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최민우의 블랙코드

이 공약이 빠진 게 우연일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8면

최민우 기자 중앙일보 정치부장
최민우 정치부 차장

최민우 정치부 차장

최순실 국정 농단이 불거진 지난해 말부터 올 초까지 검찰과 특검은 청와대 압수수색을 세 차례 시도했다. 하지만 모두 무산됐다. ‘국가 기밀’ 등의 핑계를 댔지만, 사실 힘에서 청와대에 밀린 거였다. 국민은 분통을 터뜨렸고, 이런 기류를 반영해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청와대에 대한 압수수색 부당 거부 제한”을 약속했다. 하지만 19일 공개된 100대 국정과제에 이 공약은 빠졌다.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사람들은 “청와대는 무엇을 했는가”라며 분노했다. ‘대통령의 7시간’을 그토록 오래 궁금해한 이유이기도 했다. 안전사회를 향한 열망을 담아 문 대통령도 공약집에 “대통령과 청와대가 국가 재난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겠다”고 명기했다. 하지만 국정과제엔 주체가 불분명한 ‘통합적 재난관리체계 구축’이라는 표현이 고작이었다.

김진표 국정기획자문위원장은 회의 첫날 “이것저것 건드리면 배가 산으로 간다. 공약 교통정리를 잘하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공약 재탕에 불과하다”는 소리가 나올 만큼 공약과 국정과제는 판박이였다. 공약 단계부터 논란이 컸던 군 복무기간 단축, 공무원·교사의 정치 참여 등은 국정과제로 이어졌다. 하지만 경호실 폐지, 대통령 별장 개방 및 반환, 인사추천실명제 등은 사라지고 말았다. 유독 청와대 관련 항목만 상당수 증발해 버린 꼴이다. 국정기획위 관계자의 답은 이랬다. “아니, 안 하겠다는 게 아니라 이리저리 정리하다 보면 빠지는 것도 생기죠. 차차 할 겁니다.” 우선순위에서 밀렸다는 거다.

꼼꼼히 살펴보면 제외된 중차대한 사안이 꽤 있다. 검찰 개혁의 본질이라는 ‘수사권과 기소권 분리’가 사라졌고, ‘검찰총장 국회 출석 의무화’도 보이지 않았다. 13개의 적폐청산TF를 꾸린다면서 칼바람 부는 국가정보원 관련 국정과제는 단 한 줄, ‘해외안보정보원으로 개편’뿐이다. 공약에서 호언한 수사 기능 폐지, 국회 통제장치 강화, 감사원 감사 대상 포함도 없어졌다. 공정거래위원회의 ‘전속고발권 폐지’도 사실상 후퇴했다. 한결같이 권력기관과 연관된 것들이다. 아무리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고 하지만, 이 정부도 혹시 ‘사냥개는 나만 물지 않으면 사나울수록 좋아’라고 생각하는 건 아닐까.

최민우 정치부 차장