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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번은 피하세요' 계란번호 확인 나선 시민들…김밥집 등도 혼란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국내 한 친환경 산란계 농장에서 출하된 달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자 15일 대형마트와 편의점 등이 계란 판매를 중단했다. 한 고객이 15일 오전 서울 이마트 용산점 달걀 판매대에서 안내문구를 보고 있다. 임현동 기자

국내 한 친환경 산란계 농장에서 출하된 달걀에서 살충제 성분이 검출되자 15일 대형마트와 편의점 등이 계란 판매를 중단했다. 한 고객이 15일 오전 서울 이마트 용산점 달걀 판매대에서 안내문구를 보고 있다. 임현동 기자

“며칠 전에 산 계란에 08번이 찍혀 있는데 이걸 먹어도 되나요?”

"08번 계란은 경기도산" #'환불하라' 등 불안감 확산 #"안전 확인 때까진 못 먹겠다" #김밥·제빵 등 상인들 한숨

15일 한 인터넷 카페에 올라온 게시글에 10개가 넘는 댓글이 달렸다. “08번이 찍혀 있으면 경기도에서 생산한 계란인 것 같다. 먹지 말고 환불하는 게 좋을 것 같다”는 조언 주를 이뤘다.

대형마트 3사와 인터넷 쇼핑몰, 편의점 등 주요 유통채널이 살충제 계란 파동으로 계란 판매를 전면 중단하면서 시민들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유통업체들은 “판매 중단은 예방적 조치”라고 설명하고 있지만 시민들은 믿지 않는 분위기다. 주부 김선혜(45)씨는 “살충제가 나왔다고 하니 남은 계란을 아까워도 버리려고 한다. 일단은 검사 결과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넷 카페 등에서는 계란에 새겨놓은 ‘난각 인쇄’ 읽는 법이 빠르게 공유되고 있다. 정부는 계란의 생산지 시·도별로 껍질에 서울(01), 경기(08), 경북(14) 등을 구분하는 두 자리 수 부호를 적게 하고 있다. ‘피프로닐’ 등의 살충제 성분이 검출된 경기도산 계란은 우선 피하고 봐야 한다는 게 시민들 반응이다.

시민들의 불안감이 확산되자 식품의약품안전처는 '살충제 계란'을 생산한 농장과 계란에 새긴 생산자 표시를 공개했다. 살충제 검출 사실을 처음 공개한 지 18시간 만이다.

식약처에 따르면 살충제 성분 피프로닐이 검출된 곳은 경기도 남양주시 마리농장이며 이 농장이 유통한 계란에는 ‘08마리’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다른 살충제인 비펜트린이 검출된 곳은 경기도 광주시 우리농장이며 계란 표면에는 ‘08 LSH’라고 표기돼 있다. 식약처 안만호 대변인은 “소비자들이 집에 사 둔 계란이 마리·우리 농장 제품인지 여부를 확인할 수 있게 실명을 공개한다”고 설명했다.

식약처는 전국 6개 지방청과 17개 지자체 공무원을 동원해 국내 계란 수집업체(도매상)들이 보관·판매 중인 계란을 수거해 피프로닐 함유 여부를 검사하고 있다.

살충제 성분이 검출돼 논란이 된 계란. '08마리'라고 생산지가 표시돼 있다. [사진 식품의약품안전처]

살충제 성분이 검출돼 논란이 된 계란. '08마리'라고 생산지가 표시돼 있다. [사진 식품의약품안전처]

그러나 시민들은 확실히 안전하다는 결론이 나기 전까지는 계란을 먹지 않겠다는 반응이었다. 네 식구가 매일 계란을 하나 이상 먹었다는 주부 박모(71)씨도 “살충제가 나왔다고 하니 그동안 먹은 것도 찝찝하고 완전히 안전하다고 할때까지 당분간은 못 먹을 거 같다”고 했다. 임신 7개월 차인 임모(31)씨는 “비싸도 유기농 업체에서 사먹고 있었는데 업체에서 정부가 안전하다고 결과 발표하기 전까지 배달을 중단하겠다는 연락을 받았다. 아이 때문에 신경을 써왔는데 안전하다는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는 안심할 수 없을 것 같다”고 말했다.

