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속탐지기 때문에 이ㆍ팔 유혈 충돌

중앙일보

입력

한 무슬림 남성이 21일(현지시간) 동예루살렘 알아크사 사원 앞에 설치된 이스라엘 측의 금속탐지기를 통과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한 무슬림 남성이 21일(현지시간) 동예루살렘 알아크사 사원 앞에 설치된 이스라엘 측의 금속탐지기를 통과하고 있다. [EPA=연합뉴스]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에 있는 성지인 알아크사 사원 입구에 설치한 금속탐지기 철거를 검토하고 있다고 영국 BBC가 23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이 금속탐지기는 21~22일 이스라엘 군·경과 팔레스타인 주민 사이에 발생한 유혈 충돌의 불씨로 이번 사태로 인해 6명 이상이 사망하고 200여 명이 부상했다.

동예루살렘 성지에 이스라엘 금속탐지기 설치 #팔레스타인 "성지 장악하려 한다"며 강력 반발 #"이ㆍ팔 양측 최소 6명 사망, 200여 명 부상" #2015년에도 CCTV 설치 문제로 갈등

BBC에 따르면 이스라엘은 최근 성지에 출입하는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통제·검색하기 위해 금속탐지기를 설치했다. 하지만 유혈 사태 발생으로 부담을 느낀 이스라엘 측이 “금속탐지기를 제거할 수 있다”고 한 발 물러선 것이다. 요아브 모르데차이 이스라엘군 소장은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을 향해 “좋은 대안이 있으면 제안해달라”고 말했다고 BBC는 전했다.

이스라엘의 동예루살렘 알아크사 사원에 대한 일방적인 금속탐지기 설치로 21~22일 동예루살렘과 서안지구 등 곳곳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양측 간에 대규모 유혈 충돌이 발생했다. [AFP=연합뉴스]

이스라엘의 동예루살렘 알아크사 사원에 대한 일방적인 금속탐지기 설치로 21~22일 동예루살렘과 서안지구 등 곳곳에서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양측 간에 대규모 유혈 충돌이 발생했다. [AFP=연합뉴스]

국제사회도 나섰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24일 이번 사태에 대한 대책을 논의하기 위한 긴급회의를 비공개로 개최한다고 22일 밝혔다. 유럽연합(EU)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모두의 안전을 보장하기 위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성명을 발표했다.

하지만 일촉즉발의 긴장감도 예루살렘에 감돌고 있다고 AP통신 등이 전했다. 유혈 충돌에 이은 팔레스타인의 보복살인 등으로 이ㆍ팔 양측 간 갈등의 불씨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21일 복면을 쓴 한 팔레스타인 남성이 이스라엘 군경을 향해 돌멩이를 던지고 있다. [AP=연합뉴스] 

21일 복면을 쓴 한 팔레스타인 남성이 이스라엘 군경을 향해 돌멩이를 던지고 있다. [AP=연합뉴스] 

AP 등은 이틀 간 이ㆍ팔 양측 사망자는 각 3명씩 최소 6명이라고 전했다. 부상자는 200명이 넘는다. 21일 이스라엘 군ㆍ경이 팔레스타인 시위대를 향해 최루가스, 섬광 수류탄 등으로 응사해 10대 청소년 등 팔레스타인 3명이 숨졌다. 이에 20세 팔레스타인 청년이 이날 밤 이스라엘 정착지 가정에 침입해 일가족 3명을 살해했다. 22일에도 양측 간 충돌로 사망자가 나왔지만 정확한 숫자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

이스라엘 군이 탱크로 화염을 내뿜으며 팔레스타인 시위자들을 몰아내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스라엘 군이 탱크로 화염을 내뿜으며 팔레스타인 시위자들을 몰아내고 있다. [AFP=연합뉴스] 

이번 사태의 원인이 된 금속탐지기는 지난 14일 설치됐다. 당시 아랍계 남성 3명이 알아크사 사원에서 총격을 가해 이스라엘 경찰 3명이 숨지면서다. 이스라엘군은 50세 미만 무슬림 남성의 사원 출입을 금지하고, 예루살렘 곳곳에 검문소를 설치하는 등 팔레스타인인들의 이동을 엄격히 통제했다.

팔레스타인인들은 이스라엘이 “성지를 장악하려 한다”며 반발했고, 금요 합동 예배일이던 21일 분노가 터졌다. 팔레스타인 무슬림들은 금속탐지기에 대한 항의 표시로 21일 이전부터 사원 밖에서 기도를 올렸고,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는 금요 합동 예배일을 ‘분노의 날’로 정해 시위를 예고했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의 금속탐지기에 격렬하게 반발하는 건 동예루살렘의 알아크사 사원이 이슬람ㆍ유대교의 공동 성지이기 때문이다.
이슬람교도가 절대 다수인 팔레스타인인들은 이곳을 하람 알샤리프라고 부르고, 유대인이 주축인 이스라엘에선 영어식 표기로 템플마운트라고 부른다.
팔레스타인에선 이곳을 이슬람 창시자인 무함마드가 서기 7세기에 승천한 곳으로 믿고 있으며, 이스라엘도 템플마운트를 둘러싼 ‘통곡의 벽’이 있는 이곳을 유대교 최고 성지로 여긴다. 양측에게 종교적으로 의미깊은 곳이다보니 과거부터 분쟁이 끊이지 않았다.

1967년 제3차 중동전쟁에서 이스라엘이 승리한 후 이스라엘 군ㆍ경이 알아크사 사원에 대한 통제권을 행사하고 있지만, 팔레스타인도 독립 이슬람 기구를 통해 우회적으로 관여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이스라엘의 금속탐지기 설치는 팔레스타인에는 알아크사 사원에 대한 지배력 강화로 해석되는 것이다. 양측은 2015년에도 이스라엘의 CCTV 설치 문제로 갈등을 빚었다.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의 금속탐지기 설치에 대한 항의 표시로 22일 알아크사 사원 밖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팔레스타인인들이 이스라엘의 금속탐지기 설치에 대한 항의 표시로 22일 알아크사 사원 밖에서 기도를 드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한 팔레스타인 남성은 이날 이스라엘 경찰을 향해 “팔레스타인인들도 알아크사 사원에서 기도를 할 권리가 있다. 금속탐지기를 제거하고 기도를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말했다고 AP는 전했다.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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