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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마·저고리 입고 네팔 트레킹, 한라산 오른 ‘한복덕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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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서울 서촌의 한 골목. 한복여행가 권미루씨가 입은 노랑·하양 한복과 이국적인 느낌의 벽돌담이 잘 어울린다. 권씨는 이날 고려 중기부터 조선 말기까지 군관의공복이었던 철릭을 재해석한 ‘철릭원피스’ 위에 허리치마를 덧입었다. [김춘식 기자]

서울 서촌의 한 골목. 한복여행가 권미루씨가 입은 노랑·하양 한복과 이국적인 느낌의 벽돌담이 잘 어울린다. 권씨는 이날 고려 중기부터 조선 말기까지 군관의공복이었던 철릭을 재해석한 ‘철릭원피스’ 위에 허리치마를 덧입었다. [김춘식 기자]

대학에서 취업 컨설턴트 강의를 하는 권미루(38)씨 명함엔 ‘강사’ 외에도 쓰인 게 많다. 한복여행가, 한복문화소믈리에, 한복덕후, 한복문화활동 칼럼니스트 등등. 공통점은 ‘한복’이다.

강사 겸 한복여행가 권미루씨 #한복 입고 13개국 63개 도시 누벼 #몽골에선 ?북한 여자? 오해받기도 #천천히 집중하며 입는 시간 좋아 #젊은 층 한복 관심 갖게 돼 긍정적

권씨는 2013년부터 지금까지 13개국 63개 도시를 여행했다. 그 때의 경험을 모아 지난달 여행에세이를 냈는데 제목이 『한복, 여행하다』(푸른향기)이다. 여행 내내 한복을 입고 다녔기 때문이다. 외국 유명 관광지에서 한복 입고 기념사진을 찍는 젊은이들은 예전에도 꽤 있었다. 하지만 이들은 한복을 싸갖고 다니다 그때그때 갈아입는 경우다. 몇날며칠을 그것도 온종일 한복을 입고 세계를 여행한 사람은 아마도 권씨가 처음이 아닐까. 권씨는 “2013년 한 인터넷 카페에서 회원들끼리 ‘장농 속 한복을 입자’는 주제로 모임을 가지면서 일상과 미래가 바뀌었다”고 했다.

“전 결혼식 예복으로 맞춘 노랑 저고리, 빨강 치마를 입고 나갔는데 다른 사람들의 한복을 보니 예쁜 게 많더라고요. 개인적으론 우리 할머니 세대가 입었던 한복 스타일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거든요.”

권씨는 자신이 좋아하는 스타일의 한복을 찾아다녔다. 그 중에는 김영진 한복디자이너가 고려 중기부터 조선 말기까지 군관의 공복이었던 ‘철릭’을 재해석해 디자인한 철릭원피스도 있다.

“‘우리 전통 옷이니까 한복을 입자’ 이런 마음은 처음부터 없었어요. 내 스타일의 옷이라 관심이 간 거죠. 평소에도 앞트임이 없는 티셔츠보다 두 개의 자락을 교차해서 묶어주는 여밈 형식을 더 좋아했거든요. 그래서 더 예쁜 디자인의 한복을 찾았고, 전통 한복부터 생활 한복까지 변화를 공부하게 됐죠.”

그러다 떠오른 엉뚱한 도전. 한복을 입고 여행하면 어떨까. 시작은 이탈리아였다. 한복은 생각보다 편했다. 외국인들은 먼저 다가와 “어느 나라 옷이냐” 물었다.

2013년 네팔 트레킹 중 안나 푸르나 베이스 캠프 앞. [사진 권미루]

2013년 네팔 트레킹 중 안나 푸르나 베이스 캠프 앞. [사진 권미루]

“초기엔 ‘관심종자(관심을 받고 싶어 하는 사람)’라는 소리도 꽤 들었어요. 만나는 사람마다 ‘한복 안 불편하냐’ 묻길래 ‘아니다’ 반박하고 싶어 오기도 부렸죠. 한복을 입고 한라산에 오르고, 네팔 트레킹에 도전한 거예요. 패딩 점퍼 대신 한복 덧저고리를 껴입고 추위를 버티면서요.”

도전이 성공할 때마다 권씨의 생각은 조금씩 바뀌었다. 한복 입기를 강요하지 말자, 멋지고 편한 일상의 모습을 보여주자. 권씨는 “한복 입은 모습이 근사해 보이면 관심이 쏠리고, 자연스레 한복 입는 사람도 늘고, 전통문화에 대한 애정도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고궁 근처 한복 대여점에서 근본 없는 엉터리 한복을 빌려주는 것에 찬반 논란이 있다 했더니 “일단은 젊은 친구들이 ‘한복을 입고 싶다’고 생각하게 된 것이 긍정적인 신호”라고 답했다.

“몽골에서 만난 한국 아줌마가 ‘북한에서 왔냐’ 묻더라구요. 전혀 상상치 못했던 질문이라 진짜 당황했어요.”

현재 권씨가 갖고 있는 한복은 70~80벌 정도다. 전통한복, 생활한복 종류도 다양하다. 권씨는 매일 아침 이들 한복을 입을 때마다 힐링이 된다고 했다.

“빠르게 흘러가는 사회에서 한복은 아날로그적인 옷 입기를 고집하죠. 안 고름 매고, 그 다음 겉 고름 매고. 까다롭고 번거롭지만 천천히 집중해야 하는 그 시간이 점점 더 좋아져요. 옷태를 하나씩 정리할 때마다 ‘나를 귀하게 여기는 시간’이라는 생각이 들거든요.”

서정민 기자 meantr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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