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사설

자구책없이 보조금만 달라는 KBS와 철도공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철도공사는 수조원의 빚을 정부가 떠안으라고 나섰고, 한국방송공사(KBS)는 수백억원의 보조금을 내놓으라고 정부에 손을 벌렸다. 정부의 공기업 정책이 우왕좌왕하는 가운데 공기업들이 너도나도 국민의 세금에만 눈독을 들이는 형국이다.

KBS의 '2007년도 국고보조금 사업계획서'는 2007~2010년간 621억원의 국고보조금을 국가에 신청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KBS는 지난해 800억원의 적자가 난다며 시청료를 올려야 한다고 법석을 떨더니 결국 500억원의 흑자를 냈다. 도대체 무슨 이유로 적자가 흑자로 뒤바뀌고, 흑자가 난 뒤에도 매년 100여억원씩의 보조금이 필요한지 이해하기 어렵다. KBS 측은 사회교육방송과 국제방송 등 대외방송 때문에 적자가 예상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그런 공영방송의 기능까지를 감안해 광고료도 받고 시청료까지 챙기도록 허용한 것이 아닌가. 그러고도 적자가 걱정된다면 국고에 손부터 내밀 게 아니라 스스로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먼저 하는 것이 순서다. 편파방송에 부실경영이라는 오명을 걷을 생각은 않고 국민의 세금만 축내겠다는 공영방송에 공감할 국민은 많지 않다.

철도공사의 적자는 구조적이라는 점에서 다르지만, 민영화를 포함한 근본적인 대책 없이 불쑥 빚부터 털어달라는 것은 제대로 된 해법이 아니다. 철도공사의 빚 4조5000억원은 지난해 1월 철도청에서 공사로 전환하면서 고속철도 건설비를 떠맡은 것이다. 철도공사는 출범 당시 5년 안에 경영을 정상화할 수 있다는 청사진을 내놨었다. 역세권 개발과 각종 부대사업을 벌여 빚을 갚고도 경영자립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고속철 이용객 수가 예상의 절반에 그치면서 빚만 늘리는 꼴이 됐다. 철도공사의 경영정상화를 위해선 누적된 부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점은 맞다. 그러나 빚을 갚아주면 제대로 굴러간다는 보장도 없이 돈부터 내놓으라는 식은 곤란하다.

부실 공기업의 정상화는 땜질식 국고 지원이 아니라 분명한 원칙을 먼저 정하고 경영 책임을 엄격하게 묻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