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로 가야 하나요"…민방공 훈련 안내 표지판도, 관심도 없었던 서울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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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방공 대피 훈련 사이렌이 울려도 서울역 광장은 평온했다. 막 그친 비에 우산을 손에 든 시민들은 사이렌이 울리는 스피커를 잠시 올려다 보기만 했다. 대피 요령대로 지하로 내려가려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역 군데군데에 있는 철도 특별사법경찰관에게 행동 요령을 묻는 시민도 없었다. “어디로 대피해야 하냐”고 기자가 묻자 한 특별사법경찰관은 “그냥 역 안에 계셔도 되고 나가셔도 된다. 특별히 어디로 가야 하는 건 아니다”고 답했다.

23일 오후 2시 민방공 대피 훈련 사이렌이 울린 직후 시민들이 서울역 광장에서 걸어가고 있다. 송우영 기자

23일 오후 2시 민방공 대피 훈련 사이렌이 울린 직후 시민들이 서울역 광장에서 걸어가고 있다. 송우영 기자

민방공 훈련이 진행되는 동안 서울역 곳곳에 철도 특별사볍경찰관(가운데 뒷 모습)이 배치됐다. 송우영 기자

민방공 훈련이 진행되는 동안 서울역 곳곳에 철도 특별사볍경찰관(가운데 뒷 모습)이 배치됐다. 송우영 기자

서울역 안 대합실에서도 훈련에 신경을 쓰는 사람들을 찾아보긴 힘들었다. 공항철도를 타기 위해 서울역 대합실을 지나던 김성겸(22)씨는 “오늘 훈련이 있는지 전혀 몰랐다. 건물 안에 있어서인지 사이렌 소리도 제대로 못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어디로 대피를 해야 하는 거냐”고 되물었다.

민방공 훈련이 진행 중인 오후 2시 8분 서울역 대합실. 송우영 기자

민방공 훈련이 진행 중인 오후 2시 8분 서울역 대합실. 송우영 기자

훈련이 진행되는 동안 서울역 현장에서 안내를 받기는 어려웠다. 대피소가 어딘지 안내하는 표시도 없었고, 관계자들도 훈련에 대해 잘 모르고 있었다. 서울역 대합실에 있는 안내데스크에 대피소 위치를 묻자 “그냥 지상에 계셔도 된다. 지하로 내려가고 싶으시면 저쪽 엘리베이터를 타시라”고 설명했다. ‘고객 탑승금지’라고 쓰여 있는 화물전용 엘리베이터는 훈련 20분 내내 아무도 이용하지 않았다.

지하로 내려갈 수 있는 서울역의 화물전용 엘리베이터. 송우영 기자

지하로 내려갈 수 있는 서울역의 화물전용 엘리베이터. 송우영 기자

서울시 민방공 훈련 담당자는 “원칙은 시민들이 가까운 민방공 지정 지하 시설로 대피하는 것이다. 지정 안 된 곳이라도 지하철역 등 지하 깊숙한 곳으로 가야 한다. 하지만 시민들에게 이동하라고 강요할 수 없다 보니 철도경찰이나 역 관계자분들이 그냥 지상에 계셔도 된다고 안내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전쟁은 발생하지 않을 건데 왜 이런 훈련을 해서 불편하게 하느냐”는 항의 전화도 걸려온다고 덧붙였다.

이런 ‘평온한 모습’을 염려하는 시민도 있었다. 오늘 훈련이 있는 걸 며칠 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이정애(57)씨는 “지금 북한이 괌을 포격하겠다고 하는데 아무도 위기감을 느끼지 않는 것 같다. 이런 분위기 때문에 훈련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같은 사람도 그냥 제 갈길을 가게 된다”고 말했다. 이씨는 “어디로 대피해야 하는지 안내 표시 하나 없는 것도 문제지만, 북핵 위기 속에서 이런 중요한 훈련이 경시되는 분위기가 더 문제”라고 말했다.

송우영 기자 song.wooy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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