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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추적]진보 이재명의 무상교복, 보수 정찬민에 옮겨붙다...100만 메가시티 '복지 경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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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청서 만난 정찬민 용인시장(왼쪽)과 이재명 성남시장. 정 시장이 무상교복 정책에 대해 한수 배우려 이 시장을 찾았다. [용인시]

지난 22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청서 만난 정찬민 용인시장(왼쪽)과 이재명 성남시장. 정 시장이 무상교복 정책에 대해 한수 배우려 이 시장을 찾았다. [용인시]

지난 22일 오전 11시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성남시청사 2층 시장실.
정찬민(58) 용인시장이 이재명(53) 성남시장을 예방했다. 정 시장과 이 시장이 각각 이끄는 용인과 성남은 인구 100만 전후의 대표적 '메가시티'로서 이웃이지만 도시발전과 시민생활 등을 놓고 미묘한 경쟁관계이기도 하다.

이재명 성남 시장, 지난해 중학교 무상교복 시민 호응 얻자 #용인시민들 "이웃 성남은 무상교복 주는데 우리는 안 주나" #정찬민 용인시장, 이재명 성남시장에 '무상정책' 훈수 요청 # 용인시는 내년 고교 무상교복까지 시행할 경우 전국 최초 #진보정당이 다수인 용인시의회, 무상교복 통과 관심 #보수정당이 다수인 성남시의회, 고교 무상교복 발목 #내년 지방선거 앞두고 단체장들 유권자 의식 행보 #무상이 무상 불러...선거 앞두고 선심성정책 비판도

특히 정 시장은 자유한국당 소속이고 이 시장은 더불어민주당 소속이다.
정 시장이 다섯살 연장이지만 이 시장이 재선시장이고 정 시장은 초선이다. 경희대를 나온 정 시장은 언론인 출신이고, 중앙대를 나온 이 시장은 민변 변호사 출신이다.

이런 두 시장의 이례적 만남은 어떻게 이뤄졌을까.
40분간 진행된 이날 만남은 정 시장이 먼저 제안해 이뤄졌다고 한다. 내년부터 용인의 중고교생에게 무상교복 지원사업을 도입하려는 정 시장이 이미 지난해부터 성남의 중학생에게 무상교복 사업을 시작한 이 시장에게 ‘무상 교복 정책’ 노하우를 배우기 위해서다.

정 시장은 이 자리에서 “무상교복 등 좋은 복지정책을 성남이 앞서 시행해 배우러 왔다. 직원들에게도 다른 지자체의 좋은 정책은 과감하게 받아들일 것을 당부하고 있다”며 성남시의 정책을 추켜세웠다.

이에 이 시장은 “(채무 제로 등) 시정운영을 잘해 확보한 예산으로 무상교복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보기 좋다”고 용인시의 채무제로 달성을 평가했다. 서로 칭찬하는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두 시장의 만남은 주목해야 할 상징적인 장면이다. 진보 단체장이 주도해온 무상복지정책이 보수 단체장에게까지 빠르게 번지는 현상을 상징적으로 보여줬기 때문이다.

지난 2015년 무상교복 지원 문제를 놓고 학부모들과 간담회 중인 이재명 성남시장(사진 맨 왼쪽). [중앙포토]

지난 2015년 무상교복 지원 문제를 놓고 학부모들과 간담회 중인 이재명 성남시장(사진 맨 왼쪽). [중앙포토]

사실 성남시가 지난해부터 무상복지 정책 차원에서 중학생에게 교복을 무상으로 지급하면서 이웃한 용인시 주민들은 이를 부러운 눈으로 지켜봐야 했다고 한다. 이런 부러움이 용인시장을 직간접적으로 움직인 셈이다.

실제로 성남시는 지난해부터 중학교 1학년생 자녀를 둔 학부모(보호자)의 은행 계좌로 교복 구매비를 입금해주고 있다. 정부가 정한 교복 입찰가 상한금액인 29만여원이다. 소득수준은 상관 없다. 성남시 내 거주 기간도 따지지 않는다. 배정일 기준 성남시에만 살면 된다.

성남시의 시혜 정책에 자극 받은 용인시가 최근 빠르게 움직였다.

용인시는 지난 11일 무상교복 정책에 대한 시민들의 의견을 듣기 위해 시보(市報)에 ‘교복 지원 조례 제정안’을 입법 예고한 상태다. 시의회 논의과정에서 조례 내용이 바뀔 수 있지만, 먼저 시행한 성남의 지원방법·자격 등을 비슷하게 벤치마킹했다.

지난해 교복 나눔행사장을 찾은 정찬민 용인시장(사진 가운데)이 학부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해 교복 나눔행사장을 찾은 정찬민 용인시장(사진 가운데)이 학부모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중앙포토]

상당수 용인 거주 학부모는 무상교복 정책을 환영한다는 입장이다.

