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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승태 사법부' 6년…'재판 생중계·평생법관제' 성과, '대법관 다양성' 실패

중앙일보

입력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난 6월 28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청사로 출근하는 모습. 임현동 기자

양승태 대법원장이 지난 6월 28일 오전 서울 서초동 대법원청사로 출근하는 모습. 임현동 기자

다음달 24일 퇴임하는 양승태(69) 대법원장은 임기 동안 이념과 개혁 논란에 끊임없이 휩싸였다. 6년 전 임기의 시작부터 역설적이었다. 그는 이명박 정부 3년차인 2011년 9월 25일 임기를 시작했다. 전임자는 노무현 전 대통령 때 임명된 이용훈 전 대법원장이었다. 양승태 체제는 사법부 보수화를 알리는 신호탄으로 여겨졌다.

이명박 정부 3년차에 임기 시작 #사법부·정치권의 개혁 요구 계속돼 #재판 생중계 도입·평생법관제 성과 #대법관 '다양성' 확보는 실패 평가 #임기 말 "제왕적 사법행정" 비판도

하지만 대법원엔 이 전 대법원장 체제에서 임명된 박시환·김영란·전수안 등 이른바 ‘독수리 5형제’(나머지 2명은 김지형·이홍훈 전 대법관)로 불리는 진보 성향 대법관들이 건재했다. 이 전 대법원장이 추진한 사법개혁과 시국 사건에 대한 과거사 반성 등 ‘색깔’이 다른 과업들도 양 대법원장이 풀어야 할 과제로 주어졌다. “보수화가 우려된다” “이념의 축을 좌에서 우로 옮겨야 한다”는 상반된 주문이 사법부 안팎에서 쏟아지던 게 양 대법원장 취임 당시의 상황이었다. 그의 공(供)과 과(過)도 그 시작점에 잠재돼 있었다는 게 법조계의 평가다.

양 대법원장은 취임 후 ‘소통’을 강조했다. ‘법원은 국민 속으로, 국민은 법원 속으로’를 모토로 취임 첫 1년간 장애인 사법 지원을 위한 가이드라인 발간, 외국인ㆍ이주민을 위한 사법정보 누리집을 냈다.

취임 3년차인 2013년엔 대법원의 전원합의체 공개변론을 처음으로 전 국민에게 생중계했다. 이 전 대법원장이 추진한 공판중심주의와 구술변론주의를 적극적으로 이행한 결과였다. 이는 최근 전 1, 2심 재판의 생중계 확대 결정으로 이어졌다. 양 대법원장은 법정에서의 변론 녹음도 전국 지방법원 본원으로 확대시켰다. 2008년 시작된 국민참여재판도 그의 임기 중 대폭 늘었다.

2013년 3월 21일 사법사상 최초로 대법원 전원재판부 공개변론이 TV·인터넷에 생중계됐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약취 혐의로 기소된 20대 베트남 여성에 대한 재판의 공개변론을 주재했다. [중앙포토]

2013년 3월 21일 사법사상 최초로 대법원 전원재판부 공개변론이 TV·인터넷에 생중계됐다. 양승태 대법원장이 약취 혐의로 기소된 20대 베트남 여성에 대한 재판의 공개변론을 주재했다. [중앙포토]

하지만 양 대법원장은 임기 내내 대법관 인선과 사법행정에서 "다양성 부족" "제왕적 행정"이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실제로 그가 임기 중 임명 제청한 13명의 대법관 중 4명을 제외한 모두가 '서오남(서울대ㆍ50대 남성ㆍ고위 법관 출신)'이었다. 외형상 여성 대법관이 3명이지만 1명(박보영 대법관)은 취임 후 첫 대법관 인선에서 제청했고, 1명(김소영 대법관)은 인선 과정에서 애초 후보자(김병화 전 인천지검장)의 낙마로, 다른 1명(박정화 대법관)은 문재인 대통령 집권 후인 지난 7월에 임명됐다.

특히 취임 2년차인 2012년에 퇴임하는 대법관 4명의 후임을 인선하는 과정에서 잡음이 컸다. 양 대법원장은 애초 서울대 출신의 50대 남성으로 이 자리를 모두 채우려 했다. 대법관 14명이 모두 이명박 정부에서 임명된 사람들로 바뀌는 '변혁기'였기 때문에 대법원의 보수화·획일화에 대한 우려가 잇따랐다.

양 대법원장은 이후에도 획일적인 인사 공식을 되풀이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는 '업무 효율'과 '조직 안정'을 우선시 한 보수적인 인사 철학 때문이라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실제로 그는 2011년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대법원의 외형적 다양성이 필요하지만 연간 3만6000건 넘게 사건을 처리하는 상황에선 전문성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양승태 대법원장(가운데)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재판에 참석한 모습. [연합뉴스]

양승태 대법원장(가운데)이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열린 전원합의체 재판에 참석한 모습. [연합뉴스]

다양성이 사라진 대법원의 구조는 판결에 반영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최근 검찰이 재수사를 시작한 '국정원 댓글 사건'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재판도 논란이 되는 판결 중 하나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2015년 7월 공직선거법 위반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한 원심을 깨고 원 전 원장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원심의 판단은 핵심 증거인 국정원 직원 이메일 첨부파일의 증거능력이 부인됨으로써 더이상 유지될 수 없다"는 판단에서였다. 대법관 13명(대법원장 포함) 전원일치로 나온 '13대0'의 판결이었다. 쌍용자동차 해고 노동자들의 정리해고 무효 소송도 대법원에서 패소로 뒤집혔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양승태 체제에서 사법부의 보수화 경향은 과거사 판결과 노동사건에서도 두드러졌다"며 "통상임금 판결 등에서 민법의 특별법이라 할 수 있는 노동법을 적용하면 되는데 굳이 신의성실 원칙 등 민법의 일반원칙을 재판 기준으로 삼은 것은 꼼수였다"고 지적했다.

법원행정처를 중심으로 한 사법행정도 취임 초 개혁을 약속했지만 되레 "독선적, 제왕적"이라는 집단 반발에 부닥쳤다. 1심 판결 내실화를 위한 법조일원화, 기수 문화 탈피를 위한 평생법관제를 정착한 것은 성과였다.

하지만 이용훈 체제에서 폐지로 가닥을 잡았던 고등법원 부장판사 제도가 백지화되면서 '법원행정처 경험→고법 부장판사 승진 현상'이 심화됐다는 비판이 계속됐다. 사법부의 인사 적체와 대법원의 과중한 사건 부담을 동시에 해결하기 위해 추진한 상고법원 도입이 무산된 것도 양 대법원장으로선 아쉬운 부분이다.

이같은 인사 문제에 대한 법원 내부의 불만은 지난 2월 대법원 법원행정처가 일선 판사들의 학술행사를 축소하기 위해 부당 개입했다는 의혹이 일면서 논란이 일었다. 사법행정 민주화를 요구하는 일선 법관들의 목소리가 커지자 양 대법원장은 지난 6월 법원 내부 통신망에 글을 올려 사과와 함께 전국법관회의 상설화 등을 수용하기로 했다.

지난달 24일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한 판사들이 회의를 기다리고 있다.[중앙포토]

지난달 24일 경기도 고양시 사법연수원에서 열린 전국법관대표회의에 참석한 판사들이 회의를 기다리고 있다.[중앙포토]

윤호진 기자 yoong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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