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로 불린 장군, "병사를 자식처럼 생각"한 사모님은 뭐가 달랐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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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맹하게 이끈자

“귀관은 부하들의 근무 환경에 지나치게 신경 쓰는 경향이 있네.”
“사단장으로서 그보다 더한 칭찬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군사 분야에 관심이 많지 않은 사람들에게 제2차 세계 대전 당시에 활약한 장군 중 기억나는 이가 있냐고 물어보았을 때, 롬멜(Erwin Rommel)은 적어도 세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인물이다. 정작 어떤 활약을 펼쳤는지 잘 알지 못하더라도 한번 정도는 이름을 들어 보았을 만큼 그의 유명세는 대단하다. 사실 전과보다 과장되게 알려진 측면이 없지 않지만 명장(名將)이라고 불리는데 모자람은 없다.

대개 대규모 부대의 지휘관 정도면 생사고락을 함께하는 부하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롬멜은 독선적인 성격과 자신을 드러내려는 돌출적인 행동 때문에 그를 믿고 따르는 부하나 참모들이 없다시피 하였다. 롬멜은 툭하면 부하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갈아치우고는 했고, 경우에 따라 예하 부하들이 먼저 다른 곳으로 발령을 내 달라고 요청하기도 했다. 부하뿐 아니라 상관이나 동료와의 사이도 그다지 원만하지 않았다.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롬멜은 대단한 전과를 올렸다. 하지만 수시로 힘들다는 소리가 나올 만큼 저돌적으로 부대를 지휘하여 부하 장병들로부터 그다지 인기는 없었다. [사진 wikipedia]

북아프리카 전역에서 롬멜은 대단한 전과를 올렸다. 하지만 수시로 힘들다는 소리가 나올 만큼 저돌적으로 부대를 지휘하여 부하 장병들로부터 그다지 인기는 없었다. [사진 wikipedia]

처음 소개한 내용은 롬멜이 아프리카 장갑군단장 시절인 1941년 4월, 예하 제5경사단장 슈트라이히(Johannes Streich)가 병사들이 너무 지쳐있으므로 시간 여유를 두고 다음 작전을 펼치자는 건의에 무조건 공격을 재개하라고 면박을 주면서 벌어진 대화다. 결국 슈트라이히는 해임되었고 제15기갑사단장 프리트피츠(Heinrich von Prittwitz und Gaffon)는 롬멜의 닦달에 못 이겨 앞으로 달려 나가다 전사했다.

예하 사단장들이 이 정도였으니 말단 병사들의 고충은 말할 필요조차 없었다. 학대를 당한 것은 아니었지만 너무 저돌적으로 부대를 지휘하다 보니 고달픈 나날의 연속이었다. 연일 독일의 선전 매체는 승전보를 전하며 롬멜을 영웅으로 만들고 있었지만 전선에서 어려움이 많았던 병사들 사이에서는 사실 인기가 없었다. 마치 삼국지의 장비 같은 맹장(猛將)에 가까웠던 인물이었다.

덕으로 지휘한자

그에 비해 기갑전투의 대가인 호트(Hermann Hoth)는 대단한 덕장이었다.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조용한 성격이어서 단지 보통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뿐이지, 활약상만 놓고 본다면 호트는 롬멜보다 훨씬 큰 부대를 지휘하며 더 큰 전장에서 대단한 활약을 펼친 숨어 있는 명장이다. 그는 1940년 프랑스 전역 당시에 제15장갑군단을 지휘하면서 롬멜과 인연을 맺기도 했다.

1941년 7월 제3기갑집단 사령관 당시의 호트(右). 뛰어난 기갑부대 지휘관으로 병사들이 아버지라고 부를 만큼 신망을 많이 받았다. [사진 wikipedia

1941년 7월 제3기갑집단 사령관 당시의 호트(왼쪽). 뛰어난 기갑부대 지휘관으로 병사들이 아버지라고 부를 만큼 신망을 많이 받았다. [사진 wikipedia

당시 예하 제7기갑사단을 지휘하던 롬멜이 먼저 치고 나가고 싶어 상관인 호트에게 옆에서 함께 진격 중이던 제5기갑사단에 대한 보급품을 자신에게 지원하여 달라고 요청했다. 롬멜의 이기적인 요구에 제5기갑사단장 하르틀리프(Max von Hartlieb-Walsporn)가 반발하고 나선 것은 당연했다. 이에 호트는 일단 목표에 가깝게 접근한 현실을 인정하여 롬멜의 요구를 들어주되 한편으로는 하르틀리프를 설득했다.

호트가 사심이 없다는 것을 하르틀리프가 잘 알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이처럼 호트는 지휘관들 사이에서 신망이 높았을 뿐만 아니라 일반 병사들로부터는 ‘아버지(Papa)’라는 별명으로 불릴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 그런 별명처럼 그는 항상 병사들을 자식처럼 여기며 안위와 생존에 가장 많은 신경을 썼고 어지간해서 무리한 작전을 펼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여러 차례 대승을 이끌어냈다.

8월 7일, 공관병 학대 혐의로 군검찰 출두 당시 제2작전사령관 부인의 인터뷰가 많은 이들의 실소를 자아냈다. [사진 중앙포토]

8월 7일, 공관병 학대 혐의로 군검찰 출두 당시 제2작전사령관 부인의 인터뷰가 많은 이들의 실소를 자아냈다. [사진 중앙포토]

 지난 8월 7일, 제2작전사령관의 부인이 ‘병사를 자식처럼 생각했다’는 인터뷰에 많은 이들이 실소를 자아냈다. 자기 자식이라면 노예처럼 학대할 수 있을지, 그리고 그런 취급을 받은 병사들이 사령관을 아버지처럼 생각할 것이라는 자체가 한심할 뿐이다. 롬멜같은 맹장이나 호트같은 덕장이 명장이 될 수는 있지만, 노예처럼 병사를 학대하는 이가 전시에 명장이 될 수 없다는 점은 확실하다. 과연 그는 이런 평범한 상식을 모르고 있었을까?

남도현 군사 칼럼티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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