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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ONG]박경리부터 이효석까지…문학의 향기를 따라간 여행

중앙일보

입력

by 충주고지부

매일 아침 눈을 뜨면 학교에 가고, 달 뜨는 밤까지 야간 자율학습을 하며, 자율학습을 마치고는 학원에 간다. 우리나라 고등학생 대부분의 일과다. 하지만 가끔은 되풀이되는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한 가지 주제를 골라 색다른 여행을 가보는 것도 좋겠다.

박경리 문학공원부터 이효석 문학관까지. 학교에서 배운 문학의 현장을 찾아가는 여행은 감회가 새로웠다. 이 땅을 껴안고 살았던 조상들의 삶을 더듬어 보고, 바람직한 삶의 자세를 찾아보는 시간이었다. 학업에 지친 청소년들의 심신을 위로하고 풍부한 감성과 인성을 함양해준 문학기행. 이 여행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을 여러분과 공유하고자 한다.

비극을 예술로 승화시킨 작가, 박경리

박경리 선생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하소설인 『토지』의 작가다. 집필을 시작해서 탈고하기까지 26년이 걸린 『토지』를 통해 한민족의 역사와 애환 등 민족의 정신을 표현하였다. 강원도 원주시 단구동에 위치한 ‘박경리 문학공원’은 소설 『토지』의 의미와 박경리 선생의 문학 세계를 이해하는 것은 물론 여러 가지를 느낄 수 있는 곳이다.

언젠가 가족과 함께 토지의 배경인 경남 하동의 최 참판 댁을 여행한 적이 있다. 당시에는 문학에 대한 관심과 『토지』에 대한 배경 지식이 없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이번 박경리 문학공원은 『토지』의 내용과 의의를 알고 나서 간 것이었기에 보이는 것도 느껴지는 것도 많았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이처럼 크게 와 닿은 것은 처음이었다.

박경리 문학공원에는 박경리 선생의 생애와 소설 『토지』에 대해 자세히 설명해 놓은 ‘박경리문학의집’이 있다. 이곳 2층에는 박경리 선생이 직접 조각한 여인상, 직접 만든 옷, 농사지을 때 쓰던 호미와 장갑 등이 전시돼 있어 선생의 생애를 세밀하게 살펴볼 수 있다.

전시실 3층은 소설 『토지』를 위한 공간이다. 소설의 등장인물 관계도를 크게 그려놓고, 내용 중 중요한 구절을 크게 표현하고 당시 시대 상황을 짐작할 수 있는 소품을 적절하게 배치해 놓아 관람객들이 소설을 잘 이해할 수 있게 했다. 또 5층 세미나실에서는 박경리 선생이 지나온 삶을 영상으로 볼 수 있다. 영상을 통해 박경리 선생의 본명이 ‘박금이’라는 사실과 박경리라는 필명을 소설 『역마』의 김동리 작가가 지어주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박경리 선생은 이렇게 말했다. “예술가가 소속되기를 원한다면 절대 좋은 예술가가 될 수 없다. 돈이든 권력이든 명예든. 어디 소속될 때는 자기의 창조능력도 저당을 잡히는 것이다. 절대 자유 속에서만 창조할 수 있다. 모든 일반 사회인들은 ‘자유로워지고 싶다’라고 하는데, 사실 자유라는 것은 가시밭길과 같다. 외로워야 자유로운 것이다. (중략) 외부에서 차단할 수도 있지만, 작가가 진정한 자유를 원할 때는 스스로가 차단해야만 한다. 그러니까 내가 26년 『토지』를 쓴 세월은 나 스스로가 차단한 시간이다. 그 싸움이 글 쓰는 이상의 싸움이었다.” 그저 ‘자유롭다’라는 말을 일차원적으로 생각했던 나는 그 말이 담고 있는 속뜻을 다시금 생각해 보았다.

문학의집 옆으로는 박경리 선생이 18년 동안 지내면서 소설 『토지』를 집필한 ‘옛집’이 보존돼 있다. 옛집 마당에는 선생이 텃밭에서 일하고 난 후 즐겨 앉던 바위에 고양이와 더불어 호미와 책을 옆에 두고 쉬는 모습을 재현한 조각상이 있다. 집 바로 앞에는 작은 못이 있는데 이 못은 박경리 선생이 사랑하는 손자를 위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손주를 위해 집 앞에 손수 연못까지 팠다는 얘기를 들으니 문학을 넘어 가정적으로도 대단한 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손자를 위해 박경리 선생이 직접 판 못.

손자를 위해 박경리 선생이 직접 판 못.

옛집 1층 부엌 옆에 있는 집필실은 남쪽과 서쪽으로 각각 창이 뚫려 있다. 당시 남쪽 창으로는 백운산을, 서쪽 창으로는 치악산을 볼 수 있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소설가이자 수필가인 박완서 작가가 박경리 선생의 집에 찾아왔을 때 이곳에서 선생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는 일화가 있다. 집필실에는 소설 『토지』의 육필원고와 만년필이 놓여 있는데 만년필의 그립 부분이 다 닳아있다. 『토지』를 집필하는데 걸린 시간과 노력의 흔적을 만년필이 증명하는 듯했다.

