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나 동참해야..." 정부 '세컨더리 보이콧 딜레마' 노무현 정부 PSI 사태 '데자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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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추가 미사일 도발 징후가 포착되며 북핵 문제 해결에 있어 중국을 압박하기 위한 미국의 세컨더리 보이콧(북한과 정상적인 거래를 하는 제3국 개인·기업도 제재) 카드가 가시화하고 있다. 사실상 중국을 타깃으로 하는 제재에 한국이 어느 정도 동참할 지 결정해야 하는 선택의 순간도 다가오는 셈이다.

수전 손턴 미 국무부 동아태차관보 대행은 25일(현지시간) 미 상원 외교위원회 동아태·국제사이버보안 소위에 출석해 “김정은 정권의 전략 핵 능력 추구를 가능하게 하는 기업과 개인에 대해 일방적 조치를 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또 “중국에 있는 개인과 기업도 여기에 포함된다”며 조만간 제재 강화 방안을 발표하겠다고 말했다.

그 간 한·미·일은 대북 독자 제재에 있어 철저히 손발을 맞춰왔다. 하지만 이번 미국의 독자 제재에 세컨더리 보이콧 요소가 포함된다면 문제가 달라진다. 그렇지 않아도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 문제로 갈등이 깊어진 한중 관계에 대형 악재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반대로 지지나 동참에 소극적 태도를 보인다면 한미 관계가 흔들릴 수 있다. 일본은 이미 “북한과 거래하는 중국 기업을 모니터링 중”이라며 사실상 동참 의사를 밝혔다.

외교부 안팎에서는 노무현 정부 때 미국이 한국에게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를 요구했던 당시의 상황이 재연될 수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지 W 부시 행정부는 2005년 각국이 협력해 핵·생화학 무기 등 대량살상무기를 실은 것으로 의심되는 배나 비행기의 이동을 공동으로 차단하는 것을 핵심으로 한 PSI를 의욕적으로 추진하며 동맹국의 동참을 요청했다. 중국은 동북아 역내에서 미국 주도의 PSI 전개를 반대했다. 정부는 정식 회원국 가입이 아니라 옵서버 참여를 비공개적으로 결정했다.

하지만 2006년 10월9일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 미국은 한국의 ‘명시적이고 전면적인 참여’를 요구했다. 핵실험 열흘 뒤 방한한 콘돌리자 라이스 미 국무부 장관은 노 대통령을 예방해 “국제사회가 한국의 행동을 주시하고 있다”고 하는 등 노골적인 발언을 쏟아냈다. 정부는 남북 관계의 특수성과 한중관계 등을 감안, 고민 끝에 ‘단계적 참여’를 결정했다. 하지만 영국 일간지인 파이낸셜타임스(FT)는 “한국이 북한의 핵 실험에도 불구하고 PSI에 참여하라는 미국의 간청을 거부했다”고 보도하는 등 한미 공조에 있어 파열음이 노출되는 결과를 낳았다.

미국이 세컨더리 제재 동참을 요청할 경우 북한과의 대화에 방점을 찍는 문재인 정부도 유사한 상황에 직면할 수 있다. 미 당국자들이 계속 ‘세컨더리 군불’을 때는데도 정부가 쉽사리 공개 입장을 표명하지 못하는 이유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지난 10일 국회 외통위에서 “세컨더리 제재 옵션을 미 측과 협의 중”이라고 발언했다가, 지난 17일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에선 “해석이 앞서간 측면이 있다. 미국과의 협의를 통해 정부의 입장을 계속 검토해야 할 것 같다”고 수위를 낮췄다.

국립외교원 김현욱 교수는 “향후 미 측의 강경한 대북 입장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 남북대화 추진 등에 일정 부분 속도 조절을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차세현·유지혜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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