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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신들 트럼프 대북 강경 발언 비난 …"단어 몇개로 세계 비상사태 초래"

중앙일보

입력

북한을 향해 연일 강경 발언을 쏟아내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오히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에게 핵무기 개발 명분을 주고 있다는 지적이 주요 외신에서 나오고 있다. 북한을 설득하지 못하는 강경 언사보다는 대선 과정에서 말한 대로 트럼프 대통령이 김정은과 '햄버거 회담'에 나설 때라는 주장도 제기됐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12일(현지시간) “북한의 핵무기는 십년 넘게 곪아온 문제인데 트럼프 대통령이 단어 몇 개로 이를 세계적인 비상사태로 변화시켰다"고 보도했다. 이어 “국제사회의 위기가 전쟁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게 미국 국무부의 핵심 임무인데, 국무부는 지금 위기에 허덕이고 있다”며 북핵 위기가 심화하고 있지만 렉스틸러슨 미 국무장관이 제 역할을 못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북한 문제와 베네수엘라 사태가 심각해지고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국무부의 조언을 들은 흔적이 없다고 가디언은 분석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강경 발언을 비판하는 영국 일간 가디언 기사.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강경 발언을 비판하는 영국 일간 가디언 기사.

 AP통신 초대 평양 지국장을 지낸 진 리 우드로윌슨센터 연구원은 이날 뉴욕타임스(NYT) 기고에서 트럼프 대통령의 과도하게 거친 언사가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정당화할 명분만 제공하고 있다고 했다.
 그는 “북한에서는 미국이 자신들을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으며, 지도자 김정은이 자신들을 보호하려고 핵무기를 개발한다는 선동이 난무한다"며 “트럼프 대통령은 나라가 굶주리는 데도 핵과 미사일을 지키려는 김정은이 필요한 것을 위협을 통해 정확하게 줬다"고 지적했다. 리 연구원은 이어 “김정은은 미국의 공격 위협을 주민 결속에 이용한다"며 "국가주의와 애국심을 자극하는 수단으로 (미국의) 침략 위협 외에 별로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고 설명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도 이날 서울발 기사에서 “역대 미국 대통령들은 북한이 미국 본토를 공격하겠다고 말하는 것을 무시해왔는데 트럼프는 그렇지 않았다"며 “김정은과 비슷한 트럼프 대통령의 과격한 발언은 김정은이 미사일 테스트를 늦추도록 설득하지도 못하면서 주변 동맹국을 긴장하게 만들었다"고 보도했다.
 가장 최근까지 북한과의 협상에 참여했던 미국 전직 외교관인 에반스 리비어는 이코노미스트에 “트럼프의 언급은 북한의 서울 공격과 같은 호전적 행동뿐 아니라 위협에 대해서도 미국이 복수할 준비가 돼 있다고 제안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북한이 난폭한 말을 할 때마다 핵무기로 반응한다면 공중에 수많은 핵무기들이 날아다니게 될 것"이라고 이코노미스트에 말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연합뉴스]

 트럼프는 비핵화라는 목표가 사라졌더라도 말을 하는 대신 중국과 러시아까지 동의한 대북 제재를 이행해야 한다고 이 매체는 권고했다. 미 국무부 비확산담당 부차관보 대행을 지낸 마크 피츠패트릭 영국 국제전략연구소(IISS) 미국사무소장은 “핵 위협에 대응해 필요한 것은 트럼프의 신중함과 협력"이라며 “대선 선거운동 때 트럼프가 김정은과 햄버거 회담을 할 수 있다고 했는데, 지금이 그 햄버거를 먹을 때"라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1일 “북한이 어리석게 행동한다면, 군사적인 해법은 지금도 완전히 준비돼 있고 장전돼 있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북한이 화염과 분노에 맞닥끄리게 될 것"이라거나 “나는 선제타격에 대해 절대 이야기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는 두고 보면 알게 될 것"이라고 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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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편 유럽연합(EU)은 오는 14일 정치ㆍ안보위원회를 긴급 소집해 북한 문제에 대한 대응책을 논의한다. EU가 북한 문제를 위해 긴급 회의를 여는 것은 이례적이다.
 트럼프 대통령과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12일 전화통화를 하고 북한의 도발에 공동 대응하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백악관이 전했다. 백악관은 뉴저지 베드민스터의 골프장에서 휴가 중인 트럼프 대통령과 마크롱 대통령이 전화통화한 뒤 발표한 성명에서 “양국 정상은 안정을 해치고 위기를 확대하는 북한의 행동으로 위험이 커지는 상황에 맞설 필요성을 논의했다”고 밝혔다. 프랑스 정부는 지난 9일 "프랑스는 북한의 핵ㆍ미사일 문제와 관련해 평화적인 해법을 찾도록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해 중재에 나설 준비가 돼 있다"고 공개적으로 밝히기도 했다.
런던=김성탁 특파원 sunty@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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