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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최저임금의 딜레마를 해결하려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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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주사위는 던져졌다. 유례없는 실험이 시작된 것이다. 최저임금 16.4% 인상, 시급 7530원, 최저임금의 광폭 인상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자리 대통령으로서 2020년까지 최저임금 1만원을 실현하겠다고 약속했고, 첫 단계를 성공적으로 안착시켰다. 최저임금 인상은 내수 진작과 인간다운 삶의 실현을 위한 기본 전제라는 이른바 소득 주도 성장론의 핵심 정책이다.

근로자의 최저생활 보호하면서 #중소기업의 지급 능력 감안하고 #고용 위태롭게 만들어선 안 돼 #상여·복리수당도 계산에 넣어야

전체 근로자의 17.4%가 최저임금을 받고 있으며, 저임금 근로자 비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6개 주요 회원국 중 3위로 상당히 높다. 여기에 중위 소득 50% 이하인 계층이 전체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나타내는 상대적 빈곤율도 높아지고 있다. 한국 경제의 양극화가 얼마나 심한지 보여주는 지표들이다. 최저임금 인상은 저임금 부문에 종사하는 근로자들의 소득 수준을 높여 소득 격차를 줄이고 내수를 진작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최저시급이 7530원이 되는 내년에는 근로자의 월 최저임금이 지금보다 22만원가량 인상되고, 최저시급이 1만원으로 인상되면 74만원가량 인상된다.

하지만 최저임금의 광폭 인상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미지수다. 최저임금 인상이 시장을 교란하는 임금 덤핑을 억제함으로써 자영업자의 경쟁력을 높이고 노인 빈곤층의 감소에 기여할 것이라는 긍정적 견해가 있다. 반면에 최저임금 인상이 지금과 같은 속도와 폭으로 이뤄진다면 영세 자영업자의 경영난이 심화될 수밖에 없다는 부정적 견해도 있다. 종업원을 고용하는 자영업자 중 49%가 연매출 3억원 이하의 영세 자영업자에 속한다. 2013년 중소기업청 자료에 따르면 자영업자의 평균 영업이익은 월 187만원이고, 이들의 27%는 100만원을 넘지 않는다.

최저임금의 광폭 인상이 노동시장과 고용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는 논쟁 중이다. 일부에서는 과거 최저임금 인상 사례를 들어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미치는 영향은 크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에 중소기업중앙회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내년 추가 인건비가 15조2000억원에 이르며, 최저임금 인상 속도가 빠를수록 일자리가 줄어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정부도 최저임금 광폭 인상에 따른 부정적 측면을 부인하지 않는다. 최저임금 인상이 결정되자마자 기획재정부 장관이 중소기업에 대한 추가 인건비 3조원의 재정 지원을 약속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일자리 대통령’을 자임한 문재인 정부로서는 최저임금 인상으로 일자리가 줄지 않도록 신경 쓰고 있는 모양새다. 그러나 재정 지원이 지속적으로 이뤄질지 불확실하다. 최저임금 인상으로 발생한 영세 자영업자의 인건비 손실을 경감하기 위해 국가 보조금을 지원하는 것은 납세자의 부담 증가와 시장경제에 대한 국가 역할의 확대를 의미한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재정 지원을 한시적 조치라고 못 박은 것도 이 점을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최저임금의 딜레마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문재인 대통령이 공언한 대로 최저임금 광폭 인상의 효과를 면밀히 검토해 속도 조절이 필요한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최저임금은 지급 주체인 사용자의 지급 능력을 감안하면서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 수준을 개선할 수 있도록 적정한 수준에서 결정돼야 한다.

독일 최저임금법은 2년마다 최저임금액을 결정할 때 세 가지 기준을 검토하도록 규정했다. 첫째로 최저임금액이 근로자의 적정한 최저생활 보호에 기여해야 한다. 둘째로 특히 중소기업의 존립이 어려울 정도로 임금 비용을 높이지 않고 공정한 경쟁 조건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로 최저임금액 결정으로 고용을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된다. 근로자의 인간다운 생활 보장과 중소기업 간 공정 경쟁 유지, 고용률 저하 방지 등의 기준을 제시한 것이다. 앞으로 최저임금을 결정할 때 기준으로 삼을 만한다.

이와 함께 반드시 제도 정비가 뒤따라야 한다. 기본급과 월 고정수당만 최저임금 계산을 위한 산입 대상에 포함하고, 상여금과 복리후생수당은 최저임금 산입 범위에서 제외하는 현행 최저임금법령을 고쳐야 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100명 이상 근로자를 고용한 기업이 지급하는 실질임금 중 기본급과 고정수당의 비중은 67.1%에 불과하다.

시급이 1만2000원(연봉 최저 3000만원 이상)인 근로자라도 기본급과 고정수당만을 대상으로 시급이 7400원이라면 최저임금 위반이 돼 기본급을 최저임금 수준으로 인상해야 한다. 최저임금 산입 범위는 소정 근로에 지급하는 모든 임금으로 확대돼야 한다. 그래야 최저임금이 실질적으로 저임금 근로자의 소득 개선 수단으로 작동할 수 있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