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치 미만이라며 비펜트린 검출된 계란 열흘 간 그냥 먹으라는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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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충계 계란 전수 조사를 벌이고 있는 농림축산식품부가 16일 오전까지 부적합 판정을 받은 농장이 31곳이라고 발표했다. 조사 속도를 끌어올리면서 전날(6곳)보다 부적합 농장이 크게 늘었다. 계란에서 피프로닐이 검출되거나 비펜트린이 기준치(0.01㎎/㎏)를 넘은 경우다. 피프로닐은 개와 고양이의 벼룩과 진드기를 제거하기 위해 사용되는 살충제로 닭에는 사용할 수 없다. 경기도가 가장 많지만 분포도 전국 각지로 확산하는 모양새다.

친환경 인증기준 미달한 농장 62곳 적발 #27곳은 아예 부적합, 35곳은 기준치 미만 #기준치 미만은 일반계란으로 판매 가능 #농식품부 "규정대로 하는 거라 어쩔 수 없다"

16일 살충제 계란 이 추가로 적발된 경기도 양주 한 농장에서 달걀들이 방치되어 있다.임현동 기자 /20170816

16일 살충제 계란 이 추가로 적발된 경기도 양주 한 농장에서 달걀들이 방치되어 있다.임현동 기자 /20170816

검사를 마친 876개 농가 중 친환경 인증기준에 미흡한 농가도 62곳이나 됐다. 부적합에 포함된 곳이 27곳이다. 친환경 인증 기준만 위배한 농가는 35곳이다. 친환경 인증을 받은 농장은 비펜트린도 전혀 사용해선 안 된다. 농식품부가 마련한 ‘친환경 농축산물 및 유기식품 등의 인증에 관한 세부 실시 요령 개정안’엔 “유기합성농약 또는 유기합성농약 성분이 함유된 것을 축사나 주변에 사용해선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러데 친환경 인증 기준만 위배한 농가의 경우 ‘친환경’ 마크를 떼고 판매할 수 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친환경 인증을 받은 농가가 비펜트린을 일반 농가에 적용되는 기준치 미만을 사용했더라도 당장 회수 및 폐기 대상은 아니다”며 “일반 계란으로 판매하면 유통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부적합 판정을 받은 농장 27곳은 명단을 공개했다. 문제는 35곳은 일반 소비자가 알 수 없다는 점이다. 농식품부는 이 농가들에 대한 친환경 인증을 취소하겠다고 입장이다. 17일 오전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35곳도 명단을 공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쏟아졌지만 농식품부는 규정대로 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이들 농가에 대해서는 10일 정도의 의견 청문절차를 거친 후 친환경인증 취소 등 결과를 공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소비자 입장에선 열흘 동안 모르고 먹을 수밖에 없는 처지다. 국민이 불안에 떠는데 농식품부는 법대로 하겠다며 도리어 큰소리다. 이에 대해 허태웅 농식품부 식품산업정책실장은 “친환경을 포함해 명단을 공개할 때는 그 범위가 있고 그 절차를 거칠 수밖에 없다”면서 “공무원보고 법에 정해진 절차를 위반해서 일을 처리하라는 건 안 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일반 달걀로 출하하라는 안내도 안 했다. 허 실장은 “(친환경 마크를 떼고 출하하라고) 안내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기준치 미만의 비펜트린이 어떻게 관리되고 있는지 농식품부는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농식품부는 15일 경기도 남양주시 마리농장(08마리) 계란에서 피프로닐이, 경기도 광주시 우리농장(08LSH) 계란에서 비펜트린이 검출됐다고 설명하면서 “전북 순창군의 농장에서도 비펜트린이 검출됐지만 기준치 이하라 문제없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순창군 농장의 계란은 적합 판정을 받아 폐기·회수되지 않았다. 이 계란이 시중에 유통됐는지 확인을 요청했지만 농식품부는 ‘확인 중’이란 답변만 되풀이하고 있다. 친환경이란 말을 믿고 더 비싼 가격에 계란을 구입한 소비자로서는 당황스러울 수 밖에 없다.

이마트는 살충제 검사를 통과한 달걀을 16일 오후 부터 판매를 재개했다. 이날 오후 이마트 서울 용산점에서 직원이 달걀을 진열하고 있다.강정현 기자/170816

이마트는 살충제 검사를 통과한 달걀을 16일 오후 부터 판매를 재개했다. 이날 오후 이마트 서울 용산점에서 직원이 달걀을 진열하고 있다.강정현 기자/170816

친환경 인증은 사료를 어떤 것으로 쓰느냐에 따라 ‘유기농’이나 ‘유기축산물’ 마크를 다는 유기축산 계란과 ‘무항생제’ 마크를 다는 무항생제 계란으로 나뉜다. 둘 중 유기축산 계란이 훨씬 더 까다로운 기준을 적용 받는다. 알을 낳는 닭(산란계)이 먹는 사료가 유기농(농약·화학비료·항생제 쓰지 않음)으로 재배된 것이어야 한다. 전국에서 단 15곳만 유기축산 계란을 생산한다. 항생제나 성장촉진제 등이 없는 사료를 먹여 키운 닭이 낳은 무항생제 계란은 765개 농장에서 생산된다. 전국 산란계 농가 1456곳의 절반 정도다.

이런 요건을 지키지 못하면 유기농이나 무항생제 마크를 떼고 판매해야 한다. 하지만 농장주들은 친환경 인증에 집착한다. 판매가격을 비싸게 받을 수 있는 데다 계란 한 개당 적게는 1원(무항생제)~많게는 10원(유기)씩 받는 정부 지원금 때문이다. 농가당 연간 2000만~3000만원씩 최대 3~5년을 지원하는데 지난해 친환경 계란에 정부가 쏟아 부은 돈은 22억8200만원이다. 소·돼지·닭을 포함한 친환경 축산 전체 예산은 172억5700만원이었다. 이 많은 돈을 썼는데 국민의 식탁엔 살충제 계란이 올라오고 있었다.

세종=장원석·심새롬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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