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그제 심야 ICBM 발사, 현실적인 안보대책 마련해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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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2호 02면

사설

북한이 그제 심야에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기습적으로 발사하는 도발을 자행했다. 지난 4일 북한이 ICBM인 화성-14형을 처음 발사한 지 24일 만이다. 우리는 국제사회를 위협하는 북한의  ICBM 발사에 대해 그동안 깊은 우려와 함께 자제를 요청하고 남북 군사회담을 제의했다. 그런데도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은 ICBM 발사로 답했다.

김 위원장은 이날 ICBM 발사를 참관한 뒤 “필수불가결한 전략적 선택이며 그 무엇으로도 되돌려 세울 수 없다”고 말했다. 이는 김 위원장 스스로 피할 수 없는 외통수의 길을 선택한 것으로 안타깝다. 따라서 국제질서를 파괴하고 대결 국면을 자초한 북한은 유엔 등 국제사회의 어떠한 조치에도 할 말이 없게 됐다.

북한의 이번 ICBM 발사는 기존의 도발과 패턴이 완전히 다르다. 북한 발표에 따르면 자강도에서 발사된  ICBM은 3724㎞를 치솟아 998㎞를 비행했다. 지난번 ICBM보다 900㎞ 이상 높이 올라갔다. 비정상적으로 높은 각도로 발사된 이 ICBM을 정상 각도(45도)로 쏘면 1만㎞가량 비행할 수 있다는 게 국방부 분석이다. 1만㎞면 북한에서 로스앤젤레스(LA)가 위치한 미국 서부 해안에 도달하는 거리다. 북한의 미사일 개발 속도로 보면 뉴욕과 워싱턴이 위치한 미 동부 지역을 타격할 수 있는 ICBM 개발도 멀지 않았다.

북한이 오후 11시41분의 심야에 개마고원이 있는 자강도에서 미사일을 발사한 점도 새로운 특징이다. 북한이 그동안 좋은 날씨를 선택해 새벽이나 낮에 평북 구성 등에서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던 것과는 달랐다. 이는 김 위원장의 얘기대로 “(북한이 선택한) 임의의 시간에 임의의 장소에서 (언제든지) ICBM을 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보여 준 것이다. ICBM을 자강도에서 발사한 것은 미사일기지가 여러 곳으로 확산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만큼 북한의 미사일 위협은 더 확대 및 고도화되고 있다. 이는 한·미가 북한 미사일 대응책을 더 정교하게 세워야 한다는 점을 말해 준다.

북한이 이처럼 ICBM 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는 이유는 미국과의 평화협정 체결에 있다. 북한은 핵 장착 ICBM으로 미국 뉴욕·워싱턴·LA 등을 위협해 한국을 배제한 미·북 간 평화협정을 요구하려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이 원하는 평화협정은 단순히 북한 체제를 보장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올브라이트 스톤브리지그룹 선임고문인 에번스 리비어 전 주한 미국 대리대사는 지난 27일 뉴욕에서 열린 ‘한반도 및 동북아시아 정세’ 토론회에서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한 상황에서 미·북 평화협정을 체결함으로써 한국전쟁을 끝내고 북한 주도의 통일을 이루겠다는 것이 목표”라고 지적했다. 말하자면 북한식 평화협정은 기존의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현상을 변경하면서 ‘한미연합사 해체→유엔사 해체→주한미군 철수’를 꾀하려는 것이다. 북한은 이런 과정을 통해 미국이 한반도를 포기하도록 강요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이런 엄중한 상황에서 어제 정부의 조치는 시의적절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북한의 ICBM 발사 직후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열고 “금번 (북한) 미사일 발사로 동북아시아 안보구도에 근본적 변화 가능성도 있다”며 성주에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의 잔여 발사대 4기를 모두 배치하라고 지시했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도 “한·미가 북한의 도발에 단호하게 응징하고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국방부는 북한의 미사일을 신속·정확하게 타격할 수 있는 국산 신형 탄도미사일의 발사·타격 장면을 공개했다. 이와 함께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북한을 강력하게 제재할 수 있는 새 법안에 곧 서명할 예정이다.

하지만 북한의 본격적인 도발은 지금부터다. 김 위원장은 조만간 6차 핵실험과 함께 핵무장에 진입할 것이다. 그런 만큼 정부는 대북전략을 큰 틀에서 재검토하고 희망 섞인 대북정책보다 현실적인 안보대책에 집중해야 할 것이다. 중국도 사드 탓만 할 게 아니라 북한 핵·미사일이라는 근본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대북제재에 적극 동참해야 한다. 정부는 북한의 무제한적 핵무장과 미사일 도발을 더 이상 용납할 수 없는 위중한 시기란 점을 깊이 인식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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