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익 감독 "일본 전쟁영화, 가해자 아닌 피해자 코스프레 심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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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익 감독. 양광삼 기자

이준익 감독. 양광삼 기자

영화 '박열'의 이준익 영화 감독이 역사를 소재로 한 한일 양국 영화의 역사 왜곡 논란에 대해 언급했다.

이 감독은 지난달 11일 일본 일간지 아사히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한국 영화 개봉이 잇따르는 이유는 감독들의 개인적 취향이 아닌 시대의 흐름"이라고 밝혔다.

그는 "한국은 식민지 시대의 상처를 아직 정리하지 못했다. 해방 후 70년이 흐르며 객관적인 관점에서 과거를 묻게 됐다"며 "영화인에게 이 시대를 소재로 하는 것은 한국의 근대화나 이에 연동되는 현대의 불충분한 부분을 새로 바라보는 작업"이라고 설명했다.

이 감독은 최근 한국에서 역사를 소재로 한 창작 작품이 역사 인식에 혼란을 준다는 일부 역사가들의 비판과 관련해 "역사 인식이 혼란해진다는 걱정은 하지 않아도 좋다"고 강조했다.

그는 미국의 서부극이 역사 왜곡의 대표적 예라고 소개하며 "미국 서부극은 백인은 좋은 사람, 원주민은 나쁜 사람으로 그리며 원주민 학살을 정당화하고 있다. 한국과 일본도 그 문화를 따라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전쟁을 다룬 일본 영화는 가해자로서의 관점은 적고, 피해자 의식만을 강조해 '피해자 코스프레'로 느껴지는 작품이 많다. 하지만, 한국 관객은 영화의 내용을 모두 사실로 받아들일 정도로 단순하지 않다"고 선을 그었다.

또 이 감독은 영화를 본 한국 젊은이들이 일본에 악감정을 가질 위험은 없느냐는 매체의 질문에 "가능성이 없다고는 못하겠지만, 이는 일본의 과거 역사나 역사 인식에 대한 것이지 현재 일본인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국 젊은이들은 애니메이션 등 일본 문화에 호감을 갖고 있다. '일본인은 악, 한국인은 선' 혹은 그 반대의 사고방식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그는 최근의 한일관계 악화가 오히려 호전의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 감독은 "현안을 숨겨도 관계는 나빠질 뿐이다. 영화 '박열'은 한국과 일본이 화해하는 계기가 될 영화라고 생각한다. 일본에서 상영될 것을 의식하고 만들었다. 그렇게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한편 지난 6월 개봉한 영화 '박열'은 관동대지진 직후에 일어난 조선인 학살을 은폐하려 한 일본 정부가 무정부주의자 조선 청년 '박열'을 대역죄로 몰아가는 재판 과정을 담았다.

이민정 기자 lee.minjung2@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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