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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한 웃음과 잔혹한 범죄의 앙상블, '청년경찰' 들여다보기

중앙일보

입력

[매거진M] 여름 극장가에 당당히 출사표를 던진 ‘청년경찰’(8월 9일 개봉)은 혈기 왕성한 스물둘 경찰대생이 벌이는 수사극이다. 한국영화에서 최근 뜸했던 젊은 주인공을 내세운 버디 무비에 코미디와 스릴러 요소를 녹인 설정부터 신선하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잔혹한 장기 밀매 범죄를 거침없이 조명한다. ‘청년경찰’은 코미디와 스릴러라는 장르의 균형을 어떻게 맞췄을까. 그리고 한국 사회의 현실을 수사극 장르에 어떻게 끌어왔을까. 이 영화의 각본과 연출을 맡은 김주환(36) 감독의 이야기를 통해 짚어본다.

'청년경찰'

'청년경찰'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이런 현실적인 코미디 봤어?

기준(박서준)과 희열(강하늘)은 경찰대 입학 훈련 과정에서 만난 동기다. 홀어머니를 둔 기준은 학비가 무료라, 과학고를 졸업한 희열은 특별해지고 싶어 경찰대에 왔다. 단순하지만 따뜻한 행동파 기준과 명석하고 이성적인 희열. 상반된 인물이 투닥거리며 친해지고, 서로의 결점을 보완해주는 친구가 되는 설정은 버디 무비의 고전적 요소다.

'청년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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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경찰’은 이를 따르면서 요즘 청춘의 언어를 구사한다. 유치하고 시답지 않은 농담, 편하게 욕을 섞어 말하는 대화 등등. 이런 모습이 밉지 않은 건 박서준과 강하늘의 밝은 에너지 덕분이다. 둘은 찰떡같은 콤비 플레이로 대사의 리듬을 자유롭게 주무른다. 김 감독은 “두 사람이 현장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코미디 호흡을 맞춰갔다”고 말했다.

‘청년경찰’은 이렇게 귀엽고 유쾌한 정서를 가지고 본격적인 이야기를 시작한다. 둘은 “청춘사업”을 위해 동기 재호(배유람)에게 반강제로 옷을 빌리고, “향수 뿌린다”며 섬유 탈취제를 뿌리고 강남의 한 클럽에 간다. 하지만 학교 밖에서 마주한 현실은 상상만큼 달콤하지 않다. “돈도 못 버는” 직업인 “짭새”라는 경찰을 향한 세간의 선입견을 확인할 뿐이다. 많은 이가 청춘의 길목에서 했던 고민. “내가 선택한 직업에 대한 회의감과 혼란스러운 마음을 그리고 싶었다”는 게 김 감독의 말이다.

흥미로운 건 이렇게 주인공을 낙담시킨 편견이 담긴 말을 유머로 차용한 점이다. 극중 기준은 경찰의 시선을 끌어야 하는 상황에서, 자신을 넋 빠지게 한 “짭새”라는 말로 이들을 약올린다. 관객이 가장 박장대소하는 장면이다. “자신이 속한 집단을 스스로 비하하는 아이러니한 유머는 보편적인 코드”라는 게 김 감독의 말이다. ‘청년경찰’의 웃음이 참신하면서도 자연스럽게 느껴지는 건, 젊은 세대의 일상을 구체적으로 묘사하면서 앞 뒤 상황을 뒤트는 유머를 감각적으로 활용해서다.

소름끼치는 장기 밀매 범죄

'청년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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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준과 희열의 수사는 가출 소녀 윤정(이호정)이 납치당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시작한다. 경찰에 도움을 청했지만, 정작 경찰은 “서장의 특별 지시” 때문에 당장 출동할 수 없는 상황. 막막한 현실에 두 사람은 배운 대로 자체 수사를 시작한다.

작은 단서를 시작으로 사건의 중심까지 들어가는 긴박한 과정. 마침내 둘이 마주한 진실은 충격적이다. 서울 대림동의 중국 동포 무리가 가출한 소녀들을 납치해 난자 공장을 만들고 있던 것. 이들은 소녀들에게 과배란 호르몬 주사를 강제로 놓고, 난자를 산부인과에 팔고 있다. 사라져도 찾아줄 가족이 없는 가출 소녀를 겨냥한 치밀하고 악랄한 범죄. 김 감독은 “철부지 같은 두 인물이 단박에 각성할 만한 충격적인 사건이 필요했다. 보는 이도 깊은 분노를 느낄 끔찍한 범죄를 찾았다”고 말했다. 끌려간 윤정이 아랫배에 주사를 맞는 대목, 기준이 10대 어린 아이의 하혈 흔적을 발견하는 장면 등. 이 소재가 주는 참담한 정서는 영화의 분위기를 단숨에 뒤집어 버린다.