박경리 선생의 집필실.

박경리 선생의 집필실.

박경리 선생은 전쟁으로 남편을 잃고 교통사고로 아들을 먼저 보낸, 어찌 보면 비극적인 삶을 살았다. 하지만 절망에 빠져 비관적으로 살지 않고 이를 예술로 승화시켜 걸작을 남겼다. 박경리 선생은 시 『옛날의 그 집』에서 ‘책상 원고지, 펜 하나가 나를 지탱해 주었고 사마천을 생각하며 살았다’고 하였다. 소설 『토지』는 단순한 장편소설이 아닌, 26년간의 책상·원고지·펜의 지탱과 선생이 말한 그 ‘자유’ 속에서 창작된, 한민족과 작가 자신의 애환이 들어간 소설이 아닐까.

“글을 잘 쓰려면 소설 『토지』를 꼭 한 번 읽어봐야 한다. 국문으로 나타낼 수 있는 모든 표현이 존재하는 작품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은 적인 있다. 기자단 활동으로 글을 쓸 일이 많은 요즘 이 말을 몇 번이고 떠올린다. 더 좋은 글 그리고 더 좋은 나의 문학 세계를 위해 한 번은 읽어 봐야 할 책이라고 생각한다.

농촌 문학의 거장, 김유정

박경리 문학공원을 출발해 강원도 춘천시 ‘김유정 문학촌’에 도착하니 오후 1시가 되었다. 점심을 먹고 근처를 돌아보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곳이 김유정역이었다. 김유정역은 한국 철도 최초로 역명에 사람 이름을 사용한 역이다. ‘신남역’이었던 역명을 2004년 12월에 ‘김유정역’으로 개명했다. 춘천시와 문화예술 단체가 김유정의 생가를 복원하고 기념전시관을 건립하면서 역명 변경을 요청했다고 한다. 더불어 신남우체국도 2013년 김유정우체국으로 개명했다. 우체국 명칭에 사람 이름이 붙은 것도 전국 최초라고 하니, 김유정 작가는 비록 요절했을지언정 지금까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생각에 참으로 부러운 문인이라고 느껴졌다.

2010년까지 사용된 김유정역의 전경.

2010년까지 사용된 김유정역의 전경.

김유정 문학촌의 정문을 통과해 마당에 들어서면 먼저 소설 『동백꽃』의 한 장면을 표현한 조형물을 만나게 된다. 『동백꽃』은 1936년 <조광>에 발표된 단편 소설로, 농촌의 순박한 소녀와 소년이 사랑에 눈떠가는 과정을 해학적으로 그렸다. 주인공이 동갑내기 소녀 점순이한테 닭싸움으로 괴롭힘을 당하는, 『동백꽃』의 대표적인 장면을 묘사한 조형물은 문학촌 입구에서 방문객들을 반긴다.

소설 동백꽃의 한 장면을 묘사한 조형물.

소설 동백꽃의 한 장면을 묘사한 조형물.

소설 봄봄의 한 장면을 묘사한 조형물.

소설 봄봄의 한 장면을 묘사한 조형물.

마당 너머로는 김유정기념전시관이 바로 보이고, 그 옆으로 김유정 작가의 동상과 우물, 김유정 생가, 장독대 등이 눈에 들어온다. 장독대 앞에는 김유정이 1935년에 발표한 작품 『봄봄』의 인물들이 조형물로 서 있다. 『봄봄』은 주인공 농촌 총각이 마름의 딸 점순이와 혼인하기 위해 데릴사위가 되어 머슴 노릇을 하며 겪는 일을 익살스럽게 그린 작품이다.

김유정 작가의 고향 마을인 실레는 금병산에 둘러싸인 모습이 마치 움푹한 떡시루 같다 하여 붙은 이름이다. 마을 전체가 김유정 작품의 무대로, ‘점순이’ 등 소설 12편에 등장하는 인물들의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가 전해진다.

김유정역 근처에서 볼 수 있는 팻말.

김유정역 근처에서 볼 수 있는 팻말.

김유정역 인근에서 사진과 같은 팻말을 여럿 만날 수 있다. 여기에 쓰인 것들은 모두 김유정 작가의 작품과 관련이 있다. 이곳 실레마을에 들어서면 마을 전체가 하나의 작품임을 느끼게 된다.

김유정의 삶과 문학을 한 마디로 표현하자면 ‘동백꽃’이 아닐까 싶다. 1930년대 삶의 아픔을 김유정만의 독특한 향기로 표현해내고 있기 때문이다. ‘동백꽃’ 향기가 실레마을 가득 퍼져갈 때쯤 다시 한 번 찾아가보고 싶다.

레일 바이크를 타는 학생과 선생님.

레일 바이크를 타는 학생과 선생님.

