨의 근로시간을 출근 시간인 오전 8시를 기준으로 했고, 점심시간 1시간을 제한 채 계산해 산재 기준에 10시간 미달한다고 봤다.

하지만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임 판사는 "출근시 택시 하차 시간과 저녁 퇴근시 택시 승차 시간을 기준으로 업무 시간을 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며 한달간 주당 평균 업무시간을 68시간으로 봤다. 또 "원고가 점심도 간단히 샌드위치 등으로 때우며 계속 업무를 본 만큼 업무 시간에서 점심 휴게시간 1시간을 통째로 차감하는 것은 가혹하다"며 점심 휴게시간도 업무시간에 포함했다.

법원은 김씨가 모야모야병을 갖고 있었던 점에 대해서도 과중한 업무로 인한 스트레스가 김씨의 발병에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판단했다. 임 판사는 "원고는 낯선 환경에서 익숙치 않은 업무를 처리해야 했으며 원고가 수행해야 할 업무양이 상당히 많았고 어려웠던데다 해외체류기간 3개월내에 끝마쳐야 하는 시한이 정해져 있던 터라 원고가 겪는 업무적 부담과 정신적 압박감은 심했을 것"이라며 "원고의 업무가 과중했고 발병일이 다가올 수록 업무부담이 증가하여 육체적·정신적인 과로와 부담, 스트레스가 유발되었고 이로인해 모야모야병이 발현되었거나 자연적인 진행속도 이상으로 급격하게 악화된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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