김 감독은 “자료 조사를 하며 탐사 저널리스트 스콧 카니가 쓴 『레드마켓, 인체를 팝니다』(골든 타임)라는 책을 접했다”고 했다. “이 책에서 밝힌 장기 밀매의 실상은 충격적이었다. 공급 과정이 불투명한데도, 수요자는 다급하고 간절하기 때문에 장기를 믿고 받는다. 이 영화에서 난자를 다룬 건, 음지에서 힘없는 소녀로부터 착취한 신체를 가지고 누군가는 새로운 삶의 희망을 얻는 아이러니한 상황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김 감독의 말이다.

코미디와 스릴러 사이에서

'청년경찰'

'청년경찰'

현재 ‘청년경찰’을 둘러싼 평은 엇갈리고 있다. “여성의 고통을 말초적으로 전시하고 중국 동포를 비현실적으로 악마화한다”(박우성 영화평론가) “거침없는 패기와 뜨거운 열정을 지닌 청춘의 이야기”(이지영 기자). 관객 반응 양상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핵심은 두 가지다. 첫째는 어린 여성과 중국 동포 묘사가 정치적으로 올바른지다. 극중 학대당한 여성의 신체가 담긴 숏은 무섭고 불편하다. 쟁점은 이 감각이 향하는 바다. 훼손된 몸을 전시한다는 비판과 악인을 향한 분노를 견인하는 극적 장치라는 분석이 엇갈린다.

‘청년경찰’은 이 문제를 시퀀스의 적절한 배치로 타계하려 한다. 예를 들어 기준과 희열이 소녀들을 구하려 훈련에 매진하는 장면 뒤에 산부인과 원장이 불임 부부에게 위조된 윤정의 학생증을 보여주며 난자 제공자라고 거짓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곧바로 이어지는 장면에선 악당 무리가 피폐해진 소녀를 병원으로 옮긴다. 이 영화는 불법 적출한 난자로 거액의 돈을 버는 산부인과 원장(남문철), 즉 자본주의 상위 포식자와 정의로운 주인공을 대조한다. 관객의 불편한 심정을 누그러뜨리는 연출인 것이다.

김주환 감독 / 사진=라희찬(STUDIO 706)

김주환 감독 / 사진=라희찬(STUDIO 706)

하지만 중국 동포의 묘사는 그만큼 세심하진 않다. 많은 한국영화가 으레 중국 동포를 잔인무도하게, 그들의 공간을 범죄의 온상으로 그려온 것과 비슷하다. 김 감독은 “두 인물이 공권력이 닿지 않는 고립된 공간에서 현실을 목도하기 바랐다”고 했다. “외국인이 거주하는 할렘가를 범죄 배경으로 삼는 건 폭력의 세계를 다룬 장르 영화의 관습”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극중 이들은 떼로 먹고 자고 돌아다닌다. 우두머리 영춘(고준)을 제외하면 한 덩어리로 보일 정도다. 말하자면, 그들은 먹고 살기 위해 어떤 일도 할 것 같은, 평면적인 악이다. 이런 묘사에서 국적의 구별은 어떤 의미를 가질까.

둘째는 스릴러와 코미디 사이의 균형이다. ‘청년경찰’은 상처 입은 여성 앞에서 웃음을 유발하지 않는다. 적어도 그러지 않으려 노력한 흔적이 역력하다. 하지만 문제 되는 장면이 없진 않다. 바로 수술실에서 난자를 적출하려는 원장이 CT 사진을 보며 “알 많네”라고 말하는 시퀀스다. 이어지는 장면에선 수술실 바깥에서 기준과 희열이 영춘을 상대로 격한 싸움을 벌인다. 긴 격투 끝에 그를 쓰러뜨린 기준은 영춘에게 “묵비권이나 먹어라!”며 예의 웃음을 선사한다. 심각한 상황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으려는 태도는 이 영화의 미덕인 동시에 윤리적으로 아슬아슬하게 보이는 지점이다. 이 웃음을 불편해할지 혹은 위험에 처한 타인을 구하겠다는 선의와 해맑은 유머를 지닌 인물로 너그럽게 봐야할 지는 보는 이의 몫이다.

김나현 기자 respiro@joongang.co.kr 사진=라희찬(STUDIO 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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