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바람 멎자 44년 저주 풀렸다 … 그레이스, 꿈의 62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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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44년간 넘지 못했던 메이저대회 63타의 벽을 브랜든 그레이스(오른쪽)가 디 오픈에서 깼다. 그레이스는 날씨와 전장 등 유리한 조건에서 경기했고 기록 경신에 대한 압박감도 없었다. [AP=연합뉴스]

44년간 넘지 못했던 메이저대회 63타의 벽을 브랜든 그레이스(오른쪽)가 디 오픈에서 깼다. 그레이스는 날씨와 전장 등 유리한 조건에서 경기했고 기록 경신에 대한 압박감도 없었다. [AP=연합뉴스]

2007년 타이거 우즈(41·미국)는 미국 오클라호마주 서던 힐스 골프장에서 벌어진 PGA 챔피언십 2라운드 마지막 홀에서 버디 기회를 잡았다. 넣으면 62타로 역대 메이저대회 최저타 기록을 세울 참이었다. 그의 공은 홀 안으로 들어가는 듯 했으나 돌아나왔다. 우즈는 “들어갔다 나왔기 때문에 62.5타”라고 주장했다.

역대 메이저 18홀 최소타 신기록 #디 오픈 3R 짧아진 코스도 한 몫 #기록 몰라 부담 없이 완벽한 경기 #2007년 우즈 들어갔다 나와 “62.5” #니클라우스, 1980년 1m 퍼트 놓쳐 #여자는 김효주 에비앙 61타가 최소

1986년 마스터스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3라운드 마지막 홀에서 닉 프라이스(60·짐바브웨)의 버디 버트는 홀에 들어갈 것처럼 보였는데 이상하게도 튀어나왔다. 프라이스는 “(마스터스의 영혼인) 보비 존스의 손이 공을 밀어냈다”고 투덜댔다.

비슷한 일들이 여러 차례 있었다. 1973년 조니 밀러(70·미국)를 시작으로 올해 US오픈 저스틴 토마스(24·미국)까지 29명의 선수가 31차례나 63타를 기록했지만 62타는 한 번도 나오지 않았다. 최저타 기록이 나올 기회가 여러 번 있었으나 번번이 좌절됐다. 일반 대회에선 62타는 흔한 편이다. 짐 퓨릭(미국)은 지난해 8월 PGA투어 트래블러스 챔피언십 최종 라운드에서 58타로 최저타 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메이저대회에선 ‘62타’도 난공불락이었다. 그래서 ‘63타의 저주’ 라는 말도 나왔다.

브랜든 그레이스(29·남아공)가 드디어 62타를 쳤다. 22일 밤(한국시간) 잉글랜드 리버풀 인근 로열 버크데일 골프장에서 벌어진 디 오픈 3라운드에서 그는 보기 없이 버디 8개를 잡아 8언더파 62타를 기록했다. 그레이스는 한 번 감을 잡으면 무서운 선수다. 2015년 한국에서 열린 프레지던츠컵에서는 미국 팀을 상대로 5전 전승을 거뒀다.

그레이스는 거의 완벽한 경기를 했다. 운도 좋았다. 비바람이 잦아들면서 코스가 쉬워졌다. 전날 폭우로 그린이 부드러워져 공을 세우기 좋았다. 주최 측은 원래 7156야드였던 전장을 3라운드엔 7027야드로 줄였다. 특히 파 4인 5번 홀을 310야드로 줄이면서 파 3홀 비슷하게 만들어줬다. 선두권 선수들은 공격하다가 대형사고가 날까 조심했지만 잃을 게 없는 중하위권 선수들은 핀을 직접 공격하면서 점수를 줄였다. 브랜든 그레이스가 그랬다.

다른 선수들도 성적이 좋았다. 이날 언더파를 친 선수는 77명 중 43명이었다. 더스틴 존슨(33·미국)은 64타, 선두를 달리던 조던 스피스(24·미국)는 65타를 쳤다.

코스가 파 70인 것도 영향을 미쳤다. 파 72에서의 62타(10언더파)와 파 70에서의 62타(8언더파)는 다르다. 콜린 몽고메리(54·영국)는 이날 아침 “코스 컨디션으로 미뤄볼 때 62타가 나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레이스는 이날 기록을 의식하지 않고 경기를 했다. 그런 기록이 있는 줄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선배들이 기록 문턱에서 갖던 압박감을 느끼지 못했다. 여러 조건을 감안하면 그레이스가 유리한 조건에서 경기했다는 평가다.

역대 메이저대회에서 가장 완벽한 라운드는 1973년 US오픈에서 조니 밀러가 기록한 63타로 평가된다. 코스가 어렵기로 악명 높은 미국 펜실베니아주 오크몬드에서였다. 그 날 60대 타수를 친 선수는 밀러를 제외하고 3명에 불과했다. 밀러는 우승을 눈 앞에 두고 압박감 속에서 경기를 했다. 그래서 마지막 2개홀 버디 퍼트를 살짝 놓쳤다. 그랬는데도 63타를 쳤고 출전선수 전체 평균 타수와 10.65타 차이가 났다. 그레이스는 7.03타 차이였다. 밀러가 3.5타 더 압도적인 경기를 한 것이다.

잭 니클라우스(77·미국)도 위대한 경기를 했다. 마흔살이던 1980년 발투스롤 골프장에서 벌어진 US오픈 1라운드 마지막 홀에서 1m가 안 되는 퍼트를 놓치면서 62타를 기록하는데 실패했다. 당시 미국의 골프매거진은 63타를 깨면 5만 달러를 주겠다고 공언했다. 62타를 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여겨서다. 우승 상금과 5000달러 차이 밖에 나지 않는 거액이었다.

2014년 에비앙에서 여자 메이저 최저타(61) 기록을 세운 김효주와 안니카 소렌스탐의 기념촬영. [중앙포토]

2014년 에비앙에서 여자 메이저 최저타(61) 기록을 세운 김효주와 안니카 소렌스탐의 기념촬영. [중앙포토]

니클라우스는 “당시 (62타 기록을 앞두고) 완전히 긴장했다”고 말했다. 그렉 노먼(62·호주)은 86년 턴베리에서 열린 디 오픈 마지막 홀 7m 거리에서 3퍼트를 해 아쉽게 62타를 기록하지 못했다. 필 미켈슨(47·미국)도 지난해 디 오픈 1라운드 마지막 홀 버디 퍼트가 홀을 훑고 나와 63타에 머물렀다.

여자 메이저 대회 18홀 최저타 기록은 김효주(22·롯데)가 가지고 있다.

성호준 기자 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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