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북핵·미사일 위기 탓, 야스쿠니 참배 자제”…A급 전범 합사 이후 자민당 정권서 처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15일 일본 도쿄 야스쿠니 신사 경내에서 한 남성이 구일본군 복장을 하고 있다. [도쿄 AFP=연합뉴스]

15일 일본 도쿄 야스쿠니 신사 경내에서 한 남성이 구일본군 복장을 하고 있다. [도쿄 AFP=연합뉴스]

종전기념일(패전일) 이튿날인 16일 일본 언론들은 "정치권이 북한 핵·미사일 위기를 의식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상대적으로 자제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니혼게이자이(닛케이) 신문은 “정치인들의 참배 규모가 줄어든 배경에는 긴박한 북한 정세가 있다”면서 “한국·중국과 관계 악화를 피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16일 보도했다.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강행을 막기 위한 한·미 양국과의 공조 문제, 원유 공급 등 대북 영향력이 큰 중국에 대한 배려 차원이란 해석이다.
종전일에 신사 참배를 강행한 여야 의원은 63명으로 지난해보다 4명이 줄었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재집권 이후 첫 종전일이었던 2013년 8월 15일에 비해선 40명 가까이 줄어든 규모다. 이들은 모두 초당파 의원연맹인 ‘다함께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국회의원 모임’에 속해 있다. 이 모임은 그동안에도 해당 연도의 국내외 정치 흐름에 맞춰 집단 참배 규모를 조절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15일 종전일을 맞아 일본 도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기 위해 찾은 일본의 여야 의원 63명. [도쿄 AFP=연합뉴스]

15일 종전일을 맞아 일본 도쿄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기 위해 찾은 일본의 여야 의원 63명. [도쿄 AFP=연합뉴스]

내각 각료가 전원 불참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마이니치는 "(A급 전범의 합사로 국제사회의 비판이 본격화된) 1980년 이후 자민당 정권 내에선 처음 있는 일"이라고 전했다. 비자민당 정권을 포함하더라도 각료가 단 한 명도 참배하지 않은 것은 드문 사례다. 민주당이 집권했던 2010년과 2011년, 간 나오토(菅直人) 정권 때만 각료 참배가 없었다.
역대 총리 및 각료의 야스쿠니 참배는 종전 이후 관례였다. 일본 왕족이자 전후 첫 총리였던 히가시쿠니노미야 나루히코(東久邇宮稔彦)가 1945년 8월 18일 취임 이튿날 야스쿠니를 참배해 물꼬를 텄다. 히로히토(裕仁) 전 일왕도 1975년까지 야스쿠니를 8차례 참배했다.
그러나 전시 군부를 이끈 도조 히데키(東條英機) 등 A급 전범 14명이 야스쿠니에 몰래 합사된 사실이 1979년 4월 뒤늦게 알려지면서 참배 자체가 논란이 되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군국주의 상징에 대한 참배라는 의미보다는 전몰자에 대한 추도의 의미가 더 강했기 때문이다. 히로히토 일왕도 ‘불쾌하다’는 이유로 이후 발길을 끊었다. 아키히토(明仁) 일왕은 1989년 즉위 이후 단 한 번도 참배를 하지 않았다.
아베 총리도 상황에 따라 참배 속도를 조절해왔다. 아베는 재집권 2년차인 2013년 12월 참배를 강행했지만 이후로는 공물만 헌납하고 있다. 당시 버락 오바마 미국 행정부가 “실망했다”며 싸늘한 반응을 보인 탓이 컸다. 동북아 안보 현실을 감안할 때 한국 등 주변국을 자극하는 행동을 자제하라는 일종의 경고였다.
그러나 아베는 ‘역사 문제에서 양보는 없다’는 인식은 고수하고 있다. 15일에도 문재인 정부의 한·일위안부 재검토 움직임과 관련해 “골 포스트가 움직이는 일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박근혜 정부 때 맺은 양국 합의가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란 사실을 강조한 것이다. 닛케이는 “아베 총리는 내각 지지율이 급락한 상황에서 역사 문제에 대한 양보가 지나치면 지지기반인 보수층의 이탈도 겹칠 수 있다는 딜레마를 안고 있다”고 전했다.
김상진 기자 kine3@joongang.co.kr

야스쿠니 참배 의원 수, 지난해보다 4명 줄어 #각료 전원 불참은 80년 이후 자민당 정권서 처음 #히로히토, A급 전범 합사 뒤 '불쾌하다' 발길 끊어 #"아베, 보수층 이탈 고민…역사문제 양보 없어" #

관련기사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