계란 생산지 읽는 법

계란은 축산물위생관리법상 표시대상 축산물이다. 이에 따라 달걀 껍데기에 생산 시ㆍ도와 생산자를 표시해야 한다.
일반란은 5자리로 표시한다. 앞의 두 자리가 지자체별로 부여된 고유번호다. 이어지는 3자리는 생산자의 이름 영문 3자리 혹은 생산자 기호 3자리다. 가령 서울에 홍길동씨가 생산한 계란은 ‘01HGD’으로 표시된다.  등급란은 생산자 번호 세 자리에 이어 계군번호, 등급판정일자, 집하장명을 표시한다.

계란 표시 읽는 법

계란 표시 읽는 법

*지자체 고유번호
서울특별시(01)부산광역시(02)대구광역시(03) 인천광역시(04) 광주광역시(05)대전광역시(06)울산광역시(07)경기도(08) 강원도(09)충청북도(10) 충청남도( 11)전라북도( 12)전라남도( 13)경상북도( 14)경상남도( 15)제주특별자치도(16)

유럽에서 살충제 계란 파동이 일어난 뒤 뒤늦게 국내에서 같은 상황이 벌어진 것에 분노하는 시민들도 있었다. 이전에도 계란에 대한 검사가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 아니냐는 이유 때문이다. 성모(33)씨는 “다이어트 용도로 계란을 많이 먹었는데 그 동안 먹은 계란에 모두 살충제가 있었던 것이냐”고 의심했다.

빵집 등 계란 소비가 많은 업종에 종사하는 상인들도 불안해하고 있다. [중앙포토]

빵집 등 계란 소비가 많은 업종에 종사하는 상인들도 불안해하고 있다. [중앙포토]

상인들 역시 불안에 떨고 있다. 서울 신림동에서 토스트 가게를 운영하는 문모(44)씨는 “토스트에 계란 하나는 꼭 들어간다. 대체 불가능한 재료다. AI 대란 때 계란값이 두 배로 뛰어 힘든 상황인데 또 공급 차질 빚으면 장사하기 너무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그는 “당장 오늘 아침에 계란을 받지 못했다. 동네 가게 중에 비싸게 파는 곳이라도 있으면 찾아가서 구매를 해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 공덕동에서 김밥가게를 운영하는 박모(54)씨는 “가장 인기 있는 메뉴가 계란말이 김밥인데 상황이 악화되면 장사를 하기 어렵다. 만약 도매업자가 거래가 안 된다고 하면 손님들에게 계란 빼고 드셔도 되냐고 물어봐야 한다”고 안타까와했다.

공급 불안보다 계란에 대한 불신이 더 큰 문제라는 지적도 나왔다. 서울 신림동에서 35년째 제과점을 운영하고 있는 조계석(54)씨는 “이미 계란 파동 이후 너무 힘든 상태다. 모레까지는 간신히 버티겠지만 카스테라처럼 계란을 많이 쓰는 제품은 줄일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안전하다는 판정을 받아야 되는데 그렇지 않으면 손님들이 카스테라를 찾겠느냐”고 덧붙였다.

대형 식품유통 체인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뚜레주르 등 제과점을 운영하는 CJ푸드빌은 “향후 검사 결과를 보고 우리와 거래하는 업체가 문제가 있는지 살펴봐야 한다”고 말했다. 파리바게뜨 등을 운영하는 SPC그룹도 “재고가 1~2일 버틸 물량 밖에 없어 제품 생산 차질 생길 가능성도 있다. 상황이 조속히 정상화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한영익·최규진·송승환 기자 hany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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