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테일의 재발견] 김수안의 노래

중앙일보

입력 2017.08.17 09:38

[매거진M] 어느새 김수안(11)은 ‘아역’이라는 범주를 넘어, 한국의 블록버스터에 없어선 안 될 연기파 배우가 되었다. 단편영화와 독립영화에서 시작한 필모그래피는 시대극과 장르영화를 거쳐 ‘부산행’(2016, 연상호 감독)과 ‘군함도’(7월 26일 개봉, 류승완 감독)에 이르렀다. 그는 황정민·이정현·최민식·공유·박해일·손현주 등 이 시대를 대표하는 배우들과 공연했다.

※‘부산행’과 ‘군함도’의 결말에 대한 스포일러가 있습니다.

사진1 '군함도'

사진1 '군함도'

대여섯 살 때부터 ‘연기 천재’ 소리를 들었던 김수안의 연기에서 가장 큰 강점은 감정의 조절이다. 많은 아역 배우들이 감정을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지니는데, 김수안은 단지 드러내는 것을 넘어 완급 조절을 한다. 공포·경이감·무감각·증오·행복·즐거움…. 김수안은 한 편의 영화에서 수많은 감정을 드러내며 그 감정은 수시로 변한다.

사진2 '군함도'

사진2 '군함도'

여기에 더할 만한 또 하나의 강점은 퍼포먼스에 강하다는 점이다. ‘군함도’는 김수안의 이 부분을 최대한 활용한다. 소희(김수안)는 악단을 이끄는 아버지 강옥(황정민)과 팀을 이뤄 음반을 낸 가수다. 무대에서 진면목이 발휘되는데, 노래하고 춤추고 옆 돌기까지 하는(김수안은 치어리딩을 배웠다) 모습은 ‘군함도’에서 가장 활기찬 퍼포먼스다(사진 1·2).

사진3 '미안해, 고마워'

사진3 '미안해, 고마워'

이 재능은 이미 여러 영화에서 증명된 바 있다. 첫 영화인 ‘미안해, 고마워’(2011)는 송일곤·오점균·박흥식 감독이 반려동물을 테마로 만든 옴니버스 작품. 여기서 김수안은 박흥식 감독의 에피소드 ‘내 동생’에 출연하는데, 집에서 키우는 강아지 ‘보리’를 실제 동생으로 여기는 여섯 살 소녀 보은 역을 맡았다.

이 영화에서 보리는 보은이의 눈에만 사람으로 보이는데, 둘은 마루에서 텔레비전을 보며 신나게 춤추고 노래 부른다(사진 3). ‘우리들’(2016)의 윤가은 감독이 만든 단편 ‘콩나물’(2013)은 열 살도 안 된 연기자가 얼마나 다양한 표정을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작품이다. 공개되었을 때 김수안이라는 ‘떡잎’을 영화계에 널리 알렸다.

사진4 '콩나물'

사진4 '콩나물'

영화의 내용은 간단하다. 할아버지 제사로 친척들이 모이고, 며느리들은 음식을 만드느라 여념 없다. 이때 소녀 보리(김수안)에게 엄청난 임무가 주어진다. 콩나물을 사오는 것.

난생 처음 가게에서 뭘 사오는 심부름을 하게 된 보리에게 골목의 풍경은 너무나 신기할 볼거리다. 놀이터에서 아이들과 놀기도 하고, 그러다 펑펑 울기도 하고, 어떤 할머니를 만나고…. 그러다 도착한 어느 평상엔 어른들이 막걸리로 낮술을 하고 있다. 어른들 손짓에 그곳으로 간 보리는 술을 물인 줄 알고 마시고 만다. 취기(?)가 오른 보리는, 도대체 이 노래는 어디서 알았는지 조영남의 ‘물레방아 인생’을 부르며 격정적인 춤사위를 보여준다(사진 4).

사진5 '해어화'

사진5 '해어화'

이 꼬마의 매력이 한껏 드러나는, 수많은 관객을 팬으로 만든 이 장면은 김수안이라는 배우의 시그니처 숏과도 같다. 춤과 노래가 어우러진 열정적인 퍼포먼스. 반면 ‘해어화’(2016, 박흥식 감독)는 조금 다른 느낌이다. 이 영화에서 김수안은 한효주의 아역인 어린 소율 역을 맡았다. 권번에서 가장 노래를 잘하는 소율은 함께 수련을 받는 아이들 앞에서 정가를 부르는데(사진 5), 어리지만 이미 어느 경지에 오른 실력이다.

사진6 '부산행'

사진6 '부산행'

이처럼 김수안은, 6년 전 데뷔했을 때부터 계속 노래해왔다. 그리고 최근작 두 편은 김수안이 부르는 노래의 힘을 느낄 수 있는 작품들이다. ‘부산행’에서 수안(수안)의 아빠 석우(공유)는 바쁘며, 일 핑계로 딸에게 소홀하다. 아이의 학예회에 가지 못한 석우는 캠코더 동영상으로 딸이 노래 부르는 모습을 본다(사진 6). 수안이 부르는 노래는 ‘알로하오에(Aloha Oe)’. 하와이를 대표하는 노래로 ‘그리운 사람’이라는 뜻인데, 수안은 노래를 중간까지 부르다 멈춘다. 가사를 잊은 것일까? 이때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들리고, 카메라를 응시하는 수안의 표정 앞에서 석우는 먹먹해진다.

전작에선 ‘재롱’의 차원이었다면 ‘부산행’에서 김수안이 부르는 노래는 영화에서 중요한 모티브이자 플롯 전개의 열쇠이자 감성이다. 엔딩에서 생존자가 된 성경(정유미)과 수안은 터널 속을 걷는다. 반대편엔 군인들이 총을 겨눈다. 좀비로 판명되면 방아쇠를 당길 태세다. 여기서 수안이 울면서 부르는(사진 7) ‘알로하오에’는 ‘인간의 증명’이자 그들의 구원가다.

사진7 '부산행'

사진7 '부산행'

그런데 여기서 흥미로운 건, ‘부산행’과 ‘군함도’ 모두 김수안의 클로즈업으로 영화를 마무리하고 있다는 점이다. 좀비들이 날뛰고 탈출을 둘러싼 전투가 벌어지는, 혼란스럽기 그지없는 영화들을 끝내는 이미지가 바로 김수안의 얼굴 클로즈업이다(‘부산행’에선 터널에서(사진 7), ‘군함도’에선 탈출선 위에서 클로즈업이 이뤄진다).

여기에 노래가 결합된다. ‘부산행’의 수안은 ‘알로하오에’를 부르고, ‘군함도’에선 엔딩 곡으로 소희가 부르는 ‘희망가’가 이어진다. 그리고 이 노래들은 두 시간 넘게 아수라장을 겪은 관객들과, 영화 속에서 고통스럽게 죽어간 캐릭터들을 위로한다. 어른들을 위로하는 노래의 힘. 어떻게 보면 ‘부산행’과 ‘군함도’는 김수안이 지닌 이 위대한 능력이 없었다면 감정적으로 제대로 봉합되지 못했을 영화다. 도대체 이 어린 배우의 존재감은 어디까지 뻗어나갈까? 진정 궁금하다.

글=김형석 영화저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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