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36.5도, 휴머니즘 돼야 아름답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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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소설가 김홍신씨. 남녀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새 장편 『바람으로 그린 그림』을 냈다. [사진 해냄]

소설가 김홍신씨. 남녀 간의 사랑을 주제로 한 새 장편 『바람으로 그린 그림』을 냈다. [사진 해냄]

“사랑은 짐승을 사람으로, 사람을 짐승으로도 만든다. 그럴 때 사랑의 온도는 100도, 1000도다. 무엇이든 녹여버린다. 하지만 실제 사랑의 본질은 섭씨 36.5도다. 열정이 휴머니즘으로 발전해야 아름다움이 지속될 수 있다는 얘기다.”

사랑 소설 펴낸 칠순 김홍신씨 #해독제 없는 사랑 실제 내 이야기 #정확한 해답 제시하긴 너무 어려워 #정권 바뀌면 화이트리스트 되는데 #난 평생 블랙리스트 자랑스러워

달통한 연애박사의 발언 같다. 하지만 주인공이 소설가 김홍신(70)씨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올해 칠순에 이른 그가 또다시 ‘사랑소설’을 내놓았다. 『바람으로 그린 그림』(해냄), 가능할 것 같지 않은 형용모순 제목을 단 장편이다. 본격적인 첫 사랑소설 『단 한 번의 사랑』 이후 2년 만이다.

각각 10권짜리인 대하소설 『인간시장』과 『대발해』, 2003년까지 8년간의 국회의원 생활. 이런 이력이 압축하는 그의 문학 근거지는 아무래도 사회비판이나 역사 다시보기였다. 그런 그가 작심이라도 한 듯 사랑소설을 잇따라 냈다. 이유가 뭘까.

8일 기자간담회에서 김씨는 “사랑이야말로 인간의 본질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인간 내면의 보다 깊은 구조를 드러내려하다 보니 자꾸 ‘사랑’에 손대게 된다는 얘기였다. 김씨는 “하지만 사랑의 정확한 의미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기는 너무 어려웠다”고 했다. “사랑은 인류가 이 세상에서 사라질 때까지 숙제로 남을 것 같아 쓰고 싶었다”는 거창한 이유도 댔다. 단순히 사랑을 위한 사랑 소설이 아니라 소설을 통한 인간 탐구의 연장이라는 취지의 발언이다.

소설은 『단 한 번의…』처럼 역시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얘기다. 성당에서 신부를 돕는 복사(服事)를 하던 남자 고등학생 ‘리노’와 그보다 일곱 살 연상인 성가대 반주자 ‘모니카’가 운명적인 사랑을 키워 나가지만 주변의 반대를 이겨내지 못하고 결국 헤어지는 내용이다. 리노는 가톨릭 사제가 되려는 꿈까지 포기하고 만다.

김씨는 “해독제 없는 사랑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며 “복사를 하는 고등학생이 사제를 꿈꾸는 소설 초반부는 실제 내 이야기”라고 했다.

김씨는 올초 전 정부의 문화계 블랙리스트에 포함된 사실이 알려진 바 있다. 그는 DJ정권 말기에도 당시 국정원의 도청 대상에 포함돼 자신을 돕던 의원 보좌관의 통화 내용이 공개된 적이 있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둔 듯 “알려진 것처럼 나는 평생 블랙리스트였다”고 했다. “한 번 블랙리스트는 정권이 바뀌면 화이트리스트가 되어야 하는데 나는 친일 청산이 미흡한 점을 지적하는 바른 말을 해서 박근혜 정부의 블랙리스트가 됐던 것”이라며 “오히려 자랑스럽다”고 했다.

신준봉 기자 infor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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