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추진 잠수함에 관심 많은 文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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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의 최근 행보를 되짚어 보면 잠수함과 관련한 일정이 많다.

문 대통령은 여름 휴가 중이던 지난 2일 경남 진해 해군기지 내 해군 공관 영접실에서 국산 잠수함의 첫 수출국인 인도네시아의 리아미잘드 리아쿠두 국방부 장관을 만났다. 이튿날인 지난 3일에는 진해 해군기지 내 잠수함사령부를 방문해 잠수함 ‘안중근함’을 찾아 장병들을 격려했다.

이 자리에서 문 대통령은 핵추진 잠수함의 기능과 효용성에 대해 질문을 했고, 작전 기간이 길고 속력이 빨라 북한의 재래식 잠수함에 비해 전략적인 우위를 점할 수 있다는 설명을 듣고는 “핵(추진) 잠수함이 해군의 꿈이군요”라는 말을 남겼다고 한다.

문 대통령은 휴가에서 복귀해 첫 공식 일정이었던 지난 7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에서도 ‘핵추진 잠수함’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최근 일주일 간 공개된 문 대통령의 일정 대부분이 잠수함과 관련된 것이었다.

문재인 대통령의 특전사 복무 시절과 국산 잠수함 1호 수출로 기록된 '나가파사'의 모습 [중앙포토]

문재인 대통령의 특전사 복무 시절과 국산 잠수함 1호 수출로 기록된 '나가파사'의 모습 [중앙포토]

문 대통령은 왜 잠수함에 관심이 많을까. 문 대통령의 ‘잠수함 행보’는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는 게 대통령 주변의 설명이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대통령이 우리 잠수함에 대해 굉장히 관심이 많다”며 “잠수함이 현재 우리 군사 무기체계에서 굉장히 중요한 위치에 있지 않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 제재 결의에 반발해 북한이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도발을 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핵 추진 잠수함은 북한의 SLBM에 대항하기 위한 핵심 전력으로 통한다.

핵추진 잠수함은 원자로를 이용하기 때문에 이론적으로 반영구적으로 수중에서 작전이 가능하다. 배터리 충전을 위한 엔진 가동 때 물 위로 부상해야 하는 디젤 엔진과 작전의 차원이 다른 셈이다. 그래서 핵추진 잠수함을 보유할 경우 유사 시 북한 잠수함 입구 수중에 대기하고 있다가 공격을 하거나, 북한 잠수함이 출항하는 순간부터 추적을 시작해 SLBM 발사 징후가 있을 경우 선제적으로 공격해 발사 자체를 무산시킬 수 있다.

이 관계자는 “북한은 벌써 잠수함에서 SLBM을 쏜다는 얘기가 나오는 상황에서 대통령으로서 당연히 잠수함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숫자만으로 80여척에 달하는 북한의 잠수함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대책인 셈이다.

산업적인 측면에서도 잠수함은 중요하다. 기술 문제, 미국과의 관계 등으로 인해 핵추진 잠수함을 당장 개발하는 게 어렵더라도 재임 기간 중 기틀을 닦아 놓으면 훗날 방위산업의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있다는 게 문 대통령의 판단이라고 한다. 문 대통령이 해군 참모총장 출신의 송영무 국방부 장관을 기용한 이유 중에는 이런 포석도 깔려 있다는 것이 청와대 참모들의 주장이다.

‘대양해군(大洋海軍)’을 목표로 했던 노무현 정부의 정책기조를 되살리는 측면도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임기 초반인 2003년 6월 2일 조영길 당시 국방부 장관으로부터 한국형 핵추진 잠수함 3척을 2020년 전에 실전 배치한다는 계획을 보고 받았다. 당시 보고일에서 이름을 따 이른바 ‘362 사업’(2003년 6월 2일 보고)으로 불린 이 계획은 비밀리에 추진되다 언론 보도로 알려진 뒤 무산됐다. 송 장관은 당시 해군 실무진으로 이 계획에 참여했던 경험이 있다. 한·미 동맹을 강조하면서도 노무현 정부와 마찬가지로 자주국방을 내세우고 있는 문재인 정부로선 잠수함이 갖는 의미가 큰 것이다.

문 대통령과 잠수함의 인연은 40여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특전사 출신인 문 대통령은 지난 2012년 대선을 앞두고 한 방송사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군 복무 시절의 경험을 얘기하며 “당시 수중 침투 훈련이나 잠수함 침투 훈련도 했다”고 말했다. 젊은 시절부터 잠수함의 중요성을 직접 느끼는 훈련을 받았던 것이다.

하지만 핵추진 잠수함에 대한 문 대통령이 ‘꿈’은 녹록하지만은 않다. 우선 비용 문제다. ‘362 사업’ 단장을 지낸 문근식 예비역 해군 대령은 “3000t급 디젤 잠수함 1척을 건조하는 비용이 약 8000억원인 반면 4000t급 핵추진 잠수함은 1척에 1조6000억원 가량이 들어갈 것으로 계산하고 있다”고 말했다.

해군 함정은 3배수(1척은 작전, 1척은 대기, 1척은 정비)로 건조하는 관례로 보면 핵추진 잠수함 3척을 건조하는 비용만 약 4조8000억원 가량이 들어가는 셈이다. 여기에 정비를 위한 부대 시설을 고려하면 5조원이 넘게 필요한 상황이다. 한국 공군의 차기 전투기 F-35 40대를 구입하는 비용이 7조4000억원임을 감안하면 국방비를 대폭 늘리지 않은 상황에선 쉽지 않은 선택일 수 있다.

이에 대해 문 전 단장은 “핵추진 잠수함의 건조 비용이 디젤 잠수함(3000t급)에 비해 두 배가량 되지만 전략적 가치는 10배가 넘는다”며 “잠수함은 수중에서 작전을 하기 때문에 지상 전력의 손실이 있더라도 마지막까지 작전이 가능한 전략무기라는 점은 비용으로 따질 수 없는 가치”라고 강조했다.

또 핵 확산에 민감해 하는 미국을 설득하는 문제도 있다. 한국과 미국은 핵의 안전한 사용을 위한 원자력 협정을 맺고 있다. 협정 상 한국은 천연 우라늄을 20%미만으로 농축(우라늄 235 동위원소 함유율 20% 미만)해 사용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여기엔 평화적 이용이라는 조건이 붙어 있어 미국을 설득하는 게 관건이라는 지적이다. 그러나 한국이 우라늄을 농축하지 않고 국제사회에서 거래되고 있는 우라늄을 구입해 사용할 경우 문제가 없다는 견해도 있다.

결국 핵추진 잠수함 보유에 대한 문 대통령의 의지가 관건인 셈이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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