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면술은 그만, ‘가상현실’로 심리장애 치료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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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방송된 tvN 드라마 ‘시그널’에서 장기미제전담팀 형사 차수현(김혜수)은 과거에 공포스러웠던 순간의 기억을 복구하고 트라우마를 치료하기 위해 최면수사를 받는다. 최면과 상상을 통해 당시 기억의 극복을 돕는 기법은 실제 심리질환에도 널리 쓰이는 치료법이다.

스마트폰과 연동된 구글 헤드셋으로 '가상 경험' #고소공포증·교통사고 후유증 등 스트레스 극복 #일부 임상서 90% 치유도… "혁신으로 간편해져"

가상현실(VR)을 체험하게 하는 구글 데이드림 뷰.

가상현실(VR)을 체험하게 하는 구글 데이드림 뷰.

최근엔 개인의 상상이 아니라 급속히 발달하는 가상현실(VR)이 이 같은 심리치료에 활용되고 있다고 뉴욕타임스(NYT)가 지난달 3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NYT에 따르면 일부 심리학자들은 스마트폰과 연동된 구글 헤드셋 ‘데이드림 뷰(Daydream View)’를 이용한 노출 치료 서비스에서 획기적인 결과를 얻고 있다. 노출 치료란 특정 상황에서 고통을 겪는 환자를 계획적으로 그 같은 상황에 노출시킴으로써 내성을 길러주는 행동 치료다.

예컨대 교통사고를 당한 뒤 운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환자에게 VR로 문제의 그 도로를 다시 경험하게 하는 식이다. VR에는 구글 스트리트뷰가 세계 곳곳에서 촬영해온 영상이 실감 나게 적용된다. 고소공포증이나 알콜 중독 환자에게 그들이 겁내는 장소를 맞닥뜨리게 함으로써 문제 해결에 도움을 주기도 한다. 환자의 불안 정도에 따라 상황 노출 강도도 조절할 수 있다.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림빅스’가 출시한 이 서비스는 지난 20년간의 관련 연구와 임상치료를 토대로 했다. VR 노출 치료가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1990년대 중반 ‘버추얼 베트남 프로젝트’는 퇴역 군인의 외상후스트레스(PTSD) 치료에 VR을 접목한 선구적인 사례다. 당시 활용된 자료는 조잡한 그래픽과 수준 낮은 시나리오였지만 참가자 전원이 의미있는 회복을 보여 학계에서 화제가 됐다.
최근엔 미국 에모리 의과대학 연구진이 개발한 VR 프로그램인 ‘버추얼리 베터’를 통해 비행 공포를 느끼는 환자 90%가 극복했다는 보고도 있다.

VR 치료는 고층 빌딩 오르기처럼 심리 훈련을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유용할 수 있다. NYT는 페이스북이 인수한 VR 기기업체 오큘러스를 예로 들며 “400달러(약 45만원)짜리 헤드셋과 스마트폰을 통해 보다 많은 이들이 이 같은 효과를 누릴 수 있는 시대가 됐다”고 전했다.

강혜란 기자 theoth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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