성남 분당과 맞닿은 용인 죽전에 거주하는 학부모 이재은(42·여)씨는 “사실상 동일한 생활권인데 사는 데(행정구역)가 다르다는 이유로 복지혜택에서 차별받아왔다”며 “학부모 입장에서는 교복이 무상 지급되면 교복구매비 만큼을 절감해 이를 학원 수강료에 보태 쓴다든지 다른 교육비로 사용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흥미로운 대목은 무상교복 정책을 심의하는 용인과 성남시 의회 구성이다.

지자체의 예산 심사 권한을 가진 시의회의 현재 정당별 구성을 보면, 진보 성향 지자체장인 성남의 경우는 의회 통과가 간단하지 않은 의석분포다.
보수성향 정당이 16석(한국당 15석,바른정당 1석)으로 진보성향 정당 15석(민주당 14석, 국민의당 1석) 보다 많다. 무소속은 1석이다.

실제로 성남시는 시의회 반대로 3차례나 고교 무상교복 사업 확대에 발목이 잡혔다. 이 때문에 현재는 중학생만 무상교복을 지원하고 있다. 이 시장은 각 학교를 대표하는 초·중·고 학부모 회장단 25명과 간담회를 갖는 등 여론전에 나섰다.

반면 보수 성향 단체장이 이끄는 용인의 상황은 거꾸로다. 보수 정당 소속 단체장의 복지정책이 통과되기에 유리한 시의회 의석 분포다.
무상교복·급식과 같은 보편적 복지에 우호적인 진보성향 정당이 1석 많다. 민주당 13석, 국민의당 1석, 한국당 13석이다. 이 때문에 “시의회에서 무리 없이 통과되지 않겠냐”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보수성향 시장의 용인이 진보성향 시장의 성남 보다 역설적으로 보편적 복지 실천이 상대적으로 더 쉬운 구조인 셈이다. 용인이 무상교복정책의 후발 지자체지만 고교 신입생까지 무상교복을 지급할 수 있게 되면 성남을 제치고 ‘전국 고교 최초 무상교복 지자체’라는 타이틀을 얻을 수 있게 된다.

교복값이 만만치 않다 보니 새학기만 되면 중고 교복판매 행사장에 학부모들이 몰리다. [중앙포토]

교복값이 만만치 않다 보니 새학기만 되면 중고 교복판매 행사장에 학부모들이 몰리다. [중앙포토]

이런 가운데 용인시의 박남숙 부의장(민주당)은 지난달 임시회 본회의 5분 자유발언을 통해 “무상교복 지원과 함께 고교 무상급식을 실시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단계적으로 무상급식을 시행해 학생들에게 보편적 복지를 실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부의장은 한해 52억원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무상교복 사업비 68억7500만원까지 더하면 100억원을 훌쩍 넘는다. 용인시는 고교 무상급식까지는 부담스럽다는 입장인데 무상이 또 다른 무상으로 확대되는 단적인 예다.

지난 2011년 서울시내 곳곳에 걸린 무상급식 주민투표 참여, 불참을 각각 권유하는 현수막. [중앙포토]

지난 2011년 서울시내 곳곳에 걸린 무상급식 주민투표 참여, 불참을 각각 권유하는 현수막. [중앙포토]

경기도에서 대표적 인구 100만명(급) '메가시티'로 꼽히는 성남과 용인의 무상복지 경쟁을 바라보는 시선이 곱지 만은 않다.

무상복지 포퓰리즘 논란을 일으켰던 이재명 성남 시장에 이어 보수적인 정찬민 용인시장이 무상 교복 정책에 가세함에 따라 선거를 앞둔 선심 정책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지자체장들이 선거를 의식해 과도하게 선심성 복지정책 경쟁을 할 경우 부작용이 생길 것이란 지적도 있다.

육동일 충남대(자치행정학) 교수는 “복지문제는 한 번 물꼬가 터지면 줄일 수 없다. 선심성, 전시정 행정의 일환은 아닌지 충분한 검토가 필요하다”며 “지방선거를 앞둔 요즘 더욱 그런데 복지사업이 지역간 불균형을 불러올 수 있는 만큼 시의회의 감시·통제기능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 경기도의원(재선)은 “지자체의 예산 주머니는 분명 한계가 있다. 복지비를 늘리면 결국 축제든, 도로사업이든 줄일 수 밖에 없는 구조다. 다음 선거를 노리는, 표를 의식한 선심성 정책”이라고 비판했다.

이웃한 지자체인 성남과 용인은 비슷한 점이 많다.
인구는 성남이 97만2719명, 용인이 101만2417명이다. 한해 살림살이 규모는 성남이 2조6250억여원으로 용인(2조701억원) 보다 약간 많다. 면적은 성남(141.7㎢)이 용인(591.3㎢) 보다 좁다.

성남·용인=김민욱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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