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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아차 ‘3조 판결’ 임박 … 자동차산업 사면초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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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한국 수출의 30%를 담당하고 있는 자동차 산업에 위기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웠다. 중국의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보복에 따른 판매 부진, 노조의 파업, 한·미 자유무역협정 재협상에 이어 통상임금 소송까지 맞물렸다.

패소할 경우 3년 치 충당금 쌓아야 #영업이익 다 까먹고 적자 전환 위기 #한국GM·현대제철 소송에도 영향 #부품·협력업체로 부실 옮겨갈 우려 #현대차 노조 파업 결정 불안 부추겨

서울중앙지방법원 민사41부(부장판사 권혁중)는 오는 17일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 1심 판결을 내린다. 기아차 노조 등은 “상여금도 통상임금에 포함해달라”고 두 차례 소송을 제기한 바 있다.

김용근 한국자동차산업협회장은 7일 “한국 자동차 산업의 명운을 가르는 분기점이 될 수 있다고 말할 정도로 기아차 통상임금 관련 판결의 의미가 남다르다”고 평가했다.

근로자들이 받는 월급 중 통상임금으로 분류하는 항목이 중요한 이유는 통상임금이 법정수당(연월차·연장근로·휴일수당 등)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될 경우 사측이 근로자에게 지급해야 할 각종 수당도 덩달아 금액이 커진다.

만약 기아차가 이 소송에서 패소할 경우 경영에 상당한 부담을 줄 정도로 지급 금액이 많다. 기아차 노조가 제기한 집단소송에 따르면, 2008년 8월부터 2011년 10월까지 3년 동안 받았던 연 750% 상당의 상여금이 통상임금에 포함되면 기아차는 조합원에게 6869억원을 추가 지급해야 한다. 2011년 10월~2014년 10월 지급한 임금에도 별개 소송이 걸려 있는데, 기아차가 패소하면 약 1조1000억원을 지급해야 한다. 또 통상임금은 퇴직금 산정의 기준이 되는데, 회계평가 기준상 퇴직계정에도 별도의 금액을 추가로 쌓아야 한다.

이를 종합하면 기아차는 최대 3조1000억원의 비용(2015년 12월 기준)을 토해내야 한다. 기아차의 올해 상반기 영업이익은 7868억원. 추가지급액(3조1000억원) 중 절반만 충당금으로 쌓아도, 기아차는 곧바로 적자 기업으로 전락한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같은 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인 한국GM 노조도 마찬가지다. 기아차가 패소하면, 같은 이유로 계류 중인 한국GM도 패소할 가능성이 커진다. 한국GM이 2012년 실적을 집계하면서 통상임금 소송 패소를 대비하기 위해 쌓았던 3년 치 충당금은 7893억원이었다. 기아차를 기준으로 보면, 한국GM도 3조5000억원가량의 금액을 충당금으로 쌓아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 지난해 한국 완성차 5개 사가 벌어들인 돈(7조5000억원)에 육박하는 금액(6조6000억원)이 신기루처럼 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통상임금이라는 ‘화약고’는 현대차그룹 전반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 기아차가 현대차와 연구개발(R&D)을 공유하고, 계열사를 통해 부품·자재를 구매하는 비율이 높기 때문이다. 금속노조는 2008년부터 현대제철·현대로템 등 현대·기아차그룹 13개 계열사를 대상으로 29건의 통상임금 관련 소송을 진행 중이다.

한장현 대덕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통상임금은 기아차만의 문제가 아니라 자동차 산업 전반에 걸친 문제”라며 “기아차가 감내하기 어려운 조 단위 손실을 기록한다면 부품을 공급하는 협력업체로 부실이 전이돼 부품 공급망이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고 지적했다.

국내 완성차 제조사는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 내 반한(反韓) 감정 확산으로 지난 3월부터 판매가 급감했다. 상반기 중국 시장에서 현대·기아차 판매대수가 47% 감소하면서 영업이익도 현대차 16.4%, 기아차는 44% 줄어들었다.

상황이 이런데 현대차는 파업 카드까지 꺼내 들었다. 7일 쟁의조정위원회에서 현대차 노조는 10·14일 각각 4시간씩 부분파업하기로 했다. 6년 연속 파업을 결정한 것이다. 현대차 노조는 지난해 24차례 장기파업하면서 3조1000억원(14만2000여 대 생산 차질) 규모의 생산 차질을 기록한 바 있다.

김범준 LG경제연구원 책임연구원은 “당장 ‘위기’라고 보기에는 섣부른 상황일 수 있지만, 경고등이 켜진 것은 분명하다”며 “자율주행차 등 미래 기술에 과감한 투자가 필요한 시점에 대규모 충당금을 쌓는다면 기업 성장성에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문희철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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