김유정역과 김유정 문학촌에서 문학의 세계를 충분히 느낀 다음, 경춘선을 따라 조금만 내려오다 보면 레일바이크를 탈 수 있는 강촌 레일파크가 나온다. 경춘선은 가평역, 강촌역, 신남역, 춘천역등을 연결하는 철도로 70여 년간 많은 사람들의 추억을 싣고 달렸지만, 지난 2010년 복선 전철이 새로 개통되면서 더 이상 열차가 지나다니지 않게 됐다. 이후 김유정의 문학을 느끼러 오는 관광객들과 경춘선 열차의 추억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경춘선을 레일바이크로 누빌 수 있는 관광상품이 개발됐다.

레일바이크를 타기 전, 먼저 ‘인생샷’을 찍어보자. 매표 창구는 마치 거대한 책들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듯 보이고, 레일바이크 탑승을 기다리는 곳에는 형형색색의 우산들이 하늘을 뒤덮고 있다. 연인이나, 가족, 친구끼리 예쁜 사진을 찍기 좋다. 아기자기한 사진을 찍고 난 뒤, 레일바이크를 타고 옛 경춘선을 따라 힘차게 발을 구르다 보면 옆으로는 북한강과 강원도의 산자락이 한 폭의 그림처럼 탁 트인 시야와 함께 시원하게 펼쳐진다.

레일 바이크에서 본 북한강 풍경.

레일 바이크에서 본 북한강 풍경.

또한 경춘선은 생태 보존 철길이라고 소개될 만큼 주변 생태가 잘 보존되어 있어 작은 들꽃들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레일바이크를 타고 가다보면 내리막길에서 느끼는 잠깐의 휴식과 얼굴을 스치는 바람이 잠시 지친 몸과 마음을 충전해주기도 한다. 물론, 레일바이크가 ‘문학적인’ 즐길거리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문학기행에 빠져서는 안 될 코스라고 해도 무리는 없을 것 같다.

첫째날 일정을 모두 마치고 숙소에 돌아가서 본 강원도 인제의 밤하늘은 고흐의 작품 『별이 빛나는 밤』이 절로 떠오르게 했다.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만 같은 별들은 이효석 작가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에 묘사된 메밀밭의 풍경과도 흡사하였다. 이런 곳에서 펜 끝이 움직이지 않는 것도 죄가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한국 현대 단편문학의 대표 작가, 이효석

다음날 찾은 마지막 방문 장소는 평창에 있는 이효석 문학관이었다. 이효석 문학관은 가산 이효석 선생의 연보와 삶의 세세한 부분들, 가산의 문학 세계 및 문학 지도, 봉평 장터를 재현한 모습 등을 전시하고 있다. 넓은 동산 위에 문학관 본관과 카페, 포토존, 이효석 문학비, 그리고 ‘메밀꽃 필 무렵’의 한 장면을 표현한 물레방앗간이 위치하고 있다. 물레방앗간에서는 허생원과 성서방네 처녀의 하룻밤 인연을 엿볼 수 있다.

이효석 작가는 『메밀꽃 필 무렵』으로 유명하다. 이 소설은 만남과 헤어짐, 그리움, 떠돌이의 애수 등이 아름다운 자연과 융화되어 미학적인 세계로 승화된 작품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그런데 전시관에 재현해놓은 그의 작업실은 토속적이고 서정적인 작품들과는 사뭇 분위기가 다른 느낌이었다. 벽면에 ‘Merry X-mas!’라고 영문으로 쓴 장식판과 프랑스 여배우의 사진이 걸려있다는 점이 눈길을 끌었다. 작가가 서구 세계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었다는 걸 엿볼 수 있는 부분이었다.

이효석 작가의 작업실.

이효석 작가의 작업실.

이효석은 『메밀꽃 필 무렵』을 비롯해 『산협』, 『개살구』, 『고사리』 등 여러 작품 속에서 자신이 어릴 적 살다 떠난 봉평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덕분에 메밀꽃이 필 즈음의 봉평은 많은 이들에게 ‘고향’의 전형적 모습으로 다가온다. 어쩌면 이효석에게 봉평은 그가 이상을 추구하기 위해 버려야 했던 고향인 동시에, 그가 현실에서 접근할 수 있었던 가장 이상향에 가까운 곳이라는 이중적 의미의 공간이었는지도 모른다.

이효석 문학 선양회에서는 가산 이효석의 문학정신을 기리는 의미에서 ‘이효석 문학상’을 제정하고 매년 좋은 작품에 시상하고 있다. 지난해 선정된 제 17회 수상작은 조해진 작가의 『산책자의 행복』이었다. 또한 매년 9월이면 평창군 봉평면 효석 문화 마을에서 ’평창 효석 문화제‘를 열고 있다. 이 문화제는 마을 주민들이 직접 만들어가는 축제로, 문학을 주제로 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구성된다.

집으로 돌아가며

1박2일 동안 한국 문학의 큰 획을 그은 작가들의 체취가 남아있는 곳을 돌아보았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시간에 쫓겨 정철의 『관동별곡』에 나오는 관동 8경을 보지 못한 점이랄까. 이를 제외하곤 정말 흠잡을 것 없는 문학기행이었다. “문학은 우리 삶에 가까이 있다.” 이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된 시간들이었다.

글·사진=정우성·김원형·진주은·윤지효·정형준(충주고 2) TONG청소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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