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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숙의가 미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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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은재호 한국행정연구원·선임연구위원

은재호 한국행정연구원·선임연구위원

신고리 원전 5, 6호기 공사가 중단됐다. 공사 재개 여부는 공론화위원회가 소집할 시민배심원단이 결정할 예정이다. 그러나 찬핵(贊核) 진영은 공론화 자체가 합의 대상이라며 ‘제왕적 결정’에 따른 공론화가 과연 용납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비판한다. 탈핵(脫核) 진영은 탈핵 자체가 대선 공약이어서 당선과 함께 기정사실화됐는데 공론화가 왜 필요하냐는 입장이다. 두 주장 모두 지금까지 우리 사회를 지배해 온 상식에 비춰 보면 얼추 타당해 보인다. 그러나 한국 현대정치사에서 이번 결정이 갖는 의미를 되돌아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숙의 없는 정책은 국가 분열 유발 #참여 없는 대의제, 숙의 없는 참여 #모두 갈등 조장해 이견조정에 비용 #원전 공론화, 국민합의 도출 기회

우선 탈핵 진영의 입장부터 살펴보자. 이 정부는 이미 탈핵을 공약으로 제시하고 당선됐으니 선출된 권력의 정당성으로 공약을 집행하면 될 일인데 굳이 공론화가 필요한 이유와 명분이 무엇인지 묻고 싶을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시점을 앞당겨 복기해 보자. 그렇게 세종시 수도 분할을 추진했고, 4대 강 사업을 감행했으며, 공공기관 성과연봉제와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 배치를 강행했다. 그 결과는 이미 우리가 목도하고 경험한 바다. 상호 비방과 소송·시위·차벽, 지루한 힘겨루기 끝에 단행되는 행정 대집행이었다. 그렇게 정쟁은 격화됐고, 국민은 소외됐으며, 국가는 분열됐다. 하버마스의 표현을 빌리자면 도구적 합리성이 비대해져 의사소통 합리성이 설 자리를 잃은 셈이다.

공론화 자체가 합의 대상이라는 찬핵 진영의 기대에 못 미친다고 해도 새 정부의 공론화 결정이 돋보이는 건 바로 이 지점이다. 문재인 정부는 ‘승자’의 권리를 내려놓았다. 그것도 자발적으로. 공론화는 그동안 소수 전문가와 기술 관료들이 독점해 온 의사 결정 과정을 일반 시민에게 개방하고 그들의 공적 이성이 참여할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민주주의 공간을 이중으로 확장하는 효과를 산출할 것이다.

첫째, 공론화에는 ‘내가 나를 대표한다’는 우리 국민의 폭발적 참여 욕망을 적극 끌어안는 효과가 있다. 1700만 촛불 시민혁명이 단순히 최순실 국정 농단 때문에 일어났다고 보는 건 지나치게 단순한 생각이다. 피 한 방울 흘리지 않고 ‘살아 있는 권력’과의 계약을 해지하는 데 성공한 촛불 시민혁명은 두 가지 구조적 요인이 결합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대의민주주의 시스템에 대한 심각한 신뢰 적자와 ‘하위 정치영역’의 급속한 확대가 그것이다. 사방으로 분출하는 참여를 공식적인 의사 결정 공간으로 유인하면서 규칙에 근거하는 상호작용 시스템을 만들면 미래 예측 가능성이 높아져 정치공동체의 질서 유지가 가능해진다.

둘째, 공론화에는 참여를 제도화하되 이를 학습과 토론이라는 숙의 과정과 결합해 참여를 협력으로 전환시킴으로써 대의와 대표를 강화하는 효과가 있다. 시민들의 직접 참여는 바람직한 정치적 이상이지만 참여가 반드시 협력으로 귀결되는 건 아니다. 참여가 많아질수록 이해관계가 복잡해지며 다양한 욕구가 상충해 오히려 갈등이 증폭될 수 있다. 촛불 시민혁명을 통해 극대화된 현 시기의 정치 참여가 무한정 시민 참여에 기대는 ‘길거리 정치’로 남아서는 안 되는 이유다. 그렇다고 신뢰 적자에 허덕이는 대의민주주의 체제로의 복귀를 강요할 수도 없다. 일반 시민의 숙의(熟議)를 통해 합의 형성을 지향하는 공론화야말로 일상적인 삶의 현장과 대의제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다.

숙의가 빠진 대중적 참여와 대중의 참여가 없는 대의제 둘 다 갈등을 조장하며 갈등조정 비용을 급격히 증가시킬 수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을 둘러싸고 증폭된 사회적 분노와 공포를 생각하면 숙의와 결합되지 않은 참여가 얼마나 소모적인지 알 수 있다. 원전을 둘러싸고 일방적 홍보만 난무하고 건강한 공론장이 형성되지 않는다면 똑같은 분노와 공포가 증폭될 수밖에 없다. 한 세대도 지나지 않아 원상 회복 요구에 직면한 4대 강 사업은 어떤가. 4대 강 사업의 가장 강력한 논거는 국회의 선량들도 견제할 수 없었던 비용 편익 분석의 맹목적 기술주의였다. 민주적 통제에서 벗어난 맹목적 기술주의가 범람한다면 원전정책이라고 그 운명이 다를까.

신고리 원전 공론화위원회는 전통적인 대의민주주의의 의사 결정 과정에 숙의적 합의 형성을 접목하는 국가적 차원의 첫 시도이자 원전정책에 대한 국민적 합의를 창출할 수 있는 소중한 기회다. 우리 사회에서 작동될 수 있는 숙의민주주의의 장점과 한계를 실험해 볼 기회이기도 하다. 이번 공론화는 공정하게 조직하고 투명하게 운영해야 한다. 롤스의 정의론에 빗대자면, 아니 대통령의 취임사를 조금 비틀자면 ‘기회가 평등하고 과정이 공정할 때 결과가 정의로울 것’이기 때문이다. 숙의가 미래다.

은재호 한국행정연구원